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하기까지 수많은 과정이 있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여성용 경구 피임약은 뇌에서 난포자극호르몬이나 황체형성호르몬 등을 억제해 배란을 막는 방식입니다.

경구 피임약은 높은 확률로 피임이 가능하지만 주성분이 여성호르몬인지라, 내분비계 문제가 생길 수 있죠. 장기 복용 시 여러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보고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대안으로 비교적 안전한 비호르몬계 피임약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은 요원한 일입니다.

물리적으로 여성의 몸에서 수정을 막을 수 있는, 즉 비호르몬계 약물로 피임을 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고, 관련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탓입니다. 그런데 최근 비호르몬계 피임약 개발에 도움이 될 만한 흥미로운 연구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습니다.

운동성 섬모 vs. 평활근, 진짜 불임 원인은?
미국 룬드퀴스트연구소 연구진은 연구의 돌파구를 나팔관의 ‘깔때기(infundibulum)’ 부분에서 찾았습니다. 나팔관은 크게 수란관(난관)과 깔때기로 나뉘는데요, 깔때기는 난자와 만나는 부위를 말합니다.

깔때기를 통해 나팔관을 거슬러 올라가는 난자와 자궁을 지나 난관에 다다른 정자가 만나 수정을 하고, 다시 자궁에 착상을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난자와 수정란은 운동성이 없기 때문에 오로지 난관의 ‘운동’에 기대야 합니다. 만약 이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수정이 됐다 하더라도 임신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운동에 기여하는 것은 나팔관 전반에 걸쳐 나 있는 운동성 섬모와 난관의 평활근이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중 어떤 세포가 난자 수송에 관여하는지, 어떤 메커니즘으로 진행이 되는지는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나팔관 수송 논쟁’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이번 연구는 이 나팔관 수송 논쟁에서 깔때기의 운동성 섬모가 난자를 이동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임을 밝혔습니다. 연구진은 깔때기 운동성 섬모를 발현하는 데 관여하는 마이크로RNA(miRNA)를 제거한 쥐에서 수정 과정을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miR-34b/c’ ‘miR-449’ 두 miRNA가 제거된 쥐는 운동성 섬모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고, 배란된 난자를 수란관 쪽으로 가져오는(pick up) 데 실패했습니다. 이는 불임 혹은 자궁외임신으로 이어졌습니다.

깔때기를 제외한 난관의 섬모들(기능성 섬모) 역시 수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기능성 섬모를 제거하자 정자가 난관까지 오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수정란이 다시 자궁으로 갈 때는 효율이 매우 떨어졌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깔때기의 운동성 섬모는 여성의 생식력을 결정하는 핵심인자다. 반면 난관의 기능성 섬모나 평활근은 수정과 착상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여성의 생식력과는 연관성이 적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운동성 섬모 발현 조절하는 유전자군 발견
이번 연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비호르몬계 피임약 개발에 사용될 수 있을까요. 연구진은 모든 RNA 전사체를 분석하는 ‘트랜스크립토믹’ 기술을 이용해 깔때기의 운동성 섬모와 관련한 정보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miR-34b/c와 miR-449에 의해 발현이 조절되는 5개의 mRNA를 찾았습니다. 이들은 섬모를 발현하고 조직하는 데 관여하는 수많은 mRNA를 안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중에는 연구진이 타깃으로 하는 ‘Tubb4b’ 유전자도 포함됩니다. Tubb4b는 미세소관을 구성하는 튜블린 정보를 가진 유전자입니다. 미세소관이 모여 섬모를 구성하죠. 연구를 주도한 웨이얀 미국 LA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비호르몬 여성 피임약 개발에 좋은 표적을 제시했다”며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는 자궁외임신의 원인을 이해하고 불임 치료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miRN란?
마이크로RNA는 단백질로 번역되지 않는 비번역 RNA다. 기존에는 비번역 RNA가 하는 일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이 중 일부 miRNA가 mRNA와 상보적으로 결합하면서 단백질 발현을 조절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람 몸속에는 수백 개의 miRNA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글 최지원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