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릴루미노' 캡처
사진=영화 '릴루미노' 캡처
삼성전자가 2016년부터 개발하던 가상현실(VR) 기기용 저시력자 보조 기술이 정부의 의료기기 품목 허가라는 결실을 맺었다. 제품 상용화가 되면 시각장애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31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사내벤처 C랩 인사이드를 통해 개발한 '릴루미노'는 지난 2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안과학 진료용 소프트웨어(SW)'로 품목허가(제허 21-426호)를 받았다.

안과학 진료형 SW는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 의료기기가 늘어남에 따라 식약처가 작년 8월 신설한 품목이다. 이 품목으로 당국 허가를 받은 건 릴루미노가 처음이다.

VR 기술로 흐릿하게 보였던 사물 선명하게 보는 릴루미노

릴루미노는 시야가 뿌옇고 빛 번짐이 있거나 굴절장애 및 고도 근시 등을 겪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개발됐다. 빛 지각을 하지 못하는 전맹을 제외한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과 삼성 ‘기어 VR’ 등 VR 기기만 있으면 사물을 보다 뚜렷하게 볼 수 있도록 돕는 솔루션이다.

릴루미노를 사용하기 위해선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고, VR 기기에 스마트폰을 장착하면 된다. VR 기기 카메라에서 전송되는 외부 영상이 스마트폰으로 전송되면 이를 이미지 프로세싱 처리를 통해 저시각 장애인이 식별할 수 있는 영상으로 만들어 준다. 해당 영상은 안경 렌즈(디스플레이)에 나타나, 흐릿하게 보였던 사물을 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릴루미노는 개발 과정에서 저시력자가 사물의 인식을 높일 수 있는 영상으로 변형하는 것에 방점을 맞춰 개발됐다. 그만큼 여러 상황에 접목할 수 있는 기능들도 세분돼 있다. 이미지 확대·축소, 이미지 윤곽선 강조, 색상 대비·밝기 조정, 색상 반전, 화면 색상 필터 등 다양한 기능을 지원한다.
시각장애인 시각보조 앱 '릴루미노’ 독서모드 적용시 효과를 보여주는 이미지/사진제공=삼성전자
시각장애인 시각보조 앱 '릴루미노’ 독서모드 적용시 효과를 보여주는 이미지/사진제공=삼성전자

'빛 다시 돌려준다'는 릴루미노…릴루미노 글래스도 출시될까

릴루미노 개발은 시각장애인들이 집에서 TV 시청과 독서를 할 때 보다 잘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는 삼성전자 C랩 아이디어에서 2016년부터 출발했다. 솔루션 명칭은 ‘빛을 다시 돌려준다’라는 뜻의 라틴어 릴루미노에서 붙여졌다. 전세계 2억4000만 명에 달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삶을 바꿔줄 '착한 기술'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개발됐다.

특히 릴루미노는 평소 상생과 동행 철학을 강조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큰 관심을 기울였던 제품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7월 수원사업장에서 C랩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릴루미노를 직접 체험하고 개선사항을 제안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 품목 허가를 받은 것은 모바일 SW로 제품이 상용화되려면 VR 기기도 필요하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안경 형태의 VR 기기 '릴루미노 글래스'에 대한 국립전파연구원 적합성평가 적합 등록 절차를 마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7월 삼성전자 경기 수원사업장에 위치한 'C랩 갤러리'를 찾아 '릴루미노' 기술을 체험하고 있다/사진제공=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7월 삼성전자 경기 수원사업장에 위치한 'C랩 갤러리'를 찾아 '릴루미노' 기술을 체험하고 있다/사진제공=삼성전자
이에 따라 조만간 릴루미노 모바일 SW가 연동되는 VR 기기가 '완성품' 형태로 출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삼성전자 관계자는 "릴루미노를 어떤 방식으로 상용화할 것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릴루미노 앱은 2017년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됐지만, 릴루미노 글래스는 2018년 1월 국제가전박람회(CES)에서 시제품으로 공개됐을 뿐 아직까지 시장에 정식으로 출시되지 않았다.
업계 일각에선 릴루미노 허가를 계기로 삼성전자의 VR, 증강현실(AR) 등 확장현실(XR) 사업에 속도가 붙지 않겠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XR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메타버스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주목도가 커지고 있다. 현실과 같은 3차원 가상세계를 뜻하는 메타버스를 제대로 구현하하려면 XR 기술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18년 VR 기기 '오딧세이 플러스'를 마지막으로 XR 신제품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VR·AR 관련 특허·상표권을 잇따라 출원해 "XR 시장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배성수/서민준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