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는 네이버 제페토에 가상공간 ‘구찌 빌라’를 열고 신상품을 선보였다.
구찌는 네이버 제페토에 가상공간 ‘구찌 빌라’를 열고 신상품을 선보였다.
디렉트투아바타(D2A). 코로나19로 움츠렸던 세계 패션업계를 들썩이게 한 단어다. 오픈마켓, 백화점을 거치지 않고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디렉트투컨슈머(D2C) 시대를 지나 아바타에게 직접 다가가는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다.

아바타는 지금까지 메타버스의 핵심 요소다. 1990년대 아이들이 용돈을 모아 서태지·듀스 브랜드로 불렸던 ‘스톰’ 청바지를 구입한 것처럼 2020년대 아이들은 로블록스 제페토에서 자신의 아바타에게 옷을 입히기 위해 돈을 쓴다.
D2A 시장 규모는 2017년 300억달러(약 33조8000억원)에서 2022년 500억달러(약 56조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포브스는 전망했다. 포트나이트에서만 2019년 아바타 관련 매출이 10억달러에 이른다.

패션업계가 이 시장에 가장 적극적이다. 그 자체가 새로운 시장일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데도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2025년이 되면 세계 명품 소비의 45%가 Z세대로부터 나올 것이란 전망이 이들을 메타버스로 움직이고 있다.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에서 패션쇼를 연 패션기업 마크제이콥스.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에서 패션쇼를 연 패션기업 마크제이콥스.
루이비통은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 사용자를 위한 아바타용 의상과 트로피를 디자인했다. 구찌는 모바일 게임회사 와일드라이프의 테니스크래시 콜라보 작업에 참여했다. 구찌가 디자인한 의상을 게임 속 캐릭터에게 입힐 수 있다. 테니스 코트에는 구찌 광고판이 붙었다. 제페토의 아바타 상점에도 구찌 의상을 진열했다. 마크제이콥스와 발렌티노는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에서 패션쇼를 했다. 스냅챗 사용자는 증강현실(AR) 화면에서 폴로를 만날 수 있다. 랄프로렌이 스냅챗과 함께 서비스를 시작했다.

자체 플랫폼을 선보인 브랜드도 있다. 버버리는 윈드서핑 레이싱 게임 비서프를 출시했다. 이곳에선 게임 캐릭터가 버버리 옷을 입고 경주한다. 발렌시아가는 스케치파브와 손잡고 비디오게임 패션쇼를 열었다.

아바타 의상은 현실에서 구입할 수 있는 명품에 비해 저렴하다. 디지털 세상에선 작은 돈으로도 명품을 가질 수 있다. 이른바 ‘마이크로 모먼트’ 소비다. 경제상황이 어려울 때 저렴한 사치품을 구매하는 립스틱 효과처럼 가상공간에서 접근 가능한 명품으로 아바타를 치장하는 ‘디지털 립스틱 효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디지털 트윈이다. 현실을 똑같이 재현하는 메타버스의 속성 때문에 지갑을 연다는 것이다. 단순한 소유를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소비하는 새로운 경향도 D2A 시장을 키울 것이라는 평가다.

사만다 울프 뉴욕대 부교수는 “디지털 트윈으로 만들어진 아바타는 사용자의 정체성을 그대로 반영한다”며 “10달러짜리 루이비통 아바타 의상은 가상세계에서 보면 비싸겠지만, 디지털 구매를 통해 좋아하는 패션 디자이너의 옷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저렴한 사치품이 된다”고 했다. 현실과 가상공간이 잘 연결될수록 D2A 소비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패션업계가 D2A 시장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대체 불가능 토큰(NFT) 기술 때문이다. 이를 이용하면 가상세계에서 가짜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게 불가능해진다. 가짜 상품 소비를 꺼리는 젊은 세대가 아바타 소비를 늘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메타버스가 패션업계에 새로운 르네상스를 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메타버스 플랫폼 안에서 사용자들은 소비자이자 생산자다. 이들이 만든 아바타 의상이 실제 의상으로 출시되는 날도 머지않았다. 세계적 디자이너인 코코샤넬이 21세기에 다시 나타난다면 그는 로블록스에서 아바타가 입을 의상을 디자인하고 있는 한 초등학생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