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코로나 핑계로 소통채널 막아버린 韓銀
한국은행 관계자들은 지난 3월부터 ‘비보도(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를 전제로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했다. 각종 지표상으로 실물경제 회복세가 나타나는 한편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이유에서다.

한은은 명분이 쌓여가자 지난달 27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금리 인상 ‘깜빡이’를 켰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서두르면 안 되지만 실기해서도 안 된다”거나 “연내 금리 인상은 경제 상황에 달렸다”고 발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