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호 회장 도쿄에서 파리 샹젤리제까지…PXG 명품숍 세계에 열겠다

신재호 카네·로저나인 회장이 9일 직원이 만들어 준 인형을 들고 카네의 성공 비결과 향후 목표를 설명하고 있다. 신 회장은 “내년 완공되는 신사옥에 스크린 골프장, 휴식 공간을 마련하는 등 회사 성장을 이끈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서울 양재동에 있는 카네의 사무실 내부는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칠해져 있다. 체스판을 연상케 하는 이곳에서 직원들은 모두 검은색과 흰색으로 된 옷을 입고 일한다. 사무실 한가운데에는 골프계에 ‘블랙&화이트’ 바람을 몰고 온 신재호 카네·로저나인 회장의 자리가 있다. 9일 서울 도곡동 카네 사무실에서 만난 신 회장은 검은 정장에 흰 셔츠 차림이었다. 그는 “돌고 도는 패션의 종착지는 결국 ‘블랙&화이트’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카네는 국내 시장에서 PXG 클럽(골프채)을, 로저나인은 23개국에 PXG어패럴의 골프의류를 판매하는 회사다.

신 회장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블랙&화이트를 고집한다. 4년 전 PXG어패럴을 출범할 때 디자이너들에게 블랙 앤 화이트로만 옷을 만들라고 주문한 사람이 신 회장이다. PXG는 미국에서 출발한 브랜드이지만 PXG어패럴은 국내에서 시작했다. 밥 파슨스 미국 PXG 회장이 “옷은 한국이 더 잘 안다”며 모든 권한을 일임한 결과다.

신 회장의 베팅은 PXG어패럴 출범 3년 만인 지난해 연매출 1000억원(클럽 매출 포함) 돌파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PXG어패럴은 현재 미국으로 역수출하고 있다. 그는 “PXG어패럴이 골프시장의 톤을 바꿨다는 평가를 들을 때 가장 흐뭇하다”며 “PXG어패럴이 명품 브랜드로서 세계 주요 도시에 브랜드 숍을 내는 것을 다음 10년 목표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블랙&화이트’를 고집한 배경은 무엇인가요.

“한국의 패션은 미국도 있지만 사실 일본 영향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 유행한 알록달록한 디자인의 수요가 국내에서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화려해야 옷이 잘 팔렸던 시기였죠. 하지만 언젠간 검은색과 흰색으로 유행이 회귀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결국 트렌드 고점에 있는 건 ‘블랙&화이트’이거든요. 처음엔 디자이너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두 가지 색으로 옷을 만드는 게 생소할뿐더러 정말 어려운 일이었으니까요. ‘그걸 차별화하는 게 능력’이라고 디자이너들을 달랬고 결국 우리 브랜드가 태어나기에 이르렀습니다. 간판부터 옷까지 무채색이다 보니 처음엔 매장을 보고 ‘죽은 매장’이라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결국 고객들이 ‘흑백’의 매력을 알아줬습니다.”

▷PXG어패럴의 또 다른 성공 비결이 있을 것 같습니다.

“PXG어패럴을 시작하면서 점주들과 약속한 건 ‘상생’입니다. 이른바 ‘밀어내기’를 절대 하지 않고 사업 파트너로서 신의를 지키겠다는 것이었죠. 과도한 재고를 떠넘기지 않고 매장 사장님들께도 항상 최소한의 물량만 가져가라고 합니다. 덕분에 회전율이 빨라지고 점주들의 ROI(투자자본수익률)는 높아집니다. 또 점주들에게 다음 시즌 신제품 출시 일자를 항상 두세 달 전에 알려줍니다. 점주들은 미리 신제품 출시일을 고객들에게 귀띔해주고요. 남은 재고는 다시 본사가 거둬들여 신제품으로 바꿔주면서 재고 관리를 돕습니다.”

▷PXG라는 신생 브랜드의 성공을 어느 부분에서 확신했나요.

“국내 시장엔 젊은 이미지의 ‘프리미엄 브랜드’에 대한 니즈가 있다고 봤습니다. 그게 PXG였습니다. 예전엔 시니어 클럽으로 분류되는 몇몇 일본 브랜드가 인기를 끌었다면 ‘100세 시대’에 육체적으로 건강한 50~60대는 그런 브랜드를 선호하지 않죠. 역동적인 이미지를 갖추고 기술력이 확실한 제품이라면, 2030세대뿐만 아니라 가격이 비싸도 구매력이 있는 50~60대에게까지 어필할 거라고 확신했어요. 생산 원가가 다른 브랜드들에 비해 4~5배 높은 PXG의 품질을 믿었고요. PXG는 지금도 모든 클럽이 피팅을 통해 판매됩니다. 클럽에 끼는 볼트 하나하나가 사용자에게 맞게 무게를 배분해 만들어집니다. 판매 수량은 훨씬 적어도 고객이 지갑을 여는 배경이죠. 지금은 자리 잡은 피팅 문화도 PXG가 선도했고요. 그런 부분에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대중화되기 전부터 골프라는 한우물만 파셨네요.

“1980년대 미국에서 유학하다가 이모부가 운영하던 골프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40년 가까이 골프산업에 몸담았네요. 처음에는 실패도 많이 했습니다. 10여 년 전에 어패럴 쪽을 시도했다가 접었던 경험도 있는데, 그걸 통해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첫 번째도 기술력, 두 번째도 기술력’이었습니다. 세계 골프측정기 시장 점유율 1위인 부쉬넬처럼 기술력이 좋은 회사의 제품에는 언젠간 고객이 몰렸습니다. 반면 그렇지 못한 브랜드는 금방 사라졌죠. 2000년대 50~60개에 달했던 국내시장의 골프용품 브랜드들이 지금은 10여 개로 줄었어요. 새로운 시도를 할 때는 감각과 판단력이 뛰어난 제 아내와 꼭 상의합니다. 제 고집을 끝까지 지지하면서 지금의 카네·로저나인을 함께 키운 아내 장지연 부회장에게도 고마운 마음입니다.”

▷향후 10년 계획이 궁금합니다.

“현재 미국 본사와 세계 유통망을 단일화하자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PXG와 PXG어패럴이 더 빠르게 세계 무대로 뻗어나가기 위한 필수 과정이지요. 이를 통해 10년 안에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나 도쿄 등 주요 도시에 PXG어패럴의 브랜드 숍을 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