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전조 스토킹]② 스토킹, 여자만 당한다고요?…말 못 하는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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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도 스토킹 시달리지만, 주변선 "인기 많아 좋겠다"며 웃어넘겨
"친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동성 간 스토킹도 심심찮게 발생
교사 사생활 파고드는 학부모도…"다양한 유형의 스토킹, 모두 심각하게 여기고 근절해야"
살인의 전조 스토킹 / 연합뉴스 (Yonhapnews)
탐사보도팀 = 20대 남성 A씨는 여자친구 B씨와 헤어진 후 다른 여성을 만나 교제했다.
새로 만난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사진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자 B씨에게서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나랑 만날 때는 왜 우리 사진을 SNS에 올리지 않았어?"
"여자친구가 날씬하고 예뻐서 좋겠네?"
"나는 너랑 헤어진 이후로 정신과에 다니고 있어."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잘 지켜봐."
B씨는 A씨가 답장하지 않자 밤낮 가리지 않고 전화를 해 댔다.
전화번호를 차단하자, 이번에는 A씨의 새 여자친구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며 괴롭혔다.
B씨는 A씨의 직장까지 찾아와 난동을 부렸고, A씨는 경찰에 "전 여자친구가 직장까지 찾아와서 괴롭히고 있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30분 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별일 아닌 것 같은데 여성분을 잘 달래서 보내라"고 말한 뒤 돌아가 버렸다.
A씨는 친구들과 고민 상담을 했지만, 친구들마저 "아직도 너를 좋아하는 모양이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스토킹은 통상 남성이 여성을 지속해서 괴롭히고 집착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토킹의 유형은 이보다 훨씬 다양하다.
여성이 남성을 스토킹하는 경우, 동성(同性) 간 스토킹, 학부모가 교사의 사생활에 간섭하고 괴롭히는 경우 등 여러 유형의 스토킹이 존재한다.
'사각지대의 스토킹'이라고 할 만한 이러한 스토킹에 대해 전문가들은 "분명히 스토킹이고, 법적 처벌 대상"이 된다고 잘라 말한다.
스토킹 행위는 어떠한 관계에서도 나타날 수 있고, 모든 스토킹은 피해자에게 크나큰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다는 얘기다.
실제 사례를 통해 다양한 스토킹 유형과 이를 근절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합의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 남성 향한 스토킹은 괜찮다?…"피해자는 극심한 정신적 후유증 시달려"
직장인 김모(25) 씨는 군 복무 시절 일병 때 휴가를 나가 한 여성과 호감을 갖고 몇 차례 만났다.
그런데 부대 복귀 후 여성이 매일 '보고 싶다', '답장해라', '너 때문에 내가 미치겠다' 등 페이스북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김 씨가 제대로 답장하지 않자 여성은 예고 없이 김씨의 부대로 면회를 왔고, 대뜸 "사귀자"고 요구했다.
김 씨는 완곡히 거절하고 돌려보냈지만, 전역이 두 달 남은 시점까지 여성의 연락은 끊이지 않았다.
김씨는 여성의 전화번호를 차단하고 싶었지만, 군 복무 중 무슨 사달이 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차단할 수 없었다고 한다.
김 씨의 동기들은 "그 여자가 너의 계급도 알고 부대도 아니 전역일에 찾아와 테러하는 것 아니냐"며 놀려댔다.
김 씨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정말로 여성이 자신을 찾아올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전역 직전 김씨는 계속해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여성에게 "제발 그만해달라"고 몇 시간 동안 빌고 또 빌었다.
그의 애원에 여성은 이후로 드문드문 연락하다가 그만뒀다고 한다.
김 씨는 군 복무를 마치고 직장 생활을 하는 지금까지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이성 친구를 만날 때 '어디냐', '연락해달라' 등의 메시지를 받으면 자신도 모르게 공포감을 느끼는 등 이성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여성이 남성을 스토킹하는 경우 폭행, 상해 등 물리적인 해를 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에 주변에서는 이를 스토킹 행위로 받아들이지 않고,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해도 조사와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김 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남성이 당하는 스토킹도 분명 피해자에게 큰 정신적 외상을 남긴다.
심한 경우 트라우마를 견디다 못해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한다.
30대 남성 C씨는 SNS를 보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한 여성이 자신과 본인이 결혼한다며 가짜 온라인 청첩장을 만들어 SNS에 올린 후 이를 C씨 계정과 연결해 놓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C씨를 보고 마음에 들어 한 이 여성은 수 개월간 C씨에게 집요하게 연락하며 '만나달라', '사귀자'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하자 이런 행동을 했다.
