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분양에 나선 지 11년 만에 미분양 물량을 모두 털어낸 경기 고양시 탄현동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  한경DB
지난해 말 분양에 나선 지 11년 만에 미분양 물량을 모두 털어낸 경기 고양시 탄현동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 한경DB
경남 창원시 월영동에 들어선 ‘창원월영 마린애시앙’(4298가구)은 지난 4월 미분양 아파트라는 오명에서 벗어났다. 2016년 분양을 시작한 지 5년 만이다. 첫 분양 당시 경기 불황으로 거의 대부분인 4000가구 정도가 미분양으로 남았다. 하지만 조선 경기가 살아나면서 창원 지역 미분양은 빠르게 해소됐다. 기존 분양가에서 최대 8% 할인해주고 시스템에어컨 설치, 발코니 확장 등 무상 옵션을 제공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전국 미분양 아파트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집값 상승과 새 아파트 선호 현상이 맞물린 결과다.

미분양 역대 최저 수준으로 감소

1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총 1만5798가구로 집계됐다. 사상 최대치인 2009년 3월(16만5641가구)에 비해 10분의 1 수준이다. 미분양 아파트는 2019년 7월 6만2741가구에서 지난 3월 1만5270가구로 21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전국적으로 주택 수요가 높아지면서 미분양 아파트에 관심을 갖는 수요자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집값이 가파르게 오른 수도권 일대는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도 인기가 높은 상황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1년 만에 미분양 아파트에서 벗어난 경기 고양시 탄현동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다. 2009년 착공한 이 단지는 지상 최고 59층, 2772가구 규모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로 조성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에 따른 부동산 경기 침체로 초기 계약자의 약 70%가 입주를 포기했다. 평균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높은 3.3㎡당 1690만원으로 책정된 것도 악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중순까지만 해도 장기 미분양 매물이 대거 쌓였다. 하지만 파주, 김포 등이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인 뒤 고양으로 매수세가 확산되면서 이 단지를 찾는 수요자가 크게 늘었고 지난해 말 미분양분이 모두 팔렸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실거래가도 분양가를 뛰어넘었다. 이 단지 전용 95㎡는 지난해 5월만 해도 5억원 선에서 매매됐다. 하지만 오름폭이 꾸준히 커지면서 지난 1월 실거래가가 7억8000만원까지 올랐다. 경매 시장에서도 매수세가 몰렸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이 단지 경매 물건은 올 들어서만 지난달까지 총 76건이 거래됐다. 지난해 하반기 거래(44건)된 것보다 32건 늘었다.

시세보다 싼 분양가…‘묻지마 투자’는 주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무주택 실수요자는 ‘내 집 마련’을 위해 미분양 아파트 매수를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한다. 미분양 아파트는 최초 분양가가 유지되기 때문에 집값 상승기에는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새 아파트를 매수할 수 있는 게 매력이다.

경쟁이 치열한 청약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선착순 분양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탄현동 A공인 관계자는 “집값이 크게 오른 가운데 전세난까지 장기화하면서 인기가 없던 장기 미분양 아파트를 매수하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며 “청약 가점이 낮고 자금이 부족한 3040 매수자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미분양 아파트 매수를 위해선 꼼꼼한 현장 조사가 필수다. 미분양 아파트는 일반분양 후 진행되는‘무순위 청약(줍줍)’에서 주인을 찾지 못할 경우 단지 인근에 있는 모델하우스나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거래가 이뤄진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아파트가 미분양이 난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며 “‘묻지마 투자’ 대신 직접 현장과 모델하우스 등을 방문하는 걸 추천한다”고 말했다. 역세권 등 알짜 미분양 물량을 중심으로 발품을 파는 것도 좋은 투자 방법이다.

다만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쌓이고 있는 지방 일부 지역은 투자에 주의가 필요하다. 지난해부터 ‘공급 폭탄’이 쏟아진 대구는 미분양 물량이 3월 153가구에서 한 달 만인 4월 897가구로 급증했다. 올 들어 ‘대구 안심뉴타운 B3블록 호반써밋 이스텔라’ 등에서 청약 미달 사태가 잇따라 발생한 여파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대구는 지난해(2만3762가구)보다 18% 늘어난 올해 2만8213가구가 일반에 쏟아진다.

재건축 조합이 조합원 수 등이 달라질 것에 대비해 일반에 분양하지 않고 남겨두는 보류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다만 강남 등 인기 지역 보류지 분양은 주변 시세대로 분양하는 경우가 많아 자금 사정이 넉넉해야 노려볼 만하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새 아파트 수요가 확대되면서 미분양뿐 아니라 무순위 청약이 이뤄지는 보류지에 관심을 보이는 수요자가 늘어나고 있다”면서도 “투자 때 지역별로 가격과 입지, 입주 물량, 주택 하자 여부 등을 잘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