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저출산, 실업 등 우리 사회 모든 문제의 원천은 저성장”이라며 “성장 회복이 우리가 닥친 온갖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기업 정책에 대해선 “제가 정한 단 하나의 원칙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경제 현안’인 암호화폐(가상화폐) 과세 문제에 대해 “주식 양도차익에 과세하기 시작하는 2023년과 시기를 맞출 필요가 있다”며 내년 초로 예정된 과세 시점을 1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사는 30일 경기 수원 경기도청 상황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이재명표 경제정책 1호는 공정성장”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기본소득 주창자인 이 지사가 대선을 10개월 앞두고 중도 확장을 위해 ‘성장 담론’을 꺼내들었다는 분석이다.

이 지사는 “사람들은 저를 분배주의자라고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불평등 해소’라는 말을 쓴 적이 없다”며 “해소는 불가능하고 그(불평등) 속도를 늦추거나 정도를 완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본소득 공약에 대해선 “1인당 연 100만원 정도(지급)는 우리 재정이 충분히 감당할수 있다”면서도 “저는 (성공을) 확신하지만, 국민적 동의를 위해 공론화를 거쳐 순차적으로 점진적으로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기존 ‘가능한 빨리’란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난 발언이다.

이 지사는 “공정성이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라며 “공정성 회복, 공정한 자원의 배분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려야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세금에 대해서는 “최고 40%를 웃도는 근로소득세에 비해 양도세, 보유세 실효세율은 터무없이 낮다”며 “노동소득에 비해 자산소득 세율은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이 지사는 기업들이 요구하는 규제 완화에 대해 “나쁜 규제는 없애고 좋은 규제는 강화하는 규제 합리화를 하겠다”며 “기업인들에게 필요한 행정 지원은 (특혜 같은) 눈치 보지 않고 파격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지사 "기업 괴롭히지 않고
창의적 활동하게 놔두는 게 최고의 경제정책"

이재명 경기지사는 30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유독 ‘공정’과 ‘성장’의 가치를 강조했다. ‘간판공약’인 기본소득에 대해선 “국민적 동의를 거쳐 점진적, 순차적으로 도입하겠다”며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듯한 입장도 내비쳤다. ‘한국의 차베스(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반시장주의자’라는 언론 비판에 대해서도 “오해가 크다”고며 적극 반박했다. 대선이 약 9개월 앞으로 다가오자 합리적인 중도층을 겨냥, ‘우로 한클릭 이동했다’는 해석이 나올 법했다.

기업인들에 대해서도 “제가 본 기업인들은 시장에서 성공하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나는 사람들이었다”며 “기업을 괴롭히지 말고, (인·허가 업무에)시간을 끌지 않고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놔두는 게 최고의 기업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재벌기업의 비정상적인 지배구조부터 바꿔야 한다”(저서 이재명은 합니다), “재난지원금을 30만원씩 100번을 더 줘도 상관없다”고 했던 과거 입장들과 거리가 있었다.

인터뷰 곳곳에서 여유도 느껴졌다. 여야를 통틀어 대선 후보 여론조사 1위인 현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그는 ‘공정’의 가치를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서 차용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껄껄’ 웃으며 양복 깃에 찬 ‘경기도 배지’를 가리켰다. 그는 “3년 전 도지사 취임 직후 내건 경기도 슬로건이 ‘새로운 경기, 공정한 세상’”이라며 “윤 전 총장이 (내 것을) 가져간 것”이라고 했다.

대담= 박준동 정책·국제부문장, 서정환 정치부장/정리= 전범진/좌동욱 기자

▷오늘날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공정성이 중요한 시대적 화두입니다. 공정성 회복, 공정한 자원 배분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고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혹시 ‘공정’이라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화두를 차용한 건 아닌가요.

“(크게 껄껄 웃으면서 양복 깃에 찬 경기도 배지를 가르키며)2018년 7월 도지사 취임 직후에 경기도의 슬로건을 ‘새로운 경기 공정한 세상’이라고 내걸었습니다. 공정이 시대적 화두가 될 것이라는 확신에서였습니다. 만약 차용했다면 윤 총장이 (내 것을) 가져간 것으로 봐야 합니다.”

▷공정성을 회복하려면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가요.

