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화의 걷기인문학] 걷기의 재해석 - 일상화
모든 신발의 처음은 초라하고 초라했으나, 그 현재는 창대하도다~

일상화란?

일상화는 매일 신는 신발이다. 특별한 사람이나 목적이 없는 신발인 만큼 일반적인 디자인에 일반적인 소재를 사용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부담없이 사용할 수있도록 제작된 신발이다. 기능성 신발이 발의 특정 부분의 활동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만들어진다면, 일상화는 신발이 발의 지지역할을 함에 있어서 전 영역에 골고루 이루어지게끔 제작된다. 일상화는 착용감과 내구성 뿐만 아니라 걷기, 달리기, 혈액순환, 몸 무게지지 등 생체역학적 기능 등 모든 필요한 기능과 조건들이 적절하게 조합된다. 현대 신발이 ‘이동 수단인 발의 보호’와 더불어 ‘자신을 드러내는 패션’기능이 첨부되어 대단히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최초의 신발은 발의 해로운 것으로부터 보호하고, 추위로부터 보온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신발 중 가장 오래된 것은 B.C 8000 – 7000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세이즈브러쉬 바크 샌달 (sagebrush bark sandals)이다. 1938년 미국 오레곤에서 발견된 것으로 소가죽으로 되어있고, 끈으로 조여맬 수 있는 구조이다. 고고학적으로 인간의 발가락이 가늘어지고 작아지기 시작한 40,000년에서 26,000년 전부터 신발을 신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지만 신발의 구조, 특히 권위나 패션보다는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일상화의 구조는 인류 최초의 신발과 비교해서 별로 변하지 않았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짚신을 불과 100여 년전에도 신고 다녔고, 서양에서도 평민의 대부분은 평상시에 맨발로 걸었다. 신발이 대중을 위하여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856년 가죽을 바느질하는 재봉틀이 발명되면서부터이다. 이후 구두 밑창을 다루고 리벳을 박는 기계들이 개발되면서 구두 산업은 혁신적인 발전과 성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근대이전까지만해도 신발은 여전히 비싸고 귀족과 부유한 상인 위주의 상품이었다.

1839년 미국에서 고무나무에서 추출한 생고무에 황을 더하고 가열해서 신발 재료를 만드는 '가황(加黃) 기법'이 개발되면서 신발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이 인공고무를 활용하여 많은 신발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났는데, 그 중에서 아디다스가 독보적인 활동력을 보였다. 아디다스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미국의 육상선수 Jesi Owens에게 자사의 고무 밑창의 육상화를 신겨 우승하게 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후 ADIDAS의 창업자 Adi Dasler의 아들 Horst Dasler가 멜버른 올림픽에서 참가 선수들에게 ADIDAS 신발을 무료로 배포하여 인지도를 확 끌어올림은 물론 스포츠용품 브랜드계 1인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가황기법을 이용하여 한반도에 전해진 것은 1919년 8월 1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 1가에 우리나라의 첫 고무신 공장인 대륙고무공업주식회사을 이하영이 설립하면서부터이다. 고무신은 폭이 넓고 굽이 낮으며 덮개가 반만 되어 있었다. 남자 고무신은 갖신을 본떴고, 여자의 것은 당혜(울이 깊고 코가 작은 가죽신)의 한 가지를 본떠서 만들었다. 고무신은 출시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고무신의 판매 규모는 1921년 한해에만 80만8천 켤레였는데, 국내 생산은 10만 8천켤레였던에 비하여 나머지 70만 켤레는 일본에서 생산되어 수입되었다. 해방이후에도 고무신의 인기는 지속되었고, 특히 부산의 산업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국내 토종 스포츠 브랜드인 르까프와 프로스펙스의 모기업인 화승과 국제그룹도 부산에서 고무신을 생산한 것으로 출발하였다. 이후 오랫동안 고무신은 태어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며, 신발 본래의 기능인 발 보호와 보온 기능을 원시적인 수준을 지탱한다.

