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거부 뻔한데 '백신 평화 공세'…친중 진영 동조에 대만 분열
코로나 확산·백신 지연에 집권 2기 차이잉원 최대 도전 직면
대만 코로나 위기에 중국 '차이잉원 흔들기' 나서나
세계적인 방역 모범으로 손꼽히던 대만이 뒤늦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본격 확산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중국이 대만에 부족한 백신을 제공하겠다면서 '평화 공세'에 나섰다.

하지만 대만에서는 이런 중국 측의 제안이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을 흔들고 친중 진영에 힘을 실어주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

최근 중국이 공개적으로 대만에 백신 제공 의향을 밝힌 후 '주겠다'는 중국 측과 '안 받겠다'는 대만 측이 연일 옥신각신 중이다.

주펑롄(朱鳳蓮)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24일 브리핑에서 "(대만) 섬 안의 일부 단체와 인사들이 대륙(중국) 백신 구매를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신속히 준비해 많은 대만 동포가 시급히 대륙 백신을 쓸 수 있도록 하기를 희망한다"면서 백신 제공 의사를 공식화했다.

그 직후 상하이의약위생발전기금회와 장쑤성 해협양안문화교류촉진회 등 관변단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대만 동포'에 백신을 기증하겠다고 나섰다.

이와 별도로 대만이 구매를 희망하는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의 중국 및 대만 독점 공급권을 가진 중국 푸싱의약그룹도 대만에 백신을 팔 의향이 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대만 당국은 중국 정부의 이런 제안에 마뜩잖은 반응을 보인다.

"대륙 측은 대만의 코로나19 확산이 심해질 때 통일전선 분열 술책을 쓰고 있다"는 대만 대륙위원회의 첫 반응은 대만 측의 부정적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만의 '방역 지휘관'인 천스중(陳時中) 위생부장은 26일 브리핑에서 "대륙(중국)이 현재 맞고 있는 백신을 우리가 함부로 맞을 수는 없다"며 시노팜(중국의약그룹) 등 중국 제약사의 백신 사용 가능성을 일축했다.

다만 그는 "중국이 지금 맞고 않는 백신에는 약간의 관심이 있다"고 언급했다.

'중국이 맞지 않는 백신'이란 화이자 백신을 말한다.

푸싱의약그룹이 수입하는 화이자 백신은 홍콩에서는 이미 쓰이고 있지만 중국 본토에서는 아직 긴급사용 승인이 안 났다.

대만은 중국이 주는 백신은 필요 없으니 대만이 따로 백신을 사는 것을 방해나 하지 말라는 입장이다.

대륙위 대변인은 26일 "대륙 측이 다시는 대만이 방역 물자를 사는 것을 막지 않고, 통일전선 전술 차원의 압박을 중지하는 것이야말로 대만에 선의를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이 총통은 전날 민진당 회의에서 "바이오엔테크 백신은 독일의 원 제조사와 계약 체결이 가까웠지만 중국의 개입으로 현재까지 성사시킬 방법이 없었다"면서 처음으로 '중국의 방해'를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대만 코로나 위기에 중국 '차이잉원 흔들기' 나서나
대만 측의 주장대로 실제로 중국의 입김이 작용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대만과 바이오엔테크가 지난 2월 백신 구매 계약 체결 직전 단계까지 갔지만 바이오엔테크 측이 돌연 이를 번복한 것은 사실이다.

중국의 '백신 평화 공세'는 차이 총통을 비롯한 집권 민진당에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주고 있다.

차이 총통이 이끄는 대만 정부는 2019년 말 중국 우한(武漢)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이를 세계에 가장 먼저 경고하고 중국발 입국을 차단하는 등 기민한 대응으로 최근까지도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코로나19 방역 성과를 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지역사회 감염이 폭발한 가운데 백신 도입 속도는 늦은 편이어서 대만 내부에서 불만이 고조됐다.

중국의 공개적인 백신 공급 제안은 이런 대만 민중의 불만을 한층 더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

차이잉원 정부가 중국의 백신 제안을 거절한다면 야권으로부터 정치적 목적으로 시민들의 백신 접종 기회를 걷어차 버렸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실제로 코로나19의 뒤늦은 유행 속에서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작년 1월 연임 성공 이후 처음으로 50% 밑으로 내려갔다.

차이 총통이 집권 2기 최대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중국과 거리두기를 통해 높은 지지도를 누려온 차이 총통으로서는 중국 백신을 받아도, 거부해도 모두 정치적 부담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중국의 백신 제공 제안에 국민당 일각을 중심으로 한 친중 진영이 적극적으로 동조하면서 대만의 사회의 내부 갈등도 고조되는 모습이다.

백신 부족 속에서 국민당 소속 린밍친(林明溱) 대만 난터우(南投)현 현장은 26일 중국 푸싱제약으로부터 화이자 백신 30만회분을 수입하겠다면서 위생부에 정식으로 서면 신청을 내 대만에서 이를 둘러싼 뜨거운 논란이 불거졌다.

대만 코로나 위기에 중국 '차이잉원 흔들기' 나서나
일부 국민당 인사들은 최근 들어 대만 위생부 앞으로 몰려가 중국산 백신 수입하라면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자크 딜라이얼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대만 중앙통신사와 인터뷰에서 "양안 간에 공공위생, 항공안전, 기후변화 등 실무적인 의제를 논의할 때도 항상 정치적 의제가 돌출했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라며 "단편적으로는 돕겠다는 것이지만 실제 의도는 대만을 중국의 지방으로 간주, 대만이 '중앙'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모습을 보이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만 국방부 싱크탱크인 국방안전연구원(INDSR)의 쑤쯔윈(蘇紫雲) 연구원은 "베이징 측이 백신을 정치화 도구로 삼으려는 의도가 매우 명확하다"며 "중국 백신은 사용된 나라들에서 효과도 불안정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