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태평로 한은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경제 상황과 금리 동결 배경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태평로 한은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경제 상황과 금리 동결 배경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연내 금리 인상 여부는 경제 상황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올해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0.5%로 동결한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서두르면 안 되지만 시기를 놓쳐서도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실물경제와 금융 안정 상황 변화에 맞춰 통화정책을 질서 있게 조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그가 기준금리 인상 시점과 여부에 대해 그동안 극도로 말을 아꼈던 것을 고려할 때 뚜렷한 금리 인상 신호를 시장에 보냈다는 평가다.

확 달라진 이주열 ‘화법’

'매파色' 짙어진 이주열…가계빚 폭증에 연내 금리인상 첫 시사
이 총재의 화법은 한 달 만에 확 달라졌다.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4월까지 그는 “완화적 통화정책을 바꿀 때가 아니다”는 내용의 발언을 수차례 반복하며 금리인상 기대를 꺾는 데 치중했다. 하지만 이날 기자간담회에선 발언 곳곳에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신호를 담았다.

금통위에 같이 참석한 인사들은 “이 총재는 금융안정을 강조하는 강성 매파”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이 총재를 비롯한 금통위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0.5%로 내렸다. 하지만 이 총재는 이날 완화적 통화정책이 불러온 그림자에 대해 여러 차례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금리 정상화를 서둘러서도 안 되지만 지연됐을 때 부작용이 크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가 이처럼 매파적으로 돌아선 것은 가계부채가 빠르게 뛰고 있기 때문이다.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인 연 0.5%로 내려가면서 폭증한 가계부채가 자산시장으로 흘러가는 양상이 뚜렷해졌다. 한은이 지난 25일 발표한 올해 1분기 말 가계신용(가계 빚) 잔액은 1765조원으로, 작년 1분기 말과 비교해 1년 만에 153조6000억원 불었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 증가세가 더 지속되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상당히 크고 큰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며 “증가세가 지속되는 것은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美보다 앞서 통화긴축 선회 가능성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진 것도 이 총재가 기준금리 인상 신호를 시장에 내보낸 배경으로 꼽힌다. 지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를 기록해 한은의 연간 물가 목표치(2%)를 웃돈 것은 물론 2017년 8월(2.5%) 후 최고치로 집계됐다. 앞으로 1년 동안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나타내는 기대인플레이션율도 이달 2.2%로 2019년 5월(2.2%) 후 가장 높았다.

연일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언급하는 미국 중앙은행(Fed)보다 앞서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선회할 뜻도 내비쳤다. 이 총재는 “우리가 (기준금리 인상을) 미뤘다가 Fed가 통화정책을 변화할 때 따라가면 그 사이에 금융 불균형이 확대될 수 있다”며 “또한 바깥 여건에 따라 금리 조정 시기를 조절해야 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 3월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못할 것이라는 일부 시각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금통위가 금융·경제 상황에 맞춰서 하는 것”이라며 “정치 일정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10~11월 금리인상 가시화

앞으로 기준금리 인상 신호는 더 강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음달 12일 이 총재의 ‘한은 71주년 창립기념사’에 더 뚜렷한 인상 신호가 담길 것이라는 예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 소수의견 등장도 관심사다. 지난해 7월부터 이번까지 여덟 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결정회의에서 금통위원 7명이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하지만 7~10월에 금리인상을 주장하는 소수의견이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은이 공개한 ‘2021년 4월 15일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을 보면 한 금통위원은 “금융안정 이슈를 통화정책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하는 등 매파 성향을 드러냈다. JP모간 분석에 따르면 이 같은 금융불균형을 언급한 매파 위원들은 조윤제·고승범·임지원 위원으로 추정된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이 총재의 매파 발언 수위가 강해진 것은 물론 다음달 공개되는 5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더 확연한 인상 신호가 담겼을 것”이라며 “Fed의 테이퍼링 신호를 보고 한은도 올 10~11월에 금리를 인상할 것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