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귀

오순택

가진 건 아주 작은
귀 하나 뿐이어도

실을 꿰어
해진 것 다 깁는다.
바늘 너는

너처럼
깨끗한 귀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태헌의 한역]
針耳(침이)

針兮汝所有(침혜여소유)
但止一小耳(단지일소이)
穿針將走線(천침장주선)
綻裂盡可理(탄렬진가리)
耳若汝耳純(이약여이순)
吾人丁寧喜(오인정녕희)

[주석]
* 針耳(침이) : 바늘귀. 이규경(李圭景) 선생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의하면 ‘침이(針耳)’는 우리식 한자어로 보인다. 중국 사람들은 바늘귀를 ‘침공(針孔)’, ‘침안(針眼)’, ‘침비(針鼻)’ 등으로 표기하였다.
針兮(침혜) : 바늘아! ‘兮’는 호격(呼格) 어기사(語氣詞)이다. / 汝所有(여소유) : 네가 가진 것.
但(단) : 다만, 그저. / 止(지) : ~에 그치다, ~에 불과하다. / 一小耳(일소이) : 작은 귀 하나.
穿針(천침) : 바늘귀에 실을 꿰다. 이 말 자체가 바느질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 將(장) : 장차.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走線(주선) : <바늘에 꿴> 실을 가게 하다, 바느질을 하다. 이 역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綻裂(탄렬) : (옷 따위가) 터지거나 찢어지다. / 盡(진) : 모두, 다. / 可(가) : ~을 할 수 있다. / 理(리) : 바루다, 손질하다. ‘깁다’의 뜻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耳(이) : 귀. / 若汝耳(약여이) : 너의 귀와 같다, 너의 귀처럼. / 純(순) : 순일(純一)하다. 원시의 “깨끗한”을 역자가 함의를 고려하여 한역한 표현이다.
吾人(오인) : 나. 원시의 생략된 주어를 보충한 것이다. / 丁寧(정녕) : 정녕, 틀림없이. 원시의 뉘앙스를 살리고 한역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喜(희) : 기쁘다. 원시의 “좋겠다”를 역자가 압운을 고려하여 한역한 표현이다.

[한역의 직역]
바늘귀

바늘아! 너는 가진 것이
그저 작은 귀 하나에 그치지만
귀에 꿰어 실을 가게 하면
해진 것 다 기울 수 있지.
귀가 네 귀처럼 순일하다면
나는 정녕 기쁘겠다.

[한역 노트]
“너는 미묘(微妙)한 품질(品質)과 특별한 재치(才致)를 가졌으니, 물중(物中)의 명물(名物)이요, 철중(鐵中)의 쟁쟁(錚錚)이라. 민첩하고 날래기는 백대(百代)의 협객(俠客)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萬古)의 충절(忠節)이라. 추호(秋毫) 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 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
이 글이 무엇을 얘기한 건지 바로 파악한 독자라면 지금 이 순간에 거의 예외 없이 그 옛날 학창시절로 돌아가고 있을 것이지만, 어디서 보기는 한 듯한데 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라면 아마도 학창시절은 까마득하게 잊고 일상에 묻혀 살고 있을 공산이 크다. 이 글은 우리들 대개가 학창시절에 배운 <조침문(弔針文)>이라는 옛날 수필의 한 단락으로, 글을 쓴 분이 “인간부녀(人間婦女)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으로 정의한 그 ‘바늘’에 관해 묘사한 대목이다.

바늘이 이제는 더 이상 ‘인간 세상의 부녀자들 손 안에서 매우 긴요한 것’이 아닌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늘의 중요성이 잊혀지거나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이 달라지고, 그것이 달린 도구 내지는 연장이 달라졌을 뿐이다. 빙하기에 네안데르탈인이 멸망하고, 현재 인류의 조상이 살아남은 이유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기도 하는 이 ‘바늘’의 가치나 의의에 대해서는 새삼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가진 것은 미미하여도 그 가진 것으로 누군가나 무엇인가가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존재가 있다. 우리는 이들의 존재를 평상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이들이 없을 때면 그제야 커다란 불편을 느끼면서 그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바늘에 달린 바늘귀 역시 그러한 존재 가운데 하나이다. 그 “아주 작은 귀 하나”가 없다면 바늘은 그 어떤 실도 끌고 갈 수가 없다.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서 쓸 수는 없으니, 바늘귀가 없는 바늘이 어찌 바늘일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왜 하필이면 “깨끗한 귀”일까? 바늘의 귀는 오직 실 하나만 꿰기 때문에 순일(純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순일하다는 것은 다른 것이 섞이지 않고 순수하다는 뜻이므로 달리 깨끗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에 반해 우리들 귀는 어떠한가? 이것도 좋다 싶어 꿰어두고 저것도 좋다 싶어 꿰어두지만, 정작 필요할 때에는 무엇으로 “해진 것”을 기워야 할 지 알지를 못한다. 꿰어둔 것이 많다고 결코 좋은 게 아닌 것이다. 우리가 귀에 깨끗하게 꿰어두어야 할 것으로는 ‘원리원칙이라는 실’ 하나면 족하지 않을까 싶다. 학연이니 지연이니 코드니 하는 낡은 것들을 내려놓지 못하는 한, 우리는 저 바늘만큼도 세상에 기여하는 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어령 선생은 <바늘의 문화는 끝났는가>라는 칼럼에서, “바느질은 칼질과 달리 두 동강이가 난 것을 하나로 합치게 하는 작업입니다. 바늘의 언어는 융합과 재생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지요.”라고 하였다. 지금 우리의 터지고 찢어진 마음들을 하나로 합쳐 융합시키거나 재생시킬 바느질을 할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어린 아들 굿에 간 어미 기다리듯” 그렇게 기다려볼 일인 듯하다.

역자는 3연 8행으로 된 원시를 6구의 오언고시로 재구성하였는데, 한역하는 과정에서 원시의 행문(行文)과 구법(句法)을 다소 과감하게 변화시켰다. 제5구의 “바늘 너는”을 제1구로 끌어올렸으며, 제3연의 3행을 2구로 한역하면서 함의에 주안점을 두고 의역하였다. 한역시의 제3구와 제6구에 원시에 없는 말을 제법 보탰지만, 원시의 뜻을 손상시키지는 않았다. 한역시는 짝수 구마다 압운하였으며, 그 압운자는 ‘耳(이)’·‘리(理)’·‘喜(희)’이다.

2021. 6. 15.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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