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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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언론 매체와 대중들의 기억에서 멀어진 듯하던 조국이라는 이름이 다시 회자되는 요즘이다. 그가 쓴 <<조국의 시간>>이라는 회고록 때문이다. 굳이 그에게 인세 수입을 안겨주고 싶은 생각이 없어 책을 사 보지는 않았다. 벌써 15만부 이상 팔려나가 상반기 베스트셀러 10위를 오르내릴 정도라고 한다.

읽어보지 않은 입장에서 책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는 그렇지만 책 전반을 흐르는 기조는 나르시즘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조로남불' '조스트라다무스' 등 숱한 신조어를 만들어 내던 조국은 이 책에서 반성보다는 억울함을 호소했다는 독후감이 많은 듯하다. 자신과 가족에 대한 의혹을 검찰, 언론, 야당 카르텔의 창작품이라고 하고 자신은 검찰 개혁의 깃발을 든 괘씸죄 때문에 우선순위 맨 앞자리로 끌려나온 희생양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 그의 언행을 돌아보면 책을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대충 어떤 내용을 담았으리라고 추측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은 것 같다. 사람 생각은 좀처럼 변하지 않으니까. 다만 그가 ‘과거 진보적 학자로서 했던 말과 실제 삶이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았다’고 인정했다는 대목은 그나마 눈에 띈다. 하지만 이 역시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어서 '아주 조금'반성하는 듯한 시늉을 보였을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조국이나 그의 책 이야기를 하려던 참은 아니다. 그보다는 '조국 신드롬'으로까지 불리는 이상한 현상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조국의 온갖 의혹이 봇물터지듯 쏟아지던 2019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는 소위 '조국 수호 집회'라는 게 열렸다. 전에 볼 수 없었던, 참으로 설명하기 힘든 집회였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조국에게 문 대통령은 지난해 초 "마음의 빚을 졌다"고 했다. 온갖 의혹을 받으며 물러나는 참모에게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이런 이야기는 극히 사적인 모임에서 하거나 아니면 대통령을 그만둔 뒤 회고하는 자리에서나 하는 게 상식적이다.

조국 일가를 조사하고 기소한 것은 검찰이다. 검찰은 국가권력기관이고 그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다. 그런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은 조국에게 미안한 감정을 토로한 것은 모 시사평론가의 지적처럼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국가행정력인 검찰권을 부정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통령이 이러니 차기 여권의 대선주자라고 하는 사람들까지 조국을 향한 안타까움을 경쟁적으로 쏟아낸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조국의 책이 나오자 "가족이 수감되시고 스스로 유배같은 시간을 보내시는데도 정치적 격량은 그의 이름을 수없이 소환한다. 참으로 가슴아프고 미안하다"고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공인이라는 이름으로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발가벗겨지고 상처 입은 그 가족의 피로 쓴 책이라는 글귀에 자식을 둔 아버지로, 아내를 둔 남편으로 가슴이 아리다”고 했다. 듣는 귀를 의심할 정도다. 조국 일가의 파렴치한 행각에 치를 떨었던 국민들은 참으로 어이가 없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정 어디 한군데 성한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들 떠안아야 한다. 다락같이 올린 최저임금으로 기득권 노조들은 임금 상승 혜택을 누렸지만 수없이 많은 노동약자들이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소득이 줄었다. 근로시간 단축 역시 안정적 직장이 있는 근로자들에게는 휴식과 재충전을 선물했지만 초과근무수당으로 부족한 수입을 벌충하던 노동약자들에게는 바로 돈벌이 감소로 이어졌다.

미신으로 출발한 탈원전 정책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던 원전산업은 사실상 해체수순이고 규제 위주의 부동산 정책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집값 상승을 불러와 유주택자에게는 세금 폭탄을 안겼고, 무주택자에게는 내집 마련 꿈을 앗아갔다. 반기업정서로 기업을 못살게 구는 법과 정책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고 이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졌다. 선거만 앞두면 반복되는 돈 퍼주기로 외국에서까지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토대였던 수월성 교육은 지탄의 대상이 됐고 북한만 바라보는 외교는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돼버렸다.

검찰개혁이라는 명분하에 정권을 향한 수사를 사실상 틀어막아 버리고 정권 비리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총장을 쫓아내는 것도 모자라 피의자와 피고인들이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검찰간부를 차지하는 전무후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게 작금의 대한민국이다.

5년짜리 정권은 임기가 끝나면 그만이다. 이 모든 실정(失政)의 뒷감당은 모두 국민 몫이다. 다락같이 늘어난 국가채무, 여기저기서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각종 기금은 모두 이제 앞으로 국민들이 주구장창 세금을 내서 갚고 메워야 한다. 탈원전 정책으로 조기폐쇄 되거나 사업이 중단된 원전 7기의 손실비용(1조4000억원)은 전기요금에 전가돼 이 또한 국민들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도 대선이 가까워지자 또 다시 전국민에게 돈을 풀겠다고 한다. 마치 제 돈이라도 내주듯, '돈 줄테니 표달라'는 식이다. 하지만 재난지원금이 됐든, 무슨 이름이 됐든, 이 돈은 국민들에게는 ATM에서 당겨 쓰는 현금서비스와 다를 게 없다. 모두 이자까지 합해 국민들이 미래에 다 갚아야 할 돈이다. 국민들 동의도 없이 국민 이름으로 빚을 지고 마치 자기들이 돈을 주는 것처럼 생색을 내는 게 이 정권 사람들이다.

이 정권은 국민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전 "죽비를 맞은 것 같다"며 부동산 실정을 인정하는 듯 했지만 최근 여당내 움직임을 보면 부동산정책도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생각은 없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국 사태를 사과하는 듯했지만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똑같이 수사해야 한다"며 논지를 흐려버렸다.

조국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는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국민들에게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미안한 마음은 없는지.빚을 진 건 없는지. 국민들은 현 정부들어 실제로 엄청난 빚을 새로졌다. 국가채무는 2016년말 627조원에서 지난해말 847조원으로 문 정부 4년만에 35%(220조원) 늘었다. 국민 한명이 갚아야 하는 국가채무는 1634만원이다. 1년전보다 200만원 넘게, 4년전에 비해서는 400만원 이상 늘었다.

마음의 빚도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엄청난 빚을 국민들에게 떠 넘긴데 대해 최고 통치권자는 정말 미안한 마음은 없는지 궁금하다. 빚도 그렇지만 사라진 수 많은 양질의 일자리, 심화된 소득격차 등에 대해 국민들에게 할 말은 없는가.

조국에게 그렇게 간절하게 미안함을 표시하던 대통령도, 대통령을 따라 경쟁적으로 조국에게 가슴이 아리고 미안하다고 했던 여권의 거물급 정치인들도 정작 국민들에게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 듯하다.

조국의 주장대로 그 역시 억울한 부분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 국민들은 조국보다 훨씬 더 억울하고 분하다.마음의 빚 때문이든, 실제 빚 때문이든 지금 이 정부 권력자들이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가슴 아파해야할 대상은 조국(曺國)이 아니라 조국(祖國)과 국민들이다.

김선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