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日 게이단렌의 영향력 유지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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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마다 부침에도 영항력 견고
위상 추락한 전경련과 대조적
시대 변화에 따른 변신이 비결"
정영효 도쿄 특파원
위상 추락한 전경련과 대조적
시대 변화에 따른 변신이 비결"
정영효 도쿄 특파원
지난 1일자로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의 제15대 회장에 도쿠라 마사카즈 스미토모화학 회장이 취임했다. 나카니시 히로아키 전임 회장이 임기 도중 사임한 데 따른 갑작스러운 지도부 교체지만 게이단렌의 위상이 흔들릴 것으로 보는 시선은 거의 없다.
현 정부에 적폐로 몰려 위상이 추락한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달리 게이단렌의 영향력은 최근 5년 새 더욱 견고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이단렌 회장은 히타치, 파나소닉, 일본제철, NTT 등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의 회장 및 사장 19명으로 구성된 부회장단을 이끈다.
게이단렌 회장에게는 ‘재계 총리’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회장의 외부 강연과 주요 일정 등 일거수일투족이 거의 매일 언론에 보도된다. 일본 언론도 게이단렌 회장을 배출한 기업은 재계 서열이나 시가총액 순위보다 “게이단렌 회장을 배출한 기업”이라고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재계 총리라는 별칭에 걸맞게 실제로 경제 정책 전반에 폭넓게 관여한다. 게이단렌 회장은 일본 총리 직속 자문기구인 경제재정자문회의 고정 멤버다. 경제재정자문회의는 일본의 경제, 재정, 산업, 과학기술 등 폭넓은 분야에 걸쳐 의견을 제시하고 정부 정책으로 입안시키는 역할을 한다.
13대 회장인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도레이 회장(재임 기간 2014년 6월~2018년 5월)은 경제재정자문회의와 미래투자회의, 인생 100년 시대 구상회의 등 아베 신조 전 정부의 핵심 정책과 관련한 자문기구의 민간위원을 도맡으면서 게이단렌 주장을 정부 정책에 적극 반영했다. 전임 나카니시 히타치 회장도 디지털화와 탈석탄화,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 등과 관련한 게이단렌 주장을 정부 정책에 관철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이단렌의 위상이 한결같았던 것은 아니다. 각 정부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아베 내각이 막 출범한 2013년엔 ‘게이단렌 회장의 지정석’으로 불리던 경제재정자문회의 민간위원 자리에서 배제되는 등 홀대를 받기도 했다. 12대 회장인 요네쿠라 히로마사 스미토모화학 회장(2010년 5월~2014년 6월)이 아베 전 총리가 주창한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반칙이자 무데뽀”라고 원색적으로 비판한 게 원인이었다.
지난해 10월 스가 요시히데 내각이 출범했을 때도 경제재정자문회의의 하위 자문기구인 성장전략회의에 게이단렌 회장이 초청받지 못하면서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성장전략회의는 스가 총리가 아베 정부의 미래투자회의를 해체하고 새로 만든 자문기구다. 아베 전 총리와 호흡이 잘 맞았던 나카니시 당시 게이단렌 회장은 미래투자회의의 핵심 멤버였다. 그가 스가 내각의 새 자문기구에서 배제된 것이다.
다른 경제단체인 일본상공회의소와 경제동우회 대표자들은 성장전략회의 위원으로 초청됐기 때문에 새 정부가 게이단렌을 견제하는 것이라는 뒷말이 나왔다.
게이단렌은 스가 정부 출범 첫 한 달간 평소의 다섯 배인 10건의 정책을 집중 제안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새 내각이 아직 경제 정책을 수립하지 못했을 때 다양한 분야에서 먼저 방향성을 제시함으로써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런가 하면 작년 10월 4일 스가 내각 출범 뒤 처음 열린 경제재정자문회의에는 지병이 재발해 입원 중이던 나카니시 회장이 병원에서 잠시 나와 직접 회의에 참석했다. 새 정부와의 관계 수립에 정성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됐다.
나카니시는 전통적으로 대기업 중심이던 게이단렌의 문턱을 낮춰 정보기술(IT) 기업과 신흥 기업을 회원으로 영입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지난 1일 총회에서는 난바 도모코 DeNA 회장이 게이단렌 75년 역사상 첫 여성 부회장에 임명됐다. 올 3월 IT 기업인 DeNA를 새 회원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수적인 일본 재계를 대변하는 거대 조직이지만 이처럼 시대의 변화에 맞춰 조직을 유연하게 변화시킨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에 게이단렌이 지속해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이단렌 회장은 제조업체 회장이나 사장이 맡는 불문율이 있다. 15명의 회장 가운데 비제조업체 출신은 관료 출신으로 게이단렌 창설에 기여한 3대 회장 우에무라 고고로(1968년 5월~1974년 5월)와 도쿄전력 회장이었던 7대 히라이와 가이시 회장(1990년 12월~1994년 5월) 2명뿐이다.
그 이유를 전임 나카니시 히로아키 회장은 “대항 의식을 공공연히 드러내며 경쟁하는 종합상사나 금융회사는 서로의 기술력과 특기 분야를 인정하는 제조업체와 질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 있다.
게이단렌 회장은 정부와 재계, 회원사 간 조정자 역할이 중요한데, 종합상사나 금융그룹 회장이 선임되면 동종 업계 경쟁사가 따라 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게이단렌 회장을 가장 많이 배출한 기업은 일본제철이다. 지금까지 3명이 게이단렌 회장을 지냈다. 도요타, 도시바, 스미토모화학 등은 2명씩 배출했다.