주변인들이 C씨가 이 여성과 결혼하는 것으로 알게 돼 C씨는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지인들은 "얼마나 좋아하면 그러겠냐", "한 번 만나줘라", "잘해 봐라"고 놀려대기만 해 C씨에게 더 큰 상처를 남겼다.
친구들에게 하소연해도 소용없었고, 결국 C씨는 정신과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 했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남성에 대한 스토킹도 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남길 수 있고, 엄연한 범법 행위라고 지적했다.
남성의 스토킹만 스토킹 범죄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고, 남성이 스토킹 피해를 신고할 때 경찰이 이를 엄정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은 스토킹의 피해자이고, 남성은 가해자'라는 정형화된 인식이 있다 보니 이로 인해 피해 보는 남성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라며 "스토킹에 대한 젠더 중립적인 정의를 만들어 남성이든 여성이든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동성 간 스토킹, 사태 악화 후에야 인지하는 경우 많아…유명인도 시달려
20대 여성 D씨는 수개월 전 두 살 아래 여성 E씨와 취업 스터디에서 만나 친해졌다.
D씨는 자신을 곧잘 따르는 E씨를 귀여워했다.
취업 정보를 공유하고 고민 상담을 해주며 친구처럼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E씨가 자신이 입은 옷이나 신발을 따라 사기 시작했고, 자신의 행동을 따라 했다.
D씨는 '친하고 좋아하는 언니니까 따라 하고 싶은 거겠지'라고 생각하며 별것 아닌 일로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E씨의 연락 횟수가 점점 늘더니 부담스러울 정도로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해 댔다.
연락을 몇 번 피하자 E씨는 D씨의 집에 찾아오기까지 했다.
"우리 집 주소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E씨는 D씨 SNS에 올라온 풍경 사진을 포털사이트 '거리뷰' 기능으로 추적해 알아냈다고 했다.
그는 "나는 언니를 해칠 생각이 없고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이러는 것"이라며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했다.
그제서야 D씨는 그동안 자신이 E씨에게 스토킹 당해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처럼 동성 간 스토킹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성적인 호감을 느껴서 집착적 행동을 한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스토킹 행위가 심각해진 뒤에야 알아채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동성 간 스토킹도 분명한 스토킹 범죄이며, 때로는 그 집착의 정도가 극심해져 폭력과 상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박종석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은 "아직껏 동성 간 관계에서는 스토킹의 개념이 모호해 주목받지 못한 측면이 있지만, 동성 간 스토킹은 그 심각성이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에어로빅 여성 강사를 7년간 스토킹해 온 40대 여성이 강제추행 및 폭행 등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다.
남편과 자녀 둘을 둔 가정주부였던 F씨는 에어로빅 강사 G씨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해달라"고 요구하며 매일같이 쫓아다녔다.
심지어 G씨의 집이나 차에 몰래 들어가 있기도 했다.
G씨는 다른 에어로빅 센터로 직장을 옮기고 이사도 갔지만, 소용없었다.
F씨는 G씨가 자신을 무시한다며 G씨를 찾아가 뺨을 때리고 가슴을 움켜쥐었다.
F씨가 일하는 에어로빅 센터에서도 수시로 행패를 부렸다.
F씨는 경찰에 여러 차례 신고했고, G씨는 6차례 입건돼 벌금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G씨는 접근금지 가처분을 받은 기간에도 매일 F씨를 찾아갔고, 결국 법원은 G씨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동성 간 스토킹은 유명인에게도 왕왕 벌어진다.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를 자신의 이상형이나 롤모델로 여기는 이른바 '팬'이 광적으로 집착하는 행동을 보일 때가 있지만, 연예인 등은 이를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스토킹에 시달리는 유명인들 또한 극심한 정신적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으며, 이 또한 철저히 근절해야 할 범죄 행위라는 점이다.
배우 김창완 씨는 1990년대 후반 한 남성에게 10여 년간 스토킹을 당하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막을 방법이 없었다.
2000년에는 스토커가 김씨의 집에 몰래 들어가 김씨와 몸싸움을 벌이다 김씨의 코뼈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김씨는 스토킹 피해에 대해 "숨 쉬고 사는 일이 마치 창살 없는 감옥에 가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배우 김미숙 씨도 지난 2007년 자신을 무려 17년간 스토킹하며 괴롭힌 여성을 경찰에 신고했다.
