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기업공개) 분야에서 이런 큰 장이 향후 수십 년 안에 다시 올지 모르겠다.”

한 국내 증권사 IB본부장의 말처럼 최근 ‘대어’급 장외기업들의 잇단 증시 입성은 국내 자본 시장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올 들어 상장했거나 상장 예정인 기업들의 신주 발행 주식을 모두 더하면 30조원을 웃돌 전망이다. IPO 규모가 최대였던 2017년(5조9000억원)의 다섯 배가 넘는다. 특히 대형 장외기업들이 앞다퉈 증시 문을 두드리고 있다. 평소에 1년에 한두 곳에 그치는 이른바 조단위 ‘대어’가 올해는 10여 곳에 달한다.

개인과 기관들의 투자 기회가 넓어지고, 국내 증시 수준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기회를 맞게 됐다. 관건은 국내 증시가 이 막대한 규모의 신주를 소화할 만한 체력을 갖췄는지다.
올 새내기株 예상 몸값 220조…전체 시총의 8% 달해

상장사 시총 3000조원 눈앞

8일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매체인 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 현재까지 IPO로 인한 신주 발행은 3조882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3조8241억원) 연간 기록을 5개월여 만에 넘어선 것이다.

여기에 대어급들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나온다. 역대 최대어인 LG에너지솔루션과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크래프톤 등 대형 공모주가 하반기에 줄줄이 증시 입성을 준비 중이다. ‘새내기주’의 올해 총 공모액은 30조원, 상장 후 시가총액은 22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현재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합한 시가총액이 2740조원임을 감안하면 1년 만에 8%가량 몸집을 불리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의 양적 확대를 이끌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예정된 공모주들이 모두 상장하면 현 주가로 단순 계산했을 때 국내 상장사 시총은 3000조원에 육박하게 된다. 유가증권시장 기준 현재 세계 17~18위권에 그치는 국내 증시의 위상도 한층 확대된다.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이 조달한 공모 자금으로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실적 개선과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면 오히려 주식 시장의 체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증시 체력 괜찮나” 지적도

신주 발행이 봇물을 이루면서 수급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적자 기업들의 상장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 시장 불안 요소로 꼽힌다. 실제로 올 상반기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기업 중 특례상장기업 비중은 61.8%로 특례 제도 도입 이후 가장 높았다. 여기에 카카오페이, 야놀자 등도 적자 상태에서 수조원대의 기업가치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기존 기술특례 상장뿐만 아니라 테슬라 요건으로 불리는 이익미실현요건, 사업모델전문평가, 성장성 추천 등 다양한 요건을 활용한 상장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닷컴버블 당시 사업성이 입증되지 않은 정보기술(IT) 벤처기업들이 잇달아 상장했던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기업이 공격적으로 유상증자에 나서는 점도 주식 공급 과잉 우려를 더하고 있다. 올 들어 현재까지 유상증자 규모는 9조5428억원으로 지난해(7조923억원)보다 34.5% 급증했다. IPO에 증자 물량까지 더하면 올해 총 주식 발행액은 약 5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역대 최대치였던 1999년(41조3000억원)을 넘어서는 규모다. 최근엔 실적 부진을 겪는 기업들까지 대규모 증자에 뛰어드는 모양새다. 중소·중견기업의 주요 조달 수단인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도 투자자의 권리 행사로 줄줄이 신주로 바뀌어 증시로 유입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신주 급증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현재까지 발행 물량이 증시 방향을 바꾸지는 않겠지만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주식시장 수급의 최대 위협 요인은 대규모 IPO 물량”이라며 “지금 당장 영향은 크지 않겠지만 증시가 흔들릴 경우 이를 증폭시키는 대규모 악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학균 신영증권리서치 센터장은 “올해 주식시장에 신규로 들어온 자금이 지금까지 40조원이 넘고, 실적을 내고 있는 기업들이 주로 상장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주식 물량 증가로 주가가 꺾였던 닷컴버블 상황과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전예진/김진성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