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인사, 실력 아닌 '충성 경쟁' 돼버렸다" [남정민 기자의 서초동 일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대검 반부패부장(2018)-법무부 검찰국장(2019)-서울중앙지검장(2020)-서울고검장(2021).
검찰 안팎서 "검찰 70년 역사상 가장 빛나는 보직경로"라 불리는 이 보직의 주인공은 이성윤 서울고검장입니다.
서울고검에는 이성윤 고검장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가 걸려 있습니다. 이성윤 고검장의 지시를 받고 수사에 나섰다가 한동훈 검사장을 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정진웅 차장검사에 대한 공소유지도 걸려 있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의혹 사건에 대한 항고 사건도 걸려 있습니다.
'피고인' 신분의 검사가 고검장급으로 영전하는 선례를 남긴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A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을 A가 수장 자리에 있는 기관이 맡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이 고검장이 앞으로 해당 사건들에 대해 직무 회피를 할 것으로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애시당초 그런 조치를 취해야 하는 인물을 왜 서울고검장 자리에 앉혀야 했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이 고검장이 직무 회피를 한다 해도 서울고검 검사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사를 제대로 이어나갈 수 있을지는 더더욱 의문입니다.
검찰 안팎에선 검사 인사가 '실력 경쟁'이 아닌 '충성 경쟁'이 돼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충성심'이란 권력에 민감한 수사를 얼마나 잘 뭉개느냐로 가름될 수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 군 휴가 미복귀’ 사건 수사를 뭉갰다는 의혹을 받은 김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수원고검장으로 영전했습니다. 동기들 중 가장 먼저 '고검장' 타이틀을 달았습니다. 수원지검장은 역시 친정부 성향으로 꼽히는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맡습니다. 그리고 현재 수원지검에는 문재인 정부에 민감한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가 걸려 있습니다.
물론 이번 검찰 인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납득할 만한 부분도 있다"는 평이 나옵니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를 지휘했던 이두봉 대전지검장은 인천지검장으로 수평 이동했습니다. '윤석열 라인'으로 불리는 이원석 수원고검 차장은 제주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을 지휘했던 박찬호 제주지검장은 광주지검장으로 발령났습니다.
문제는 이번 인사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정도가 더 크다는 겁니다. '김학의 전 차관 불법출금 사건'의 피고인 신분인 서울고검장은 앞으로 재판을 받으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해야 합니다.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대한 기소는 '무기한 연기'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한때 '추미애 라인'으로 불렸던 조남관 법무연수원장은 추 전 장관에게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정지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하고 이 고검장 기소 승인을 내린 뒤 법무연수원으로 좌천됐습니다.
벌레 파먹은 사과를 두고 "물론 벌레 먹은 부분이 있긴 하지만 거기 빼고 다른 부분은 다 괜찮아"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 사과는 결국 벌레 파먹은 사과일 뿐입니다.
이번 검찰인사를 비판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검찰 안팎서 "검찰 70년 역사상 가장 빛나는 보직경로"라 불리는 이 보직의 주인공은 이성윤 서울고검장입니다.
서울고검에는 이성윤 고검장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가 걸려 있습니다. 이성윤 고검장의 지시를 받고 수사에 나섰다가 한동훈 검사장을 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정진웅 차장검사에 대한 공소유지도 걸려 있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의혹 사건에 대한 항고 사건도 걸려 있습니다.
'피고인' 신분의 검사가 고검장급으로 영전하는 선례를 남긴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A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을 A가 수장 자리에 있는 기관이 맡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이 고검장이 앞으로 해당 사건들에 대해 직무 회피를 할 것으로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애시당초 그런 조치를 취해야 하는 인물을 왜 서울고검장 자리에 앉혀야 했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이 고검장이 직무 회피를 한다 해도 서울고검 검사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사를 제대로 이어나갈 수 있을지는 더더욱 의문입니다.
검찰 안팎에선 검사 인사가 '실력 경쟁'이 아닌 '충성 경쟁'이 돼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충성심'이란 권력에 민감한 수사를 얼마나 잘 뭉개느냐로 가름될 수 있다고 합니다.
"어? 이 사람 사건 잘 뭉개네? 이 사람을 여기 보내놓으면 시끄러운 사건들이 정리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면 영전시키는 거죠. "이 사람을 보내면 수사가 잘 되겠다"가 아니라 "수사가 잘 안 되겠다"가 기준이 된 겁니다.
원래 검찰 인사가 잡음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실력'에 따라 이뤄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했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 어디를 거쳤고 그 기수 에이스로 꼽히니 이번에는 어디 가겠네' 이런게 예측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전혀 예측이 안 돼요.
-검사장 출신 변호사
'누가누가 정권에 충성을 다 하나' 경쟁하는 꼴이죠. 냉정하게 말해서 서울 한번 못 찍어보고 지방 이곳저곳 다니고 있었는데 위에서 '검사장 한번 해봐'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이성윤 고검장의 뒤를 이어 서울중앙지검은 이정수 지검장이 이끌게 됩니다. 이 지검장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합니다.
"나를 알아봐 주다니. 충성을 다 해야 겠다" 이렇게 되겠죠.
당연히 기존 엘리트 검사들은 인정 못하는 분위기고, 그러니까 조직은 더 시끄러워졌습니다. 잘하던 사람들은 지금까지 달려오던 목표가 없어지면서 꺾이고. 더 밑에 사람들은 윗사람들 눈치보면서 점점 더 권력에 순종할 수밖에 없고. "이 수사 잘못하면 나 날라가겠네?" 이런 생각이 안 들겠어요?
원래 한 조직을 망가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조직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없는 사람을 윗자리에 갖다 놓는 겁니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
지난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 군 휴가 미복귀’ 사건 수사를 뭉갰다는 의혹을 받은 김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수원고검장으로 영전했습니다. 동기들 중 가장 먼저 '고검장' 타이틀을 달았습니다. 수원지검장은 역시 친정부 성향으로 꼽히는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맡습니다. 그리고 현재 수원지검에는 문재인 정부에 민감한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가 걸려 있습니다.
물론 이번 검찰 인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납득할 만한 부분도 있다"는 평이 나옵니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를 지휘했던 이두봉 대전지검장은 인천지검장으로 수평 이동했습니다. '윤석열 라인'으로 불리는 이원석 수원고검 차장은 제주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을 지휘했던 박찬호 제주지검장은 광주지검장으로 발령났습니다.
문제는 이번 인사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정도가 더 크다는 겁니다. '김학의 전 차관 불법출금 사건'의 피고인 신분인 서울고검장은 앞으로 재판을 받으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해야 합니다.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대한 기소는 '무기한 연기'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한때 '추미애 라인'으로 불렸던 조남관 법무연수원장은 추 전 장관에게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정지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하고 이 고검장 기소 승인을 내린 뒤 법무연수원으로 좌천됐습니다.
벌레 파먹은 사과를 두고 "물론 벌레 먹은 부분이 있긴 하지만 거기 빼고 다른 부분은 다 괜찮아"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 사과는 결국 벌레 파먹은 사과일 뿐입니다.
이번 검찰인사를 비판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