“용기와 결단의 리더십이 정말 중요하다고 봅니다. 문제를 알고 있고 해결방안도 알지만 두려워서 못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기득권의 저항과 갈등 때문입니다. 잠시 고통스럽고 비난을 받더라도 결과를 낼 수 있다면 국민들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사례를 들 수 있을까요.

“경기지사 취임 직후 경기 지역 전역의 계곡 불법시설물을 ‘싹’ 정비했습니다. (계곡 불법시설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단 한 번도 제대로 단속한 적이 없습니다.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후폭풍이 거셀 것’이라고 뜯어 말렸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입니다. 2019년 9월 공식 지시 후 불과 석달만에 자진 철거율이 99.7%에 달했다. 두가지 옵션을 제안했습니다. 자진 철거시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휴게실, 화장실 등 공공시설을 지원한다고 약속했습니다. 반대로 버티다 강제철거를 당한다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고 모든 비용을 청구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공권력이 권위를 잃으면 사회적 비용이 불어납니다.”

▷정치 현안 중에 비슷한 사례가 있을까요.

“수술실 CCTV 설치입니다. 의사들의 저항과 로비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이재명표 1호 경제정책이 궁금합니다.

“공정 성장입니다. 시장이 불공정하거나 불합리하면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공정한 경쟁의 질서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과거 농경시대에선 생산요소인 토지를 특정 소수가 소유할 때 자원의 효율적 이용이 제한됐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나올 때 가장 먼저 한 게 ‘균전법’입니다. 경작자에게 토지를 돌려준 거죠.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이 겪고 있는 구조적 저성장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자본의 양도 충분하고 노동의 질도 우수합니다. 왜 저성장일까요. 결국은 (부의) 편중때문입니다. 우리 경제가 다시 성장을 하려면 결국 자원 분배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배와 성장은 더 이상 상치되는 개념이 아니에요.”

▷기본소득도 그런 이유에서 나왔군요.

“사람들은 저보고 ‘분배주의자’라고 합니다. 과거엔 분배와 성장이 상치되는 개념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엔 분배의 강화, 공정성의 강화가 자원을 사장시켰지만 지금은 수요 증진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지난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했던) 1차 재난지원금이 대표적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현금을 직접 나눠주는 게 총수요 진작에 효과가 크지 않다는 반론을 합니다.

“(강한 어조로)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도 젊은 소상공인을 만났는데 재난지원금 명목으로 현금 300만원을 받으면 밀린 월세를 내면 남는 게 없다고 합니다.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나눠주면 소비자는 통닭을 시키고, 치킨집은 닭과 기름을 삽니다. 정책을 결정할 때 제한된 예산으로 복수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이런 정책들을 선호합니다. ”

▷지역화폐형 기본소득을 유독 강조하는 이유인가요.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소득을 재분배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저출산, 실업, 사회 갈등 등 우리사회의 모든 문제의 원천은 저성장입니다. 젊은이들이 ‘왜 공정을 열망하냐’면 (성장의)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경쟁이 격화되자 기회의 총량이 부족해졌습니다. 성장을 회복하는 게 우리 사회의 온갖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입니다. ”

▷2017년 대선 경선 당시 1인당 연 100만원으로 시작해 장기적으로 연 600만원의 기본소득을 나눠주자고 했습니다.

“1인당 100만원은 감당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저는 (지역화폐형 기본소득의) 성공을 확신하지만, 국민적 동의를 위해 공론화를 거쳐 순차적으로 점진적으로 해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포퓰리스트’라는 비판을 받는 것 아닌가요.

“제가 그런 비난을 받는 이유는 다른 정치인들이 하지 않는 행동을 하기때문입니다. 포퓰리스트는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해서는 안될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단호한 표정으로) 제가 한 일 중 (정치인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은 없었습니다.”

▷기업들은 혹여나 규제 강도가 세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크게 웃으면서)의사결정을 하는 기업 고위층에선 ‘친기업 정치인’으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성남시장 시절 두산건설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두산건설은 분당 정자동에 병원용지로 값싸게 분양받은 땅이 있었습니다. 이전 성남시장들은 토지의 용도를 변경해달라는 기업 측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특혜가 부담됐겠죠. 그래서 20여년간 땅이 방치됐습니다. 저는 용도 변경을 내걸고 조건을 걸었다. 부지의 10%를 성남시에 기부채납하고 해당 부지에 두산그룹 계열사 6곳 이상을 이전하도록 했습니다. 결국 두산 계열사들은 모두 이전했고 지역 경제는 활성화됐습니다. 딱 한 가지 나쁜 점은 제가 (기업들에게)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은 사실입니다.”

