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서 '개혁'이란 어떤 체제나 제도를 새롭게 뜯어고치는 일을 뜻합니다. '부족한 부분을 뜯어고쳐서 한 조직이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게끔 시정해 나가는 과정'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개혁을 통해 조직이 제 역할을 더욱 잘 하게 된다면 그 개혁은 성공적인 개혁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개혁을 통해 오히려 조직이 제 역할을 못하게 된다면 그 개혁은 실패한 개혁이 되겠죠.

검찰의 역할은 국민 모두가 깨끗하고 안전한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곳곳의 범죄를 수사하고 부패를 척결하는 겁니다. (출처 : 대검찰청 홈페이지, '검찰의 사명') 그리고 지금 '검찰개혁'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따라서 '검찰개혁'이 성공적인 개혁이 되려면 '검찰개혁'이 끝난 뒤 검찰은 사회 곳곳의 범죄를 더욱 잘 수사하고 부패를 더욱 잘 처단하는 조직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검찰개혁은 검찰의 팔다리를 자르는 개혁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팔다리에 문제가 생겨서 엉뚱한 물건을 집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걷고 있다면 이를 고쳐서 제 기능을 하게끔 만들어줘야 하는데 아예 팔다리를 잘라버리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높으신 분들은 상관없다. 서민만 피해볼 것"

28일 법무부 과천청사로 출근하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28일 법무부 과천청사로 출근하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검찰개혁에 따른 숙제"라고 했던 검찰 조직개편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검찰이 직접수사를 할 수 있는 '6대 범죄'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는 반부패수사부 등 전담부에서만 담당합니다. 전담부보다 그 수가 많은 형사부에서는 기존과 달리 수사개시를 할 수 없습니다. 전담부가 없는 검찰청은 형사부 말(末)부에서 검찰총장 승인을 받아서 직접수사를 개시해야 합니다.

△형사부에서 하는 인지수사 사건은 모두 전담부로 넘겨야하며 △전담부가 없는 곳은 총장의 허락이 떨어져야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방검찰청의 A 차장검사는 "지금 검찰개혁은 수사역량을 키우고 범죄자를 잘 잡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오히려 범죄자 잘 잡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형사부에서 인지수사할 게 있으면 다 직접수사 부서로 넘기라는 건데 상식적으로 다른 사람이 하던 걸 중간에서 받아서 이어서 하면 잘 되겠습니까? 기존에 맡아서 해오던 사건들도 있을텐데 중간에 넘어온 사건들은 아무래도 정성도 다르고, 마음가짐도 다르고… 당연한 겁니다.

그리고 형사부에서 하는 인지수사 대부분은 서민 피해 사건입니다. 그런 사건들을 다 넘기라는 겁니다. 오히려 고위공직자들은 별로 상관 없어요.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 몫입니다.

수사 좀 해본 사람들은 다 알거에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지방검찰청 A 차장검사
전담부서가 없는 곳은 총장의 허락을 받고 수사를 개시해야 합니다. 수도권 검찰청의 B 부장검사는 "황당하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조직개편안을 짜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행정부처가 상시업무를 하는데 일일이 기관장의 허가를 받고 합니까. 황당합니다. 그것도 수사를 하는 검찰에서?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지 일단 정권 입장에선 장(長) 한명만 휘어잡으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정권에 민감한 수사 개시 못 하는거죠. 개시 돼도 문제입니다. 총장님한테까지 승인 받으려면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어요? 그것 때문에 초기 압수수색 지체되면 그건 어떻게 할겁니까? 걱정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수도권 검찰청 B 부장검사
이에 대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금도 대검 예규상 총장의 승인을 받도록 돼 있다. 그걸 법규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B부장검사는 그걸 법규화하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예컨대 정권에 민감한 수사에 있어서 '어? 왜 승인 안 받았어?'라고 하면서 공식적으로 시비를 걸라면 걸 수 있는 상황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애시당초 그런 상황을 만들면 안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조직개편안에 따르면 마약 범죄 등을 담당하는 강력부는 반부패수사부와 통합됩니다. 이에 대해 벌써부터 강력범죄 수사의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강력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강력부와 반부패수사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수사를 하는 곳"이라며 "검찰 직접수사 권한을 줄이려고 대충 두 부서를 급하게 묶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가뜩이나 마약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강력부를 통폐합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수도권 검찰청의 C부장검사는 "성질도 다르고 보직경로도 전혀 다른 두 곳을 '인지부서'라는 이유로 통폐합 시킨 것"이라며 "앞서 검경 수사권 조정을 할 때 검찰에 강력부 인지기능을 살려뒀던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인데…스스로 그 취지를 6개월만에 뒤집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직접수사를 줄인다고 해서 일반 국민들에게 좋을 것은 별로 없다"며 "나라를 둘로 쪼개서 몰아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의 조직개편안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렇게 보안이 지켜지지 않는 국가기관이 있나. 창피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C부장검사는 "국민과 직결된 검찰 조직개편안은 오히려 공론화를 시켜야하는 것 아닌가? 사생활이나 인권침해 내용도 아니고 그것을 왜 기밀로 하나?"라고 되묻기도 했습니다.

팔다리 자르는 게 능사일까

어떤 조직이든 공(功·공로)과 과(過·과실)가 있기 마련입니다. 조직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과'는 발라내야 합니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마땅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조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내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이상의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편을 수사할 때는 '인권'이라는 가치를 앞세워 어떻게든 검찰권을 제한하고, 반대로 다른 편을 수사할 때는 인권보다 검찰권을 앞세워 어떻게든 수사역량을 총동원한다면 "정권의 권력기관 사유화를 막아야 한다. 정권이 권력기관을 사유화하게 되면 공동체의 유지, 존속을 위해 사용해야 할 권력기관을 정권의 유지, 존속을 위해 사용한다 (출처 :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고 했던 현 정부의 '검찰개혁'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걸까요?

팔다리를 자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어쨌든 검찰은 국민을 위해 사회 곳곳의 범죄를 수사하는 국가최고 법집행기관입니다. 그리고 한번 잘린 팔다리는 쉽게 자라나지 않습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