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책 읽기의 가치
세종대왕, 김득신, 안중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 무엇보다 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책을 많이, 깊이 읽은 자부심이 얼마나 컸던지 내로라하는 신하들에게 자랑하고픈 맘을 갖고 있을 정도였다. 김득신은 타고난 둔재였지만,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책 읽기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오십 중반에 과거에도 합격하면서 탄탄한 앎과 글에 이르렀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한 안중근은 암울한 시대에 책 읽기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졌고 의연하게 했다.

지금은 정보 홍수의 시대다. 여러 채널을 통해 무수히 많은 정보가 마구 쏟아진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가치가 있는지는 차치하고,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이 대부분 잠시 스쳐가 버린다. 이것은 새로운 정보의 의미를 생각하고 취사선택해 자기 것으로 붙잡아둘 수 있는 바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주목 경제’의 시대이기도 하다. 어떤 이슈가 생기면 사람들 눈에 띄려는 각양각색의 얘기가 펼쳐진다.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기도 하지만, 도발적이거나 자극적인 내용으로 채우기도 한다. 주목받기 위해 때론 혹하는 이슈를 만들기도 하고, 남의 것을 갖다 옮기면서 증폭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속에서 뭔가 생각을 흔들려는 말과 글에 헷갈리고, 가끔은 길을 잃어버려 엉뚱한 곳에서 자기 중심을 굳건히 잡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최근 직장인 스토브리그를 뜨겁게 달군 정보기술(IT) 개발자 품귀 현상이 있었다. 코더는 많은데 개발자가 적어 기업들은 고액 연봉을 앞다퉈 제시하며 스카우트에 열을 올렸다. 개발자의 역량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시대에 새로운 상황과 정보가 담고 있는 미래 가치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이에 대한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창의력에 있다. 이것은 프로그래밍을 잘하고 여러 가지 안다고 해서 가능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시시때때 변하는 수면 아래의 도도한 흐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현상 저 너머의 핵심을 자기만의 틀로 상상하고 구체화해내는 사고력이다.

이건 어떤 분야에서든 기존의 잣대를 바꾸고 판을 뒤엎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꿈꾸는 모든 이에게 필요하다. 바로 땅 속과 밖을 나누기 힘든 경계선에서 살포시 움튼 새순을 아름다운 꽃으로 활짝 피우게 만드는 햇빛, 비와 바람 같다.

우리는 변화가 일상인 현대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핵심에 다다르는 생각의 바탕과 힘, 가야 할 방향과 길 찾기, 부드러움과 꼿꼿함이 어우러진 자기 중심은 더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들은 어디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다양한 책읽기가 쌓이고 서로 얼기설기 엮이면 자기도 모르게 뿜어져 나온다.

앞으론 짬짬이 시간을 내 서점으로 가보자. 쭉 둘러보다 보면 눈에 쏙 들어오고 목마름을 씻어줄 책이 보일 것이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책읽기의 가치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