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실에 들어서면 삼각기둥처럼 서로 연결된 기묘한 그림 세 점이 보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핏물로 가득 찬 수영장을 그린 그림이다.

수영장에는 나무토막들이 서 있고 그 위로 연결된 빨랫줄에는 흰 광목천이 널려 있다. 화면 곳곳에서 이 천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연결된 다른 그림에서는 제멋대로 자란 열대식물들과 이를 엿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동양화 특유의 섬세한 붓질로 그려낸 까닭에 더 섬뜩하고 답답한 느낌을 준다. 코로나19 시대의 공포와 고통, 답답함을 표현한 이진주의 ‘사각(死角)’(사진)이다.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국내외 작가 35명이 코로나19를 주제로 한 작품 60여 점을 소개하는 기획전 ‘재난과 치유’가 열리고 있다. 지구적인 감염병 발생과 확산으로 생겨난 심리적·사회적 현상을 저마다의 관점에서 해석한 작품들이다. 회화는 물론 조각과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홍진훤의 ‘Injured Biker’는 배달원 복장을 한 사람이 한쪽 다리를 절며 끝없이 걷는 모습을 담은 영상 작품이다. 화면에는 역설적으로 ‘Stay Home. Save Lives(집에 머물러서 생명을 구하라)’라는 문구가 표시돼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서 택배기사와 배달원 등 플랫폼 노동자들이 혹사당하는 현실을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재난 극복의 의지와 희망을 담은 작품도 있다. 독일 작가 요제프 보이스는 ‘곤경의 일부’에서 타타르 유목민이 사용하는 펠트 천을 이용해 인간애를 표현했다. 2차 세계대전 때 전투기를 몰다 추락한 그를 펠트 천으로 감싸 돌봐준 유목민의 따뜻함이 담긴 작품이다. 이배 작가의 ‘불로부터’는 커다란 숯 조각을 매달아 놓은 대형 설치작품이다. 정화, 청결, 소멸과 생성 등을 상징하는 숯을 통해 회복과 치유를 표현했다.

몇몇 작품에서 “감염병 재난은 서구화·발전·문명화가 낳은 참사”라는 진부한 환경주의적 구호가 노골적으로 반복되는 점은 아쉽다. 국립현대미술관도 이번 전시 소개글에서 “문명의 질주라는 결과가 팬데믹이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고 단언하고 있다. 전시장 입구의 ‘신디케이트: 코로나 에디션’은 수십 장의 사진과 영상, 이에 대한 설명을 모아놓은 거대한 설치 작품이다. 6명의 사진가와 5명의 작가가 함께 만들었다. 전시는 8월 1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