유럽 남동부에 위치한 슬로베니아가 이웃국가인 헝가리를 따라 권위주의·우익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슬로베니아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연방)에서 1991년 분리 독립한 국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현지시간) "슬로베니아 야네스 얀사 총리(사진)가 이끄는 우파 정부가 최근 들어 급격히 권위주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수습하고 경제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얀사 총리는 지난해 3월 2004년, 2012년에 이어 세 번째 총리직에 올랐다.

슬로베니아 감사원은 최근 정부의 코로나19 보호장비 조달 비리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부터 감사원과 토마스 베셀 감사원장을 향한 얀사 총리와 여권 지지층의 공격이 거셌다. 베셀은 "조사 결과를 폄훼하기 위한 의도로밖에 안보인다"며 "정말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이었다"고 토로했다. 감사원은 정부의 조달 비리사실을 일부 밝혀내면서도 "장비 구입을 위한 입찰 경쟁이 있었던 점 등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친정부 성향의 뉴스매체를 중심으로 감사원을 비판하는 기사가 계속 쏟아지고 있고, 얀사 총리도 베셀 감사원장의 청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트윗을 날리며 공격에 가세하고 있다. 심지어 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슬로베니아 경찰이 감사원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얀사 총리와 측근인 알레스 호즈 국무부 장관은 최근 법원과 헌법재판소 판결도 비판하고 있다. 헌재가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이 개인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한다고 내린 결정 등이 그 대상이다. 로크 세페린 재판관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판사 개개인에 대해 허용할 수 있는 비판의 한계가 분명하지만, 슬로베니아에서는 이런 한계는 존중되지 않는다"며 "우리가 현 정부와 총리의 입맛에 맞지않는 결정을 내릴 때마다 굴욕감을 느끼게 만든다"고 토로했다.

슬로베니아 정부는 지난해에는 얀사 총리를 비판해온 뉴스통신사 STA에 대한 연간 200만유로(약 26억원)에 달하는 정부 지원금을 중단하기도 했다. FT는 "얀사 총리의 정치 이력이 그의 절친한 이웃인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를 빼닮았다"며 "둘다 강경 극우주의자가 된 반(反)공산-자유주의자였다"고 분석했다. 또 "오는 7월부터 유럽연합(EU)의 순환 의장국을 맡을 슬로베니아의 민주주의 규범과 법치에 대한 우려가 커지게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