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자국 국민과 기업에게 외국의 제재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공하는 '반(反)외국제재법'을 제정한다. 지난 3월 신장위구르자치구 인권 관련 미국·유럽연합(EU)의 동시 제재에 이어 최근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중국 기업 블랙리스트를 확대하자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8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입법기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전날 반외국제재법 초안을 두 번째로 심의했다. 상무위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전인대의 입법권을 상시적으로 위임받아 수행하는 기구다. 상무위는 지난 4월 반외국제재법을 1차로 심의한 데 이어 이번에 두 번째 심의했다.

상무위 대변인은 "통상 입법은 세 차례 심의한 후 표결에 부치지만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법은 2차로 마무리하고 입법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며 이번 상무회 회의 폐막일인 오는 10일 처리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반외국제재법의 핵심은 중국 기업과 국민에 가해지는 '부당한' 외국의 조치를 중국 법령으로 막아줘 정상적인 국제 교류와 무역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외국의 부당한 제재로 합법적 권익을 침해받은 중국의 개인과 법인이 중국 인민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제재 당사자 또는 제재를 준수한 거래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국 기업이 자국법과 외국법 간의 모순으로 외국 법령을 위반해 심각한 손실을 보면 중국 정부가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으며, 정부가 필요한 반격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규정도 포함됐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홍콩과 신장 인권 탄압을 이유로 관련 고위 관리들의 금융거래를 중단하는 등의 제재를 해왔다. 또 국가 안보 침해 우려를 들어 화웨이와 3대 국유 통신사 등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기도 했다. 가장 최근 제재는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3일 미국인 투자 금지 중국 기업 리스트를 28곳 추가해 총 59곳으로 늘린 것이다.

미국은 또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최대 반도체 수탁생산업체 중신궈지(SMIC) 등에는 미국의 허가 없이 미국의 반도체 관련 기술과 장비, 소재 등을 살 수 없도록 하는 제재도 내렸다. 중국의 기술 발전에 결정적 타격을 준 조치로 꼽힌다.

중국에선 그동안 이런 외국의 제재에 대응할 수 있는 법 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EU와 캐나다, 멕시코 등은 비슷한 법령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9월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리스트를 내놓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10월 보잉과 록히드마틴 등을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이유로 이 리스트에 올렸다. 중국은 이어 지난 1월에는 '외국 법률·조치의 부당한 역외적용을 저지하는 방법'이라는 상무부령을 발표하고 즉시 시행에 들어갔다. 전인대가 심의하는 반외국제재법은 이 상무부령을 확대 개편한 것이다.

중국이 반외국제재법을 시행한다 해도 미국 기업이 미국의 조치를 따르는 것을 막긴 어렵다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홍콩 로펌인 스텝토&존슨은 "이번 법령을 중국 밖에서 실제로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중국 사업 비중이 큰 미국 기업을 압박하는 데에는 상당한 효과를 낼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중국 관영언론들은 미국의 제재가 나올 때마다 애플, 씨스코 등 중국 사업 비중이 높은 기업들이 타깃이 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