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완의 21세기 양자혁명] 과학 소통을 위한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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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지방자치단체와 대학교, 국립연구소 등 3개 기관의 양자기술 업무협약식이 있었다. 행사를 준비하던 분이 누군가로부터 3개 기관이 참여하니 ‘삼자’기술 업무협약식이라고 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한글로 적을 때 ‘양자’로 표시되는 여러 단어 중에서 가장 많은 경우가 ‘둘’이라는 뜻이고, 양자물리학을 가리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나올 만하다.
우리는 온갖 과학기술의 문명을 누리고 있고, 4차 또는 5차 산업혁명까지 논의하고 있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누리는 수준을 넘어서 그 과학기술의 정체가 무엇인지, 뒤따르는 비용이나 가져올 혜택이 어떤 것인지 적극적으로 따져보고 다루기 위해서는 일상 수준의 지식을 넘어서는 소통이 필요하다.
과학 소통을 위해서는 두 가지 언어가 필수적이다. 하나는 수학, 다른 하나는 영어다. 여러 가지 물리량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그 물리량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는 수학이라는 언어를 사용해야만 한다. 편집자로부터 수학 방정식 하나에 독자 수가 반씩 줄어든다는 말을 들었지만, 스티븐 호킹은 아인슈타인의 에너지-질량 공식까지 생략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물리학의 공식은 물리량 사이의 정량적인 관계를 엄밀하게 나타내는 실용성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서 ‘수학으로 표현된 시(詩)’라고도 할 수 있다.
수학식까지 쓰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수학적 표현이 과학 소통에 필요하지만, 우리말로 표현할 때는 주저하게 된다. 필자는 산술급수나 기하급수라는 표현보다 ‘식량생산은 선형적으로 증가하고, 인구는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한다’고 맬서스의 인구론을 표현하는 것이 편하지만, 일반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될지 고민하게 된다. 디지털컴퓨터와 양자컴퓨터의 능력을 비교할 때 이런 표현을 쓰기 때문이다.
한자 문화권에서 중국은 일본보다 앞서 서구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였지만, 과학기술뿐 아니라 서양의 현대문명 용어를 한자어로 번역하고 정착시키는 일은 일본이 주도했다. 일찍이 네덜란드와 교류한 일본은 화란 배우기라는 뜻의 난학(蘭學) 연구를 통해 동양의 고전, 서양 용어의 어원 등을 종합적으로 참조해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상당수의 한자 용어를 만들었다.
그런데 한자를 쓰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대부분의 소통을 한글로만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소리는 같고 뜻은 완전히 다른 동음이의어가 혼동을 부르기도 하고, 어원을 몰라 새로운 개념을 배울 때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수직선(垂直線)과 수평선(水平線)의 수는 서로 다른 글자이고, 수직선(數直線)은 수학에 나온다. 그래서 가능하면 포스(force) 대신 ‘힘’, 워크(work) 대신 ‘일’, 파워(power) 대신 ‘일률’과 같은 순우리말 용어를 찾아내거나 만들어 쓰기도 한다. 길이, 넓이, 부피, 무게 등의 용어들은 아름답고 자부심까지 느끼게 한다. 그러나 순우리말 용어는 쉽게 이해할 수도 있지만, 기술적으로 정확한 의미와 일상적인 의미를 혼동할 수도 있다.
영어가 현대문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어휘 수도 많아진 데는 인위적인 통제를 하지 않고 활발한 언어 소통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위적인 통제보다 활발하고 자유로운 과학 소통으로 우리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김재완 < 고등과학원 교수 >
우리는 온갖 과학기술의 문명을 누리고 있고, 4차 또는 5차 산업혁명까지 논의하고 있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누리는 수준을 넘어서 그 과학기술의 정체가 무엇인지, 뒤따르는 비용이나 가져올 혜택이 어떤 것인지 적극적으로 따져보고 다루기 위해서는 일상 수준의 지식을 넘어서는 소통이 필요하다.
과학 소통을 위해서는 두 가지 언어가 필수적이다. 하나는 수학, 다른 하나는 영어다. 여러 가지 물리량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그 물리량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는 수학이라는 언어를 사용해야만 한다. 편집자로부터 수학 방정식 하나에 독자 수가 반씩 줄어든다는 말을 들었지만, 스티븐 호킹은 아인슈타인의 에너지-질량 공식까지 생략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물리학의 공식은 물리량 사이의 정량적인 관계를 엄밀하게 나타내는 실용성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서 ‘수학으로 표현된 시(詩)’라고도 할 수 있다.
수학식까지 쓰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수학적 표현이 과학 소통에 필요하지만, 우리말로 표현할 때는 주저하게 된다. 필자는 산술급수나 기하급수라는 표현보다 ‘식량생산은 선형적으로 증가하고, 인구는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한다’고 맬서스의 인구론을 표현하는 것이 편하지만, 일반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될지 고민하게 된다. 디지털컴퓨터와 양자컴퓨터의 능력을 비교할 때 이런 표현을 쓰기 때문이다.
수학과 영어가 과학 소통에 필수적
중세를 지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과학 소통에 쓰이는 언어가 라틴어에서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거쳐 영어로 정착됐다. 근현대 과학의 주도권을 잡고자 했던 유럽의 여러 나라가 결국에는 자존심을 접고, 주요 학술지와 학술 행사의 공식언어로 영어를 채택했다. 과학·기술이 전문가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자국어 용어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 과학기술자들은 수학과 영어뿐 아니라, 우리말로도 과학기술 소통을 해야 한다.한자 문화권에서 중국은 일본보다 앞서 서구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였지만, 과학기술뿐 아니라 서양의 현대문명 용어를 한자어로 번역하고 정착시키는 일은 일본이 주도했다. 일찍이 네덜란드와 교류한 일본은 화란 배우기라는 뜻의 난학(蘭學) 연구를 통해 동양의 고전, 서양 용어의 어원 등을 종합적으로 참조해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상당수의 한자 용어를 만들었다.
인위적 통제보다 활발한 소통 문화를
중국도 이들 용어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만들어진 대로 사용하게 됐지만, 일부 용어는 한·중·일 3국이 다르게 쓰기도 한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보다 인구도 많고 여러 가지 역사적인 이유로 다양한 과학기술 서적이 다량 출판되고 독자층도 두터워 과학 용어가 잘 정착되고 있는 듯하다. 필자가 미국 유학하던 시절(1980년대), 중국 유학생들이 갖고 있던 대학이나 대학원 수준의 물리학 전공서적은 대부분 중국어로 번역이 돼 있었다.그런데 한자를 쓰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대부분의 소통을 한글로만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소리는 같고 뜻은 완전히 다른 동음이의어가 혼동을 부르기도 하고, 어원을 몰라 새로운 개념을 배울 때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수직선(垂直線)과 수평선(水平線)의 수는 서로 다른 글자이고, 수직선(數直線)은 수학에 나온다. 그래서 가능하면 포스(force) 대신 ‘힘’, 워크(work) 대신 ‘일’, 파워(power) 대신 ‘일률’과 같은 순우리말 용어를 찾아내거나 만들어 쓰기도 한다. 길이, 넓이, 부피, 무게 등의 용어들은 아름답고 자부심까지 느끼게 한다. 그러나 순우리말 용어는 쉽게 이해할 수도 있지만, 기술적으로 정확한 의미와 일상적인 의미를 혼동할 수도 있다.
영어가 현대문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어휘 수도 많아진 데는 인위적인 통제를 하지 않고 활발한 언어 소통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위적인 통제보다 활발하고 자유로운 과학 소통으로 우리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김재완 < 고등과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