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연봉 날렸다"…'돈 복사기'서 '금융위기 진원지' 되나 [김익환의 외환·금융 워치]
"5000만원 손실 너무 힘듭니다."

직장인 익명 게시판 앱인 ‘블라인드’에는 암호화폐(가상화폐) 손실 인증 게시물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 4월에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역대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면서 억대 수익 인증글이 쏟아진 것과는 상반된 흐름이다. 2030세대 '돈 복사기'에서 '연봉 삭제기'로 전락했다는 하소연이 잦아졌다. 경제 전문가들은 암호화폐 시장에 1700조원 규모의 뭉칫돈이 몰리는 등 규모가 커지면서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25배 선물거래에…2030연봉 갉아먹다

31일 글로벌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인 코인마켓캡(CoinMarketCap)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전세계 암호화폐의 시가총액은 1735조516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달 12일(2803조8964억원)에 비해 38.1% 쪼그라든 금액이다. 한달 새 주요 암호화폐 가격이 반토막이 나면서 2030세대가 직격탄을 맞았다. 국내 4대 암호화폐 거래소(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투자자를 보면 올해 1분기 신규 가입자(249만5289명)의 중 2030은 63.5%에 달했다.

한달 새 연봉만큼 투자액을 날렸다는 2030의 호소도 이어지고 있다. '연봉 삭제기'가 됐다는 하소연도 많다. 암호화폐가 폭락하면서 손실을 메우기 위해 2030이 선물 거래에 손을 대면서 손실이 더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해외 거래소인 '바이낸스'나 '바이비트'에서는 100~125배의 레버리지 거래도 허용된다. 예컨대 증거금 100만원으로 암호화폐 125배 레버리지 거래에 베팅하면, 1%만 상승해도 125만원(125%)의 이익을 거둔다. 하지만 0.8%만 떨어져도 증거금 전액을 날리게 된다. 일간지 기자 출신인 한 유튜버도 이 같은 레버리지 투자에 투자했다가 증거금 39억원을 날렸다.

앞으로 암호화폐 가격 출렁임은 더 커질 전망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바꿔 시중 유동성을 흡수할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시장이 지난해 주목받은 것도 중앙은행이 시중에 유동성을 풀자 달러를 비롯한 화폐의 가치가 떨어진 것과 맞물린다.

불어난 유동성이 암호화폐 시장으로 흘러든 것도 비트코인 등의 가격을 밀어 올렸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한 데다 미국 중앙은행(Fed)도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을 언급하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의 '시즌 2'가 막을 내릴 조짐이다. 암호화폐는 2017년 고점을 기록하다가 2018년 갑작스레 폭락하고서 2년 넘게 부진했다. 투자자들은 암호화폐의 가파른 등락이 펼쳐진 2017~2018년을 '시즌 1'이라 불렀고, 지난해와 올해를 시즌 2로 명명했다.

시즌2 끝나간다

중국이 암호화폐 규제를 강화하는 것도 시즌 2의 마감을 앞당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1일 류허(刘鹤) 중국 부총리는 제51차 금융안정발전위원회에서 "비트코인 채굴 및 거래행위를 강력히 단속(打击比特币挖矿和交易行为)하고 개인의 위험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전체 비트코인 채굴의 65.1%를 차지하는 중국의 규제 강화는 암호화폐 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미 재무부도 암호자산이 탈세 등 불법행위에 사용되는 점을 고려해 지난 21일에 1만 달러를 초과하는 암호자산 거래는 국세청(IRS)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는 감독 조치를 결정했다.

암호화폐가 금융위기 진원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투자은행(IB)인 매쿼리는 금융위기의 담음 진앙은 암호자산 시장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놨다. 암호화폐의 변동성이 높은 데다 레버리지 등 파생상품 시장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금과 기업어음(CP)을 담보로 발행되는 스테이블코인(담보자산을 갖춘 암호화폐) 등도 시장을 위협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미 달러화와 1대 1로 교환되는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는 현금과 단기예치금 및 CP 등을 담보로 잡고 있다.

암호화폐를 사들이기 위해 차입금을 늘리는 2030도 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2030의 지난해 말 가계대출은 440조원으로 2019년 말보다 17.3%(65조2000억원) 늘었다. 이들 대출금 일부는 암호화폐 매입자금으로 흘러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암호화폐로 손실이 커지면 대출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금융시스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출렁이는 암호화폐 시장이 스테이블코인과 차입금 등을 경로로 금융 리스크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