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컬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의 장벽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를 ‘개척자’라고 부르는데 이견을 달 이는 별로 없다. 그는 스토리를 담은 신선식품 ‘큐레이션’과 샛별배송이라는 전에 없던 물류 전략으로 마켓컬리를 유니콘의 대열에 합류시켰다. 2014년 12월 설립된 마켓컬리의 매출액은 7년도 안 돼 1조원에 가까워졌다. 지난해 매출이 9530억원으로 전년 대비 123.7% 늘었다. 증가율 기준으로는 쿠팡(93%)을 앞서는 성적표다. 국내 온·오프라인 유통업체 중 마켓컬리 만큼 초고속 성장을 한 곳은 없다.

매출 1조원, 성공 신화의 주역

마켓컬리가 주목받는 이유는 비단 성장세 때문만은 아니다. 쿠팡, 이마트처럼 ‘1P(party) 커머스’로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줬다는 점이 중요하다. 네이버, 11번가, G마켓 등 상품 거래를 중개하는 ‘3P 커머스’와 달리 마켓컬리와 같은 직매입 유통업체들은 상품 재고 및 폐기에 따른 위험을 감수해야하고, 상품 주문에서부터 최종 배송에까지 이르는 전 과정을 통제·관리해야 한다. 그 만큼 경영 전반에 변수가 많고, 인적·물적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엄청난 투자비가 들어간다. 리스크가 큰 데 비해 1P 커머스는 데이터 축적 등 성공에 따른 열매도 크다. 무엇보다 마켓컬리라는 자신의 브랜드 하나만으로 수많은 소비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마켓컬리를 ‘제2의 쿠팡’이라 부르며 뉴욕 증권거래소로 직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엔 한국거래소가 “국내에 상장해달라”며 김슬아 대표를 직접 찾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결손금(이익잉여금의 반대 개념)만 5544억원으로 자본잠식률이 900%대에 가까운 기업에 대해 거래소가 상장을 권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김슬아 대표가 자신의 지분율이 6.67%(작년 말 기준)로 떨어질 정도로 외부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던 건 미래 가치를 인정받은 결과다. 마켓컬리는 2019년 1350억원 투자를 유치한데 이어 작년 5월에도 2000억원을 추가로 조달했다.

코로나19라는 뜻하지 않은 ‘행운’을 감안하더라도 창업 이후 올해까지 마켓컬리의 ‘1라운드’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만하다. 관건은 그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느냐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IPO(기업공개)를 성사시키거나 새로운 대형 투자자를 유치해 보다 공격적인 경영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 지가 최대 관심사다.

'제2의 쿠팡'은 누가 될까

이와 관련해선 쿠팡의 사례가 참조가 될만하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는 2010년 소셜커머스 모델로 쿠팡을 창업한 뒤 2012년부터 빠르게 아마존 모델로 ‘전향’했다. 그 해 쿠팡은 ‘빠른 배송 서비스’를 도입, 거래가 완전히 종료된 뒤 배송을 시작하는 대신 회원이 상품을 구매한 동시에 물건을 발송하는 것으로 회원수를 1000만명으로 끌어올렸다. 이와 함께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상품이 배달되거나 구입한 물건이 품절될 경우 일정 기준에 따라 보상해주는 ‘배송지연 보상제’와 ‘품절 보상제’도 함께 시작했다.

쿠팡은 창업 3년 만인 2013년에 매출액 1조원 기업으로 성장했다. 1P 커머스 기업이 1조원을 넘어선 건 1996년 국내에 인터넷 쇼핑몰이 등장한 이후 처음이었다. 급기야 김범석 쿠팡 창업자는 2014년 자체 익일 배송 서비스인 로켓 배송을 선보였다. 당시 쿠팡은 유통과 물류가 제각각 분리돼 있다는 한국적 특성에서 ‘룬샷’을 발견했다. 한국형 아마존 모델에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비전펀드는 2015년과 2018년 쿠팡에 각각 10억달러, 20억달러를 투자했다. 막강한 후원자를 등에 업고, 쿠팡은 지난해 약 24조원에 달하는 거래액을 달성했고, 올 3월엔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마켓컬리가 쿠팡과 비슷한 궤적의 성공 가도를 달릴 지, 아니면 치열한 경쟁의 그물망에 걸려 한 때 반짝이던 샛별로 사멸할 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현재 마켓컬리가 처한 현실적인 장벽이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든든한 투자 후원자의 부재,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영 환경, 마케팅에 의존했던 성공 방정식에 대한 의문, 헤어나기 힘들어보이는 적자의 늪 등이 지적된다.