▷부동산이 경제의 최대 현안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패의 원인을 뭐라고 보시나요.

”관료들의 저항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방안은 정해져 있어요.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 수 없다는 인식을 시장 참여자들에게 심어주면 됩니다. 문 대통령은 분명히 이런 기조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관료들이 이에 맞는 세부 장치를 마련하면 됩니다. 경기도만 하더라도 장기임대주택 공급을 위해 제도를 바꿔달라는 요청하는 데 국토교통부가 들어주질 않아요. 대출 제도 개편은 기획재정부가 반대합니다. 대통령의 지시가 관료들에 의해서 묵살당하고 있습니다. ”

▷실거주 1주택자에 대해 세금 부담을 낮춰주자는 주장이 눈에 띕니다.

“실거주 1주택과 1가구 1주택은 차이가 커요.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이 해당 지역의 집을 팔고 서울 강남 지역의 주택을 사들이니 수도권 집중이 심해지는 겁니다. 말이 나온 김에 노동소득에 대한 과세보다 자산 소득에 대한 세율이 너무 낮아요. 최고 40%를 웃도는 근로소득세에 비해 양도세, 보유세 실효세율은 터무없이 낮습니다. 이건 정의롭지 않아요. “

▷문재인 정부에서 계승할만한 정책과 개선해야 할 정책을 하나씩 예로 들 수 있을까요.

“공이 있으면 과도 있겠죠. 다만 저도 문재인 정부의 일원입니다. 아직 임기가 1년 가량 남아있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참여한 정부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건 맞지 않다고 봅니다.”

▷대선 출마 선언은 언제 하실 생각인가요.

“고민 중입니다. 설마 대선 출마를 결심하더라도 지사직은 가능한 마지막까지 수행할 생각입니다.”

주식 고수라는데…
"외환위기 때 선물·옵션으로 전재산 날린 경험…실물경제 이해에 도움"

“선물·옵션까지 손을 대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전세금만 빼고 전 재산을 날린적도 있습니다. 주식투자 경험이 금융과 실물경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정치권내 주식 고수로 통한다. 혹여 내부정보나 이해상충 문제 등으로 주식 투자를 꺼리는 여느 정치인들과 다르다. 이 지사는 “수십년 간 부업 수준으로 투자를 하면서 경제 흐름에 대해 적지 않은 소양을 얻었다”며 “행정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 지사의 주식 투자 스타일은 우량주 위주의 장기투자다. 그는 “시장을 존중한다, 시장에 모든 정보가 녹아있다”고도 했다. 관보에 따르면 2018년 3월 말 기준 이 지사의 보유 주식은 SK이노베이션 2200주, 두산중공업 4500주, KB금융 2300주, LG디스플레이 8000주, 성우하이텍 1만6000주 등 총 13억1000만원어치. LG디스플레이, 두산중공업, 성우하이텍은 성남시장에 당선되면서 재산을 공개하기 시작한 2010년부터 8년간 보유했다.

그런 이 지사도 ‘주린이’(주식+어린이) 시절엔 작전주에 손을 댄 적이 있다. 단기간에 두 배가량 먹었는데 그 후로 잡주에 단타를 일삼다 큰 손해를 봤다. 이 지사는 “외환위기 이후 우량주 위주로 장기 보유하면서 제법 수익을 냈다”고 귀띔했다. 경기지사에 당선된 뒤에는 광역단체장 주식보유 금지 규정에 따라 보유주식을 전량 처분했다.

이 지사는 암호화폐 시장을 제도화하고 수익에 대해서는 과세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그는 “암호화폐는 투기성이 매우 강하면서 사기, 범죄, 자금 세탁 등에 악용될 수 있어 제도권 내로 포섭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시행되는 매매차익에 과세에 대해선 “주식 양도차익에 과세하기 시작하는 2023년과 시기를 맞출 필요가 있다”며 “코인(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하고 있는데 1년 때문에 젊은이에게 상실감이나 억울함을 줄 필요가 있나 싶다”고 말했다.

좌동욱/전범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