처음에는 팬인 줄로만 알고 잘 대해주려고 했지만, 여성이 자신의 집을 알고 찾아와 침입하려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방송인 김숙 씨는 지난 2019년 10개월간 자신을 스토킹한 여성을 고소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극단적인 사례의 경우 영국처럼 판사가 스토킹 가해자에게 정신과 치료를 명령할 수 있는 법규를 검토할 만하다고 했지만, 일부에서는 신중한 접근을 요구한다.
법무법인 예현의 신민영 변호사는 "상당수 스토커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토킹이 정신병으로 분류가 안 돼 있어 치료감호로 접근을 못 하고 있다"며 "스토킹이 이처럼 심각한 경우에도 피고인의 정신 진단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 범죄자들이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종석 원장은 "스토킹은 정신병 중 하나인 '강박적 집착'으로 볼 수 있지만, 정신병으로 분류하면 의도와 달리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측면 때문에 학회에서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학부모 스토킹'에 시달리는 교사들…"모든 스토킹은 범죄라는 인식 가져야"
어린이집 교사 H씨는 한 달 전부터 학부모들의 문자메시지와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한 번도 개인 연락처를 공개한 적이 없는데,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낸 학부모들이 실시간으로 아이들의 활동 내용과 사진 등을 요구해 왔다.
H씨는 지역 온라인 맘카페에서 '어린이집 교사 개인 휴대전화 번호 알아내는 법' 등이 공유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퇴근 후에도 학부모들은 30분에서 한시간가량 자녀 관련 상담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H씨가 SNS에 친구들과 술자리를 함께한 사진을 올리면 곧바로 학부모들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선생님, SNS에 올린 그 사진들 뭔가요?", "선생님이 술 마시는 사진을 SNS에 올리면 아이들 교육에 안 좋지 않을까요?". 학부모들이 사생활에 사사건건 간섭하면서 H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어린이집이나 학교 교사 중 이러한 '학부모 스토킹'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이러한 행위도 분명히 스토킹에 해당한다.
'상대방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라는 스토킹의 정의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더도움의 이수경 변호사는 "스토킹처벌법은 남녀관계를 전제로 해서 만들어진 법이 아닌, 다양한 관계에서 나타나는 여러 유형의 스토킹 행위를 처벌하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진 법"이라며 "학부모들의 이러한 행동은 스토킹처벌법에서 규정하는 '스토킹' 행위에 해당하므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교사 I씨는 최근 개인용 휴대전화를 한 대 더 개통했다.
학부모들의 사생활 침해와 시도 때도 없는 무리한 민원 때문에 휴대전화가 울리기만 해도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주말에 가족 여행을 다녀온 I씨가 SNS에 사진을 올리기 무섭게 한 학부모에게서 "선생님, 지금 학생들 시험 기간 아닌가요? 설마 여행 다녀오셨나요?"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재학생뿐 아니라 졸업생의 학부모들까지 "우리 아이 생활기록부를 왜 더 잘 써주지 않았느냐" 등의 민원으로 밤낮없이 연락해 왔다.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한 I씨는 퇴근과 동시에 업무용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버렸다.
그러자 집 주소를 알아낸 학부모가 오물이 담긴 택배 상자를 보냈다고 한다.
상자 겉면에는 욕설이 잔뜩 적혀 있었다.
I씨는 "주변 동료 중에도 학부모들의 지나친 간섭을 피하고자 개인용 휴대전화를 따로 쓰는 사람들이 많다"며 "심지어 그 번호마저 학부모들에게 알려져 주기적으로 번호를 바꾸기도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여러 유형의 스토킹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법에 따른 엄정한 처벌과 함께 국민의 인식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성 간 관계는 물론 동성 사이나 교사와 학부모 간, 서비스 제공자와 고객 사이 등 다양한 관계에서 스토킹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하고, 자신의 지나친 행동이 혹시 스토킹에 해당하지 않는지 자문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시민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성엽 아주대 글로벌미래교육원장은 "정부가 국민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두고 어려서부터 스토킹에 대한 인식을 바르게 정립할 수 있도록 하는 종합적인 대책을 펼쳐야 한다"며 "학교와 직장 등에서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하는 것처럼 '스토킹 예방 교육'이 이뤄져야 하며, 다양한 유형의 스토킹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사회적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종석 원장은 "스토킹의 정의 즉 '어디부터 어디까지 처벌 대상인지'에 대해 사람들의 주관적 느낌과 법률적 기준의 괴리를 좁히는 등 법을 좀 더 세부적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무엇보다 대중들에게 남녀문제를 떠나 모든 스토킹 행위는 엄연한 '폭력'이고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친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동성 간 스토킹도 심심찮게 발생
교사 사생활 파고드는 학부모도…"다양한 유형의 스토킹, 모두 심각하게 여기고 근절해야"
새로 만난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사진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자 B씨에게서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나랑 만날 때는 왜 우리 사진을 SNS에 올리지 않았어?"