우선 소프트뱅크비전펀드가 숙박 플랫폼인 야놀자에 약 2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건 마켓컬리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손정의 회장이 쿠팡과 비슷한 e커머스 플랫폼에서 더 이상 유니콘을 발굴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손 회장과 실리콘밸리의 한국계 벤처캐피탈인 알토스벤처스는 쿠팡에 공동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는데 이들이 또 다시 의기투합해 투자한 국내 기업은 당근마켓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를 거친 청년 창업가 두명이 만든 당근마켓은 커뮤니티와 커머스를 결합한 ‘하이퍼 로컬’ 플랫폼으로 쿠팡과는 비즈니스 모델이 완전히 다르다.

이와 관련해 마켓컬리의 초기 투자자였던 한국투자파트너스가 최근 마켓컬리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마켓컬리의 대항마로 일컬어지는 오아시스에 투자한 건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마켓컬리에 투자한 해외 큰손들도 초기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에서 중국계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작년 말 감사보고서 기준으로 최대 주주는 DST글로벌(25%)이다. 미국의 세콰이어캐피탈(13.84%)과 합하면 여전히 미국계가 우위다. 하지만 중국 최대 글로벌 투자회사인 힐하우스캐피탈 12.03%(이하 작년 말 기준)과 홍콩계 아스펙스 캐피탈(7.60%) 등 중국 자본의 지분도 상당히 커진 상태다.

한투파의 '엑싯', 중국 투자자 유입

신선식품 새벽배송이라는 마켓컬리의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은 김슬아 대표로선 가장 골치아픈 문제다. SSG닷컴, 롯데온, 투홈(현대백화점) 등 유통 대기업들은 ‘컬리의 영역’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마켓컬리는 신세계백화점의 SSG푸드마켓, 현대백화점 식품관 등 고급 식자재 판매 채널을 온라인화하는데 성공한 기업”이라며 “지금은 거꾸로 유통 대기업들이 쿠팡, 네이버와 경쟁하기 위해 신선식품 온라인 판매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장 공격적인 곳은 SSG닷컴이다. SK텔레콤에서 ‘모빌리티’ 빅데이터를 총괄한 장유성 전무를 영입한 SSG닷컴은 전국 160개 이마트 매장(트레이더스 포함)과 자동화 물류센터인 네오를 연계한 신선식품 전국 당일 배송을 구현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를 위한 IT 인력만 400명 가량이다. 쿠팡(약 2000명) 다음으로 많은 규모다. 장유성 전무는 신선식품 물류와 관련해 대외 강연회 등에서 이 같이 말하곤 한다. “산지에서부부터 쓱의 물류를 타는 순간부터 고객은 퀄러티(품질)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전체 물류가 고객의 냉장고라고 보면 된다. 필요한 시간에 배달해주겠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새벽 혹은 샛별이라는) 시간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

치열해진 경영 환경은 마켓컬리에 두 가지 선택지를 강요하고 있다. 전쟁터에 뛰어들 것이냐, 아니면 내실을 다지며 틈새 시장의 강자로 남을 것이냐다. 최근 마켓컬리의 행보는 전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김포에 대형 물류센터를 신설하고, CJ대한통운과의 제휴를 통해 충청권으로 새벽배송을 확대하기로 했다. 출혈 마케팅을 진행하는 등 광고선전비도 다시 증가 추세다. 마켓컬리는 2019년 광고선전비로만 351억원을 쏟아부었다. 코로나19 덕을 본 작년엔 296억원으로 감소했지만, 올해는 치열한 경쟁 탓에 유명 연예인을 활용한 광고를 재개했다.

국내 e커머스 시장은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치열한 전쟁터다.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며 수조원을 조달한 쿠팡조차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할 정도다. 네이버는 검색 시장의 제왕에서 쇼핑 왕국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 중이다. 경쟁자들이 쫓아올 수 없는 압도적인 기술력과 플랫폼 경쟁력이 없이는 생존 자체가 어려울 지경이다. 창업 7년차인 마켓컬리가 고난도 저글링을 어떻게 이어나갈 지 지켜볼 일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