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외압은 없었다”고 결론 냈다. 폭행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이 있다는 사실과 이 전 차관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 후보라는 사실도 “윗선에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수사 과정에 참여한 경찰 중 실무자인 경사 한 명만 검찰에 송치했다. 137일 동안 조사했지만 말단 직원에게만 책임을 묻는 ‘꼬리 자르기’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경찰청 청문·수사 합동 진상조사단은 9일 브리핑을 열고 “이 전 차관 사건을 담당한 서초경찰서 수사관 A경사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A경사는 지난해 11월 11일 오전 9시께 당시 변호사였던 이 전 차관이 택시기사를 폭행하는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했다. A경사는 블랙박스를 압수하지도, 임의 제출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상부 보고도 누락했다. 조사단은 “A경사가 고의로 직무를 방기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지휘라인의 직무유기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수사 총책임자인 서초경찰서장을 비롯해 형사과장, 팀장은 지난해 11월 9일 이 전 차관이 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하지만 범죄수사 규칙을 어기고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진상 파악 과정에서는 “이 전 차관을 평범한 변호사로 알고 있었다”며 거짓 진술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단은 “업무관리 소홀 책임은 인정되지만 고의로 직무 방기 혐의는 명확하지 않다”고 결론 지었다.

조사단은 “서울청 등 상급기관도 서초서로부터 사건에 관해 아무런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경찰은 “서울청 생활안전계 직원이 이 전 차관이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지만, 지휘라인에는 보고하지 않았다”며 “실무자 수준에서 이야기가 오갔지만 이를 상급기관에 대한 보고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사단은 “이 전 차관과 서초서장, 과장, 팀장, A경사의 통화 내역 8000건을 분석하고 통화 목록에 등장한 91명을 조사했지만 외압이나 청탁으로 볼 만한 정황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초서장을 비롯한 담당자 모두 이 전 차관이 유력 인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만큼 ‘알아서 봐주기’식의 수사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건으로 경찰의 수사 신뢰도 역시 도마에 올랐다.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올해 1월부터 검찰에 있던 수사 종결권은 경찰로 넘어왔다. 이 때문에 고위직 등이 연루된 사건을 경찰 스스로 종결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우려가 법조계 안팎에서 나왔다. 수사권 독립, 자치경찰제 도입 등 경찰의 권한이 점차 세지고 있지만 여기에 걸맞은 수사 결과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찰은 후속 대책으로 정식 수사 착수 이전인 내사 단계에서도 보고·지휘 절차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에 따르면 일선 경찰서에서 취급하는 중요 내사 사건은 수사 사건과 마찬가지로 시·도경찰청 및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로 보고해 지휘를 받아야 한다. 사안이 중대하면 시·도경찰청이 사건을 직접 내사한다.

최예린/양길성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