"여자친구가 날씬하고 예뻐서 좋겠네?"
"나는 너랑 헤어진 이후로 정신과에 다니고 있어."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잘 지켜봐."
B씨는 A씨가 답장하지 않자 밤낮 가리지 않고 전화를 해 댔다.
전화번호를 차단하자, 이번에는 A씨의 새 여자친구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며 괴롭혔다.
B씨는 A씨의 직장까지 찾아와 난동을 부렸고, A씨는 경찰에 "전 여자친구가 직장까지 찾아와서 괴롭히고 있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30분 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별일 아닌 것 같은데 여성분을 잘 달래서 보내라"고 말한 뒤 돌아가 버렸다.
A씨는 친구들과 고민 상담을 했지만, 친구들마저 "아직도 너를 좋아하는 모양이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스토킹은 통상 남성이 여성을 지속해서 괴롭히고 집착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토킹의 유형은 이보다 훨씬 다양하다.
여성이 남성을 스토킹하는 경우, 동성(同性) 간 스토킹, 학부모가 교사의 사생활에 간섭하고 괴롭히는 경우 등 여러 유형의 스토킹이 존재한다.
'사각지대의 스토킹'이라고 할 만한 이러한 스토킹에 대해 전문가들은 "분명히 스토킹이고, 법적 처벌 대상"이 된다고 잘라 말한다.
스토킹 행위는 어떠한 관계에서도 나타날 수 있고, 모든 스토킹은 피해자에게 크나큰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다는 얘기다.
실제 사례를 통해 다양한 스토킹 유형과 이를 근절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합의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 남성 향한 스토킹은 괜찮다?…"피해자는 극심한 정신적 후유증 시달려"
직장인 김모(25) 씨는 군 복무 시절 일병 때 휴가를 나가 한 여성과 호감을 갖고 몇 차례 만났다.
그런데 부대 복귀 후 여성이 매일 '보고 싶다', '답장해라', '너 때문에 내가 미치겠다' 등 페이스북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김 씨가 제대로 답장하지 않자 여성은 예고 없이 김씨의 부대로 면회를 왔고, 대뜸 "사귀자"고 요구했다.
김 씨는 완곡히 거절하고 돌려보냈지만, 전역이 두 달 남은 시점까지 여성의 연락은 끊이지 않았다.
김씨는 여성의 전화번호를 차단하고 싶었지만, 군 복무 중 무슨 사달이 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차단할 수 없었다고 한다.
김 씨의 동기들은 "그 여자가 너의 계급도 알고 부대도 아니 전역일에 찾아와 테러하는 것 아니냐"며 놀려댔다.
김 씨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정말로 여성이 자신을 찾아올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전역 직전 김씨는 계속해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여성에게 "제발 그만해달라"고 몇 시간 동안 빌고 또 빌었다.
그의 애원에 여성은 이후로 드문드문 연락하다가 그만뒀다고 한다.
김 씨는 군 복무를 마치고 직장 생활을 하는 지금까지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이성 친구를 만날 때 '어디냐', '연락해달라' 등의 메시지를 받으면 자신도 모르게 공포감을 느끼는 등 이성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여성이 남성을 스토킹하는 경우 폭행, 상해 등 물리적인 해를 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에 주변에서는 이를 스토킹 행위로 받아들이지 않고,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해도 조사와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김 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남성이 당하는 스토킹도 분명 피해자에게 큰 정신적 외상을 남긴다.
심한 경우 트라우마를 견디다 못해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한다.
30대 남성 C씨는 SNS를 보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한 여성이 자신과 본인이 결혼한다며 가짜 온라인 청첩장을 만들어 SNS에 올린 후 이를 C씨 계정과 연결해 놓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C씨를 보고 마음에 들어 한 이 여성은 수 개월간 C씨에게 집요하게 연락하며 '만나달라', '사귀자'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하자 이런 행동을 했다.
