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미얀마에서 현금 부족 사태가 벌어져 매일 새벽 은행 앞에 돈을 뽑으려는 긴 줄이 늘어서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31일 보도했다.

사람들이 앞다퉈 은행으로 달려가 현금을 찾으려는 이유는 불안한 정국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수도 양곤에서 작가 겸 의료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니키(19)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돈을 찾으려는 이유는 군부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미얀마 최대 은행인 KBZ의 가족 계좌에서 하루 최대 인출 한도인 20만짯(약 13만원)씩 빼내고 있다. 쿠데타 이전에는 인출 한도가 100만짯(약 67만원)이었다.

지폐를 마음껏 제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미얀마에 지폐 원료와 조폐기 부품을 공급해온 독일 조폐 시스템 제공업체 기섹앤드데브리엔트가 지난 3월 쿠데타에 반대한다는 뜻에서 사업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은행에 예치된 돈보다 시장에 유통되는 지폐의 가치가 더 높아지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예컨대 재래시장에서 9000짯짜리 물건을 구매한다고 하자. 지폐로 계산하면 가격표대로 9000짯을 내면 되지만, 계좌이체로 구매하면 1만짯을 받는다고 한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 계좌에 들어있는 돈은 되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많다"며 "은행에 묶인 돈은 할인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미얀마 화폐를 금·달러 등 안전자산으로 바꾸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달러와 금값이 급등하기도 했다.

미얀마 역사가이자 작가인 탄트 민우는 "쿠데타 이후 사람들은 은행이 아닌 집에 현금을 보관하려고 한다"며 "유동성 경색과 중앙은행에 대한 불신으로 미얀마 금융의 붕괴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