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전쟁과 6월의 수식어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현충일이 있고, 6·25전쟁일이 있고, 6·29 제2연평해전일이 있다. 새삼 달력을 눈여겨본다. 또 의병의 날(1일)이 있고, 환경의 날(5일)이 있고, 구강보건의 날(9일)이 있고, 6·10민주항쟁기념일이 있다. 노인학대예방의 날(15일)이 있고, 전자정부의 날(24일)이 있고, 마약퇴치의 날(26일)이 있고, 철도의 날(28일)이 있다. 구슬픈 트로트 속에도 흘러나오는 (오뉴월) 보릿고개도 있다. 지키고 보답하는 뜻으로 기억하고, 새롭게 새겨야 할 하나하나 6월의 수식어라고 말해본다.

나에겐 혼자 간직하고 있는 또 하나의 6월의 수식어가 있다. 전쟁 때 깨닫고 익혀 실천한 거짓말, 그 ‘거짓말의 슬기’다. 전쟁이 물밀 듯이 밀려온 시절이 있었다. 나는 국민학교(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남의 집 사랑방이 학교였고 때로는 정자나무 밑으로, 때로는 냇가로 옮겨다니며 공부를 했다. 집에 오면 논밭에서 일을 거들고 산에 가서 나무도 해오곤 했다. 한가할 때면 마을 정자나무 밑으로 가서 할아버지한테 천자문을 배우곤 했다.

마을 앞에는 대둔산에서 발원한 갑천 상류가 흘러나가고 이 내(川)를 가로지르는 긴 철교가 놓여 있다. 이 철교 옆에 큰 언덕이 있었는데 이 언덕 지하에 인민군이 주둔해 있었다. 너덧 명씩 인근 마을을 순찰하면서 젊은 어른들을 잡아가고 도망가면 총을 쏘고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아군 폭탄도 투하됐는데 엉뚱한 우리 논밭만 크게 피해를 봤다. 인민군들이 순찰할 때면 마을 어른들의 행방을 우리 꼬맹이들한테 물었다.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할아버지한테 이미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가 숨어있는 다락방이나 아저씨가 피신한 뒷산 동쪽을 그대로 알려주면 우리는 고아가 된다는 것을 일찍 깨달은 것이다. 모른다고 하면 발길로 채이니까 동쪽이면 서쪽인 것 같다, 서쪽이면 남쪽인 것 같다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정뱅이마을 아군작전사령관이셨고 우리에게 생명줄과도 같은 위대한 거짓말을 교육하셨던 것이다.

생각해보자. 거짓말은 속이고 꾸미고 장난치고…의 차원을 넘어 악덕과 죄악으로 이어져 믿음의 관계를 허무는 주범이다. 한 입에 두 혀를 가진 쟁이들이 넘쳐나는 오늘의 사회를 개탄하는 사람도 물론 많을 것이다.

그러나 ‘거짓말은 때에 따라 방편이다’라는 영국 속담을 상기하며 전쟁 때의 6월 수식어로 ‘거짓말의 슬기’를 올려본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쓰는 묘한 수단과 방법으로서의 깨달음은 거짓말을 참말처럼 할 수 있는 기술이 전혀 없던 시절의 영광이라 다시 상기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