주변인들이 C씨가 이 여성과 결혼하는 것으로 알게 돼 C씨는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지인들은 "얼마나 좋아하면 그러겠냐", "한 번 만나줘라", "잘해 봐라"고 놀려대기만 해 C씨에게 더 큰 상처를 남겼다.
친구들에게 하소연해도 소용없었고, 결국 C씨는 정신과에서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 했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남성에 대한 스토킹도 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남길 수 있고, 엄연한 범법 행위라고 지적했다.
남성의 스토킹만 스토킹 범죄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고, 남성이 스토킹 피해를 신고할 때 경찰이 이를 엄정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은 스토킹의 피해자이고, 남성은 가해자'라는 정형화된 인식이 있다 보니 이로 인해 피해 보는 남성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라며 "스토킹에 대한 젠더 중립적인 정의를 만들어 남성이든 여성이든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동성 간 스토킹, 사태 악화 후에야 인지하는 경우 많아…유명인도 시달려
20대 여성 D씨는 수개월 전 두 살 아래 여성 E씨와 취업 스터디에서 만나 친해졌다.
D씨는 자신을 곧잘 따르는 E씨를 귀여워했다.
취업 정보를 공유하고 고민 상담을 해주며 친구처럼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E씨가 자신이 입은 옷이나 신발을 따라 사기 시작했고, 자신의 행동을 따라 했다.
D씨는 '친하고 좋아하는 언니니까 따라 하고 싶은 거겠지'라고 생각하며 별것 아닌 일로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E씨의 연락 횟수가 점점 늘더니 부담스러울 정도로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해 댔다.
연락을 몇 번 피하자 E씨는 D씨의 집에 찾아오기까지 했다.
"우리 집 주소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E씨는 D씨 SNS에 올라온 풍경 사진을 포털사이트 '거리뷰' 기능으로 추적해 알아냈다고 했다.
그는 "나는 언니를 해칠 생각이 없고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이러는 것"이라며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했다.
그제서야 D씨는 그동안 자신이 E씨에게 스토킹 당해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처럼 동성 간 스토킹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성적인 호감을 느껴서 집착적 행동을 한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스토킹 행위가 심각해진 뒤에야 알아채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동성 간 스토킹도 분명한 스토킹 범죄이며, 때로는 그 집착의 정도가 극심해져 폭력과 상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박종석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은 "아직껏 동성 간 관계에서는 스토킹의 개념이 모호해 주목받지 못한 측면이 있지만, 동성 간 스토킹은 그 심각성이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에어로빅 여성 강사를 7년간 스토킹해 온 40대 여성이 강제추행 및 폭행 등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다.
남편과 자녀 둘을 둔 가정주부였던 F씨는 에어로빅 강사 G씨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해달라"고 요구하며 매일같이 쫓아다녔다.
심지어 G씨의 집이나 차에 몰래 들어가 있기도 했다.
G씨는 다른 에어로빅 센터로 직장을 옮기고 이사도 갔지만, 소용없었다.
F씨는 G씨가 자신을 무시한다며 G씨를 찾아가 뺨을 때리고 가슴을 움켜쥐었다.
F씨가 일하는 에어로빅 센터에서도 수시로 행패를 부렸다.
F씨는 경찰에 여러 차례 신고했고, G씨는 6차례 입건돼 벌금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G씨는 접근금지 가처분을 받은 기간에도 매일 F씨를 찾아갔고, 결국 법원은 G씨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동성 간 스토킹은 유명인에게도 왕왕 벌어진다.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를 자신의 이상형이나 롤모델로 여기는 이른바 '팬'이 광적으로 집착하는 행동을 보일 때가 있지만, 연예인 등은 이를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스토킹에 시달리는 유명인들 또한 극심한 정신적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으며, 이 또한 철저히 근절해야 할 범죄 행위라는 점이다.
배우 김창완 씨는 1990년대 후반 한 남성에게 10여 년간 스토킹을 당하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막을 방법이 없었다.
2000년에는 스토커가 김씨의 집에 몰래 들어가 김씨와 몸싸움을 벌이다 김씨의 코뼈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김씨는 스토킹 피해에 대해 "숨 쉬고 사는 일이 마치 창살 없는 감옥에 가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배우 김미숙 씨도 지난 2007년 자신을 무려 17년간 스토킹하며 괴롭힌 여성을 경찰에 신고했다.
