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차량용 반도체는 위상이 높지 않았다. 기능이 단순하고 수익성이 낮은 탓에 필수 자동차 부품 정도로만 인식됐다. 하지만 최근 기류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 유례없는 공급 부족사태로 반도체가 없으면 자동차를 못 만드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조는 전기차 보급이 확대되면서 가속화될 전망이다. 차량용 반도체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1년간 두배 이상 급등

미국 뉴욕증시에서 NXP반도체는 최근 1년간 두배 이상 올랐다. 작년초 99달러였던 주가가 28일 종가 기준 211.42달러까지 올라섰다. 일본 업체이자 도쿄증시에 상장된 르네사스도 최근 1년 2배 가까이 올랐다. 같은기간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주가는 61% 상승했다.

차량용 반도체주가 오르는 이유는 공급부족이다. 자동차 공장들이 생산을 쉴 정도로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차량용 반도체 업체들의 가격 협상력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증권업계는 반도체 부족 현상이 연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가 보급되면서 반도체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자율주행차 반도체 탑재량은 2000개로 내연차의 7배에 달한다. 차량용 반도체가 구조적 성장기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탑5 점유율 85% 육박

현재 차량용 반도체는 탑5로 불리는 미국 일본 독일 업체들이 독식하고 있다. 마이크로 컨트롤 유닛(MCU) 기준 글로벌 점유율은 NXP반도체가 27.2%로 1위다. 2위는 27%를 점유한 르네사스, 3위는 16.2%를 차지하는 독일 인피니언이다. 차량 전장 시스템을 제어하는 MCU는 공급 부족이 가장 심각한 부품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이들 업체의 지배력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는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차량용 반도체는 안정성을 인증받기까지 1~2년이 소요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수요는 급증하고 있어 ‘구조적 성장’이 예상된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NXP반도체는 올해 영업이익은 3조7000억원으로 작년 대비 7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피니언, 르네사스, 텍사스인스트루먼트도 영업이익이 50~230%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적이 주가보다 빠르게 늘면서 투자매력도 커졌다. 이들 업체의 2021년 실적 대비 주가수익비율(PER)은 20배 초반 수준이다. 2022년 실적과 평균 18.8배의 PER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중소형주도 유망

한국 업체들이 전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8% 수준으로 미미하다. 하지만 연 성장률 25%를 기록하고 있어 투자가치가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국산화율이 5%도 안되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이 비집고 들어갈 시장이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정부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차량용 반도체 단기수급 대응 및 산업강화 전략을 발표했다.

유진투자증권은 텔레칩스, 해성디에스, 칩스앤미디어, 한컴MDS를 유망주로 소개했다. 코스닥 상장사인 텔레칩스는 독자적으로 차량용 MCU를 개발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통해 지난 4월부터 시범 생산하고 있다. MCU 국산화 기조를 타고 국내 주요 고객에 공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안정성 테스트를 완료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망이다.

해성디에스는 차량용 반도체 관련 부품인 리드프레임을 생산한다.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올해 영업이익이 526억원으로 작년 대비 21%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도 영업이익이 630억원을 기록하며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칩스앤미디어는 반도체칩에 삽입되는 반도체 설계자산 전문업체로 NXP반도체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박의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