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고독의 시간을 버티고 나온 사람의 행복이었다.
그 행복감은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바흐를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는 숨을 데 하나 없이 오직 음악만을 마주해야 했다.
그러나 진실한 고독을 음악은 저버리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클라라 주미 강의 연주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하룻저녁에 올리는 굉장한 스케일의 공연이었다.
이 여섯 개의 작품은 한 대의 바이올린으로 때로는 푸가와 같은 다성음악을, 때로는 반주와 선율을 모두 맡는 노래를, 때로는 갖가지 춤곡을 불러내는 바이올린 문헌의 '신비' 그 자체다.
당연히 연주자에게는 고도의 기교가 요구될 뿐 아니라, 밀도 높은 연주를 오랜 시간 유지하는 스태미나, 본래 선율 악기인 바이올린에서 화성 악기를 불러내는 상상력도 요구된다.
바이올린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어서 앞으로의 분화와 만개를 기다리는, 일종의 근원적인 씨앗이 이 작품이다.
그러므로 클라라 주미 강의 이번 공연은 자신을 하나의 시험 무대에 세우는 일과 같았다.
연주 시간이 길었던 만큼 공연은 두 번의 인터미션을 두고 3부로 진행됐다.
부마다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한 곡씩 연주했다.
그로 인해 더 엄격하고 대위법적 악장이 두드러지는 교회소나타와 더 자유로운 춤곡들의 모음곡인 파르티타의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대비를 이뤘다.
1부의 두 곡부터 클라라 주미 강은 유연하면서도 정확한 연주로 관객을 몰입시켰다.
그의 연주는 공격적이기보다는 단단하고 격조가 있었다.
자주 등장하는 더블/트리플 스톱(현 여러 개를 동시에 켜는 주법)과 선율선이 매끄럽게 이어져 화성과 선율이 시차를 두고 하나의 음악으로 섞이는 효과가 탁월하게 전달됐다.
첫 곡의 마지막 프레스토에서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져 동일한 리듬의 반복이 초점을 잃고 밋밋하게 흐른 대목도 있었으나 선행 악장 시칠리아나와의 대비를 꾀하려는 해석의 와중에 잠시 벌어진 일이었다고 여겨진다.
파르티타 1번의 경우에서도 춤곡 악장과 뒤따르는 더블 사이의 변화를 선명하게 드러내려는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어두운 서주와 푸가 대 격정이 분출되는 리드미컬한 '부레'의 대비 또한 듣는 즐거움을 줬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놀라웠던 순간은 2부였다.
클라라 주미 강은 완전히 몰입해 있었고, 그 호흡은 잠시 불안정한 순간을 내비쳤던 1부와 달리 전혀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몰입은 완전히 음악 속에 빠져들어 더는 관객이나 무대 상황을 의식하지 않게 된 일종의 자유로운 상태처럼 느껴졌다.
그의 동형 리듬 반복 악구들은 마치 바이올린의 활을 성실하게 움직여 소리를 조각해내는 과정인 양 느껴졌고, 한층 여유로워진 호흡으로 인해 성부가 두 가닥 이상으로 엮이는 푸가에서조차 선율적인 아름다움이 전달됐다.
여기에 클라라 주미 강은 무엇인가를 과하게 표현하려는 의도를 내려놓은 듯이 담담한 기품까지 더했다.
특히 소나타 2번의 안단테 악장은 아름다운 선율로 인해 자칫 낭만주의적으로 감정이 과잉되는 악장이지만, 그는 격조 있게 셈과 여림, 즉흥적인 변화 등을 잘 제어해 내면적 순간을 잘 포착했다.
많은 관객이 기대했을 파르티타 2번도 세부가 살아 있는 호연이었다.
전체적인 완성도가 훌륭했지만, 특히 4곡 지그에서 음형 변화와 화성적 명암 변화가 아주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뒤따를 5곡 샤콘에 대한 인상을 전달해 줄 수 있었던 점이 가장 좋았다.
이어지는 샤콘에서도 클라라 주미 강은 여유 있게, 한 음 한 음의 밀도를 놓치지 않으며 전진했다.
한동안 아르페지오가 반복되는 부분에서는 절제미를 발휘하며 기다렸다.
여리게 진행되는 격렬한 움직임에 관객은 집중하며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관객들의 귀를 열어놓은 클라라 주미 강은 오히려 그 뒤에 이어지는 '탄원'과 '정화'의 과정에 더 무게를 뒀다.
앞 곡 지그에서 충분한 인상을 남긴 터라, 샤콘의 장조 부분, 코랄 풍의 복된 환희가 담긴 이 부분은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감동을 남겼다.
이 공연은 2부로 끝이 났더라도 부족함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3부 또한 값진 순간이었다.
C장조에도 밝음과 어두움이 교차하는 소나타 3번도 그러했지만, 무엇보다 마지막을 장식한 파르티타 3번은 이탈리아적인 밝음으로 고독의 순간에도 기쁨이 깃들 수 있음을 알려줬다.
클라라 주미 강의 이번 공연은 값진 선물이었다.
관객에게는 흔치 않은 음악의 깊이와 즐거움을 선사했고, 연주자 자신도 하나의 새로운 지평에 다가가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누릴 수 있는 음악의 기쁨은 결코 얕지 않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