현 정부에 적폐로 몰려 위상이 추락한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달리 게이단렌의 영향력은 최근 5년 새 더욱 견고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이단렌 회장은 히타치, 파나소닉, 일본제철, NTT 등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의 회장 및 사장 19명으로 구성된 부회장단을 이끈다.
게이단렌 회장에게는 ‘재계 총리’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회장의 외부 강연과 주요 일정 등 일거수일투족이 거의 매일 언론에 보도된다. 일본 언론도 게이단렌 회장을 배출한 기업은 재계 서열이나 시가총액 순위보다 “게이단렌 회장을 배출한 기업”이라고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재계 총리라는 별칭에 걸맞게 실제로 경제 정책 전반에 폭넓게 관여한다. 게이단렌 회장은 일본 총리 직속 자문기구인 경제재정자문회의 고정 멤버다. 경제재정자문회의는 일본의 경제, 재정, 산업, 과학기술 등 폭넓은 분야에 걸쳐 의견을 제시하고 정부 정책으로 입안시키는 역할을 한다.
13대 회장인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도레이 회장(재임 기간 2014년 6월~2018년 5월)은 경제재정자문회의와 미래투자회의, 인생 100년 시대 구상회의 등 아베 신조 전 정부의 핵심 정책과 관련한 자문기구의 민간위원을 도맡으면서 게이단렌 주장을 정부 정책에 적극 반영했다. 전임 나카니시 히타치 회장도 디지털화와 탈석탄화,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 등과 관련한 게이단렌 주장을 정부 정책에 관철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이단렌의 위상이 한결같았던 것은 아니다. 각 정부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아베 내각이 막 출범한 2013년엔 ‘게이단렌 회장의 지정석’으로 불리던 경제재정자문회의 민간위원 자리에서 배제되는 등 홀대를 받기도 했다. 12대 회장인 요네쿠라 히로마사 스미토모화학 회장(2010년 5월~2014년 6월)이 아베 전 총리가 주창한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반칙이자 무데뽀”라고 원색적으로 비판한 게 원인이었다.
지난해 10월 스가 요시히데 내각이 출범했을 때도 경제재정자문회의의 하위 자문기구인 성장전략회의에 게이단렌 회장이 초청받지 못하면서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성장전략회의는 스가 총리가 아베 정부의 미래투자회의를 해체하고 새로 만든 자문기구다. 아베 전 총리와 호흡이 잘 맞았던 나카니시 당시 게이단렌 회장은 미래투자회의의 핵심 멤버였다. 그가 스가 내각의 새 자문기구에서 배제된 것이다.
다른 경제단체인 일본상공회의소와 경제동우회 대표자들은 성장전략회의 위원으로 초청됐기 때문에 새 정부가 게이단렌을 견제하는 것이라는 뒷말이 나왔다.
게이단렌은 스가 정부 출범 첫 한 달간 평소의 다섯 배인 10건의 정책을 집중 제안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새 내각이 아직 경제 정책을 수립하지 못했을 때 다양한 분야에서 먼저 방향성을 제시함으로써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런가 하면 작년 10월 4일 스가 내각 출범 뒤 처음 열린 경제재정자문회의에는 지병이 재발해 입원 중이던 나카니시 회장이 병원에서 잠시 나와 직접 회의에 참석했다. 새 정부와의 관계 수립에 정성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됐다.
나카니시는 전통적으로 대기업 중심이던 게이단렌의 문턱을 낮춰 정보기술(IT) 기업과 신흥 기업을 회원으로 영입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지난 1일 총회에서는 난바 도모코 DeNA 회장이 게이단렌 75년 역사상 첫 여성 부회장에 임명됐다. 올 3월 IT 기업인 DeNA를 새 회원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수적인 일본 재계를 대변하는 거대 조직이지만 이처럼 시대의 변화에 맞춰 조직을 유연하게 변화시킨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에 게이단렌이 지속해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역대 게이단렌 회장의 면면은
1946년 설립 이래 15명의 회장이 게이단렌을 이끌었다. 2년 임기를 한 차례 연임해 총 4년간 재임하는 현재의 관례는 제6대 사이토 에이시로 회장(1986년 5월~1990년 12월)부터 시작됐다. 앞선 5명 회장의 평균 재임 기간은 7.3년이었다. 2대 이시자카 다이조 회장(1956년 2월~1968년 5월)은 12년간 재임했다.게이단렌 회장은 제조업체 회장이나 사장이 맡는 불문율이 있다. 15명의 회장 가운데 비제조업체 출신은 관료 출신으로 게이단렌 창설에 기여한 3대 회장 우에무라 고고로(1968년 5월~1974년 5월)와 도쿄전력 회장이었던 7대 히라이와 가이시 회장(1990년 12월~1994년 5월) 2명뿐이다.
그 이유를 전임 나카니시 히로아키 회장은 “대항 의식을 공공연히 드러내며 경쟁하는 종합상사나 금융회사는 서로의 기술력과 특기 분야를 인정하는 제조업체와 질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 있다.
게이단렌 회장은 정부와 재계, 회원사 간 조정자 역할이 중요한데, 종합상사나 금융그룹 회장이 선임되면 동종 업계 경쟁사가 따라 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게이단렌 회장을 가장 많이 배출한 기업은 일본제철이다. 지금까지 3명이 게이단렌 회장을 지냈다. 도요타, 도시바, 스미토모화학 등은 2명씩 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