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SPAC) 열풍이다. 지난 8~9일 청약을 진행한 삼성머스트스팩5호는 909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틀 동안 약 2조원의 증거금이 몰렸다. 지난해 상장한 스팩 19개의 평균 경쟁률이 3 대 1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00배 이상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청약 열기에 불을 지핀 것은 삼성스팩4호다. 지난 21일 상장한 이 스팩은 상장 첫날에는 잠잠했으나 이튿날부터 6영업일 연속 상한가를 이어가는 기염을 토했다. 2000원이던 주가는 최고 1만2900원까지 치솟았다. 이 스팩을 대량 매수한 특정인이 삼성 일가이며 삼성계열 비상장 회사와 합병할 것이란 소문이 호재로 작용했다. 이 스팩은 지난 3일 이후 상승세가 꺾였지만 11일 종가 기준으로 4배 이상인 8000원 대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스팩4호 뿐만 아니다. SK4호, 5호, 6호스팩을 비롯해 하이제6호스팩, 유진스팩6호 등이 줄줄이 가격 제한폭까지 급등했다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양새다.

증권가는 이런 현상을 비정상적으로 보고 있다. 특별한 합병 호재가 없는 신생 스팩까지 주가가 오르는 것은 이상과열 징후라는 것이다. 최근 주식 토론방에 "오늘은 00스팩"이라는 글들이 늘어난 것도 이유다. 소위 '주포'가 특정 스팩을 지목하면 세력이 몰리면서 거래량이 폭발하고 이를 추종 매수해 수익을 내려는 개미들이 가세해 주가가 갑자기 폭등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가 지난달 24일부터 이날까지 특정 계좌에서 매매 주문이 집중돼 시세 조종이 의심되는 38개 종목에 대해 투자 주의를 요구했는데 이 중 33개가 스팩이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스팩의 속성 때문이다. 스팩은 비상장기업을 인수·합병(M&A)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목적회사, 일종의 페이퍼컴퍼니다. 공모가가 2000원으로 통일돼있어 1주당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시가총액도 50~100억원 대로 몸집이 가볍다. 적은 돈으로 많은 수량을 매집해 주가를 움직이기 쉽다. 이를 악용해 스팩이 주가조작세력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조정을 받은 코인 투자세력이 가세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코스피가 5개월째 박스피 구간에 갇히며 횡보하자 투자자들이 변동성이 커진 스팩으로 몰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증권가는 증시 과열 시기마다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로 해석하고 있다. 2019년 5월 상장한 한화에스비아이스팩은 상장 직후 4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주가가 최고 9750원까지 치솟았다. 2015년 4월 상장한 한화에이스스팩1호도 상장 후 5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렇게 상승한 주가는 계속 유지되기 어렵다. 2019년 급등한 스팩을 비롯해 최근 상승한 하이제6호스팩과 유진스팩6호, 신영스팩5,6호, 하나머스트7호스팩 등이 하한가로 반전하면서 주가가 2000원 대 초반까지 주저앉았다. 고점에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들은 '폭탄 돌리기'의 희생양이 됐다. 주가를 밀어올린 다음 물량을 개미들에게 떠넘기고 탈출한 세력들만 수익을 챙긴 셈이다.

업계는 스팩의 주가가 제자리를 찾아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스팩의 주가가 높으면 합병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스팩은 일반적으로 상장 후 1년 뒤부터 청산 기한인 3년 내 합병 대상을 물색한다. 상장한 후 주가 변화가 거의 없다가 합병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오른다. 지난 25일 메타버스 관련 기업 엔피와 합병을 발표하면서 상한가를 기록한 삼성스팩2호가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합병 이전부터 스팩의 주가가 높으면 합병시 비상장기업 주주가 받게 되는 주식 지분율이 낮아진다. 이런 스팩은 매력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발기인은 대안으로 주가가 낮은 다른 스팩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스팩의 인기가 식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전망이다. 최근 예비상장기업들의 공모가가 일제히 상향 조정되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어서다. 지난해만해도 '따상''따상상' 사례가 등장하면서 공모주 대박 사례가 쏟아졌으나 이제는 공모주로 큰 수익을 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반면 스팩은 주가가 2000원 아래로 하락할 확률이 거의 없고 3년 안에 합병에 성공하지 못해도 투자 원금과 이자 등을 돌려받을 수 있어 안정적인 투자처로 꼽힌다. 공모주 대비 경쟁률이 낮은 것도 장점이다. 인기 공모주는 경쟁률이 2000 대 1까지 치솟았지만 스팩은 아무리 경쟁률이 높아도 세자릿수에 그쳤다. 올해 상장한 하나머스트7호스팩과 IBKS제15호스팩은 각각 237 대 1, 101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스팩의 청약 경쟁률도 날로 높아지고 있어 점차 투자 메리트가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머스트스팩5호는 온라인 자격 청약자가 최대 수량인 2만4000주를 청약했을 때 18주를 배정받았다. 4800만원을 넣어도 3만6000원 어치 밖에 받지 못하는 것이다. 스팩은 신청수량의 50%만 증거금으로 내는 공모주와 달리 100%를 증거금으로 내야한다. IB업계 관계자는 "스팩은 상장 당일 수익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단기 투자자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며 "소액을 분산 투자해 묻어두는 전략으로 접근해야한다"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