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재의 산업지능] 디지털트윈과 메타버스
공상과학 소설의 거장 필립 K 딕의 소설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공상과학물의 새로운 장을 연 걸작이다.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인조인간이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어느 미래가 영화 배경이다.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어른의 형상으로 제작된 인조인간에게 사람과 같은 성장 과정이란 있을 수 없다. 이런 인조인간에게 존재하지도 않은 가상의 어린시절 기억을 주입해 인조인간이 마치 생명으로 태어난 인간이지 않을까란 정체성 혼란을 겪게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기억 조작을 통해 기계가 인간의 기능만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정체성마저 지니게 되는 것이다.

기계 장비나 공장 설비와 유사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만들고, 통신 기술을 통해 현실에서 장비와 설비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에서도 동일하게 동작하게 하는 기술을 ‘디지털 트윈’이라고 한다. 가상세계와 현실세계가 마치 쌍둥이(트윈)처럼 행동하고 동기화된다는 의미에서 디지털 트윈이라고 불린다. 대표적인 기술이 차량 내비게이션이다. 실제 도로를 기반으로 제작된 디지털 지도에서 위성항법장치(GPS) 기술과 통신 기술을 통해 운전자의 실제 위치가 가상환경에 표시되고 이를 통해 아직 도달하지 않은 목표 지점까지의 이동 경로 정보를 운전자가 파악할 수 있다. 생활 속 디지털 트윈의 또 다른 예로 스크린 골프를 꼽을 수 있다. 골프채를 휘두르고 공을 맞히는 행위는 실제 현실에서 이뤄지지만 공이 날아간 상황은 가상세계를 통해 보여진다. 차량 내비게이션이나 스크린 골프 모두 디지털 기술을 통해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시·공간의 확장을 구현한 사례다.

이 같은 디지털 트윈 기술은 최근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해 사람의 경험을 디지털화하고 더욱 지능화된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KAIST 연구진은 스마트공장의 기계 장비를 인공지능과 결합한 디지털 트윈을 개발했다. 이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는 인공지능에 가상의 기억을 주입해서 마치 이 기계가 수십 년을 작업한 것과 같은 지능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가상의 체험을 통해 수십 년의 경험을 단 몇 시간 만에 축적하고 이 노하우를 실제 장비에 주입해 마치 장비가 수십 년 일한 장인에 의해 작동되는 것처럼 구현한 기술이다. 디지털 장인을 탄생시킨 것이다. 알파고가 수천만 번의 대국을 디지털 환경에서 학습해 마치 수백 년간 바둑 기술을 수련한 마스터를 창조한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요즘 기술업계의 ‘핫’한 키워드는 ‘메타버스’다. 초월이나 추상화를 의미하는 ‘메타’란 단어와 우주 혹은 세상을 의미하는 ‘유니버스’를 결합한 단어로 현실과 가상세계가 혼합된 세계란 뜻이다. 새롭게 주목받는 개념이라 아직 구체적인 정의가 학계나 산업계에서도 합의되지는 않았지만, 디지털 트윈 기술이 특정 장비나 설비를 가상세계와 연동하고 동기화한 것이라면, 메타버스는 장비나 설비뿐만 아니라 작업자를 비롯한 조업 환경 전체를 디지털화한 확장된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KAIST에서도 국내 기업들과 협업해 메타버스를 활용한 디지털 제조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해외 법인 공장과 유사한 가상환경을 구축해 해외 공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국내 본사의 가상환경에서도 그 문제를 인지할 수 있게 개발 중이다. 가상환경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수많은 가상 시나리오를 생성해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다. 가상환경에서 제안된 해결책이 해외 공장에 그대로 실행되도록 해 실제 공장의 문제를 개선하는 방식이다. 가상과 현실이 혼합된 스마트공장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된 1990년대 대한민국의 산업은 한 단계 성장했다. 디지털 혁신을 통해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가전 및 반도체 산업에서 글로벌 1위를 달성할 수 있었다. 이제는 새로운 산업이 열리고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된 새로운 산업 지형이 형성되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경쟁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