1960년대에는 발을 덮는 갑피와 발바닥이 닿은 창으로 구성된 새로운 신발이 등장해 고무신과 세대교체가 진행됐다. 1970년대 생활 수준이 나아지면서 신발 주력제품은 고무신에서 운동화로 바뀐다. 매우 느린 속도로 변하던 신발은 나이키 창업자인 빌 바우어만이 1970년 어느 날 아내가 와플 굽는 것을 보고 운동화 밑창에 와플처럼 격자무늬를 넣으면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리면서부터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기 시작한다. 바이어만은 와플굽는 기계에 고무화합물을 넣고 밑창을 구워내서, 신발 밑바닥에 붙였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이 나이키의 와플 트레이너 러닝화는 곧 전 세계의 육상선수들의 기록을 향상시키며 폭발적인 반응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운동화는 미국에서 단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운동화, 신발로 기록되었다. 첫 번째 와플 운동화의 성공이후 빌 바우만은 회사 이름을 ‘블루 리본 스포츠’에서 ‘나이키’로 회사 이름을 바꾼다. 나이키라는 이름은 승리의 여신인 ‘니케(NIKE)’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페르시아에서 승리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던 그리스 병사가 기도를 올린 바로 그 여신의 이름이다. 승리의 여신인 니케의 상징적 의미를 브랜드화하여 나이키는 신발의 본질적 기능마저 바꾸어 버렸다. 나이키는 신발 제작사라기 보다는 마케팅회사로 자리매김한다.

나이키의 와플 운동화는 신발의 구조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와플 운동화 이전의 신발에는 쿠션이라는 개념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오로지 발의 보호와 보온이라는 1만년전에 만들어진 신발 본래의 기능보다는 운동 역학적 기능과 외관이 중요해졌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신발에서 쿠션을 통한 충격 흡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길어야 1970년 와플 운동화가 등장한 이후인 50여년에 불과하다. 짧은 50여년 만에 사람들은 걸을 때 땅바닥의 느낌을 받지 않게 된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이처럼 신발이 본래의 기능을 벗어난기 시작한 이유로는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여지는 걷는 환경의 변화, 경제 발전에 따른 풍요로움을 즐기려는 패션시장의 성장, 그리고 신발회사의 마케팅 활동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처럼 신발을 필요로 하는 근본 원인이 바뀌었기에 신발의 구조도 바뀌었다. 현대인의 신발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발 보호가 아닌 패션성이다. 2016년 대전과학기술대학교의 이용섭이 발표한 논문 ‘대학생 소비자의 신발제품 구매성향 분석연구’에 의하면 대학생들의 신발의 구매 선택 기준에서 남녀 모두 51.5%와 72.7%로 디자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젊을수록 신발을 편안하게 신을 수 있는 착화감보다는 스타일을 결정하는 디자인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 신발과 옷과의 조화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신발은 패션화, 스포츠운동화 순이었다. 신발 구매 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은 친구로 응답되었다. 현대인이 신발을 구매하면서 신발의 패션성, 즉 신발 자체의 미적 감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옷과의 조화에 더 중점을 둔다. 그러다 보니 신발을 발의 기능과 동떨어진 채로 날렵함과 우아함이 신발 디자인의 대표적 키워드가 되었다. 현대인의 신발과 원시인의 신발을 비교하면 확실히 요즘 신발은 다양한 소재와 색상을 조화롭게 만들었다. 앞은 뾰족하여 마치 신을 신으면 날아갈 듯하고, 뒤굼치는 높아서 하늘높이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을 만큼 키가 커진다. 게다가 병조각, 나무조각 쇳조각 등 온갖 위해물이 널려져 있는 아스팔트 콘크리트 길로부터 발이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무쇠 방패가 무색할만큼 단단하고 딱딱한 밑창으로 되어 있다. 이제 걷고 뛰는데 발의 중요성은 감소되고 신발이 발의 뼈와 근육을 대신한다. 그리고 신발이 발의 고유 기능을 대신하는 만큼 발을 기초로 한 신체 전체의 균형은 흔들리고, 뼈, 근육 그리고 신경은 점점 무뎌져가고 있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우리 발은 잊혀져 가고 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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