처음에는 팬인 줄로만 알고 잘 대해주려고 했지만, 여성이 자신의 집을 알고 찾아와 침입하려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방송인 김숙 씨는 지난 2019년 10개월간 자신을 스토킹한 여성을 고소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극단적인 사례의 경우 영국처럼 판사가 스토킹 가해자에게 정신과 치료를 명령할 수 있는 법규를 검토할 만하다고 했지만, 일부에서는 신중한 접근을 요구한다.
법무법인 예현의 신민영 변호사는 "상당수 스토커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토킹이 정신병으로 분류가 안 돼 있어 치료감호로 접근을 못 하고 있다"며 "스토킹이 이처럼 심각한 경우에도 피고인의 정신 진단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 범죄자들이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종석 원장은 "스토킹은 정신병 중 하나인 '강박적 집착'으로 볼 수 있지만, 정신병으로 분류하면 의도와 달리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측면 때문에 학회에서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학부모 스토킹'에 시달리는 교사들…"모든 스토킹은 범죄라는 인식 가져야"
어린이집 교사 H씨는 한 달 전부터 학부모들의 문자메시지와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한 번도 개인 연락처를 공개한 적이 없는데,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낸 학부모들이 실시간으로 아이들의 활동 내용과 사진 등을 요구해 왔다.
H씨는 지역 온라인 맘카페에서 '어린이집 교사 개인 휴대전화 번호 알아내는 법' 등이 공유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퇴근 후에도 학부모들은 30분에서 한시간가량 자녀 관련 상담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H씨가 SNS에 친구들과 술자리를 함께한 사진을 올리면 곧바로 학부모들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선생님, SNS에 올린 그 사진들 뭔가요?", "선생님이 술 마시는 사진을 SNS에 올리면 아이들 교육에 안 좋지 않을까요?". 학부모들이 사생활에 사사건건 간섭하면서 H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어린이집이나 학교 교사 중 이러한 '학부모 스토킹'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이러한 행위도 분명히 스토킹에 해당한다.
'상대방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라는 스토킹의 정의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더도움의 이수경 변호사는 "스토킹처벌법은 남녀관계를 전제로 해서 만들어진 법이 아닌, 다양한 관계에서 나타나는 여러 유형의 스토킹 행위를 처벌하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진 법"이라며 "학부모들의 이러한 행동은 스토킹처벌법에서 규정하는 '스토킹' 행위에 해당하므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교사 I씨는 최근 개인용 휴대전화를 한 대 더 개통했다.
학부모들의 사생활 침해와 시도 때도 없는 무리한 민원 때문에 휴대전화가 울리기만 해도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주말에 가족 여행을 다녀온 I씨가 SNS에 사진을 올리기 무섭게 한 학부모에게서 "선생님, 지금 학생들 시험 기간 아닌가요? 설마 여행 다녀오셨나요?"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재학생뿐 아니라 졸업생의 학부모들까지 "우리 아이 생활기록부를 왜 더 잘 써주지 않았느냐" 등의 민원으로 밤낮없이 연락해 왔다.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한 I씨는 퇴근과 동시에 업무용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버렸다.
그러자 집 주소를 알아낸 학부모가 오물이 담긴 택배 상자를 보냈다고 한다.
상자 겉면에는 욕설이 잔뜩 적혀 있었다.
I씨는 "주변 동료 중에도 학부모들의 지나친 간섭을 피하고자 개인용 휴대전화를 따로 쓰는 사람들이 많다"며 "심지어 그 번호마저 학부모들에게 알려져 주기적으로 번호를 바꾸기도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여러 유형의 스토킹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법에 따른 엄정한 처벌과 함께 국민의 인식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성 간 관계는 물론 동성 사이나 교사와 학부모 간, 서비스 제공자와 고객 사이 등 다양한 관계에서 스토킹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하고, 자신의 지나친 행동이 혹시 스토킹에 해당하지 않는지 자문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시민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성엽 아주대 글로벌미래교육원장은 "정부가 국민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두고 어려서부터 스토킹에 대한 인식을 바르게 정립할 수 있도록 하는 종합적인 대책을 펼쳐야 한다"며 "학교와 직장 등에서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하는 것처럼 '스토킹 예방 교육'이 이뤄져야 하며, 다양한 유형의 스토킹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사회적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종석 원장은 "스토킹의 정의 즉 '어디부터 어디까지 처벌 대상인지'에 대해 사람들의 주관적 느낌과 법률적 기준의 괴리를 좁히는 등 법을 좀 더 세부적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무엇보다 대중들에게 남녀문제를 떠나 모든 스토킹 행위는 엄연한 '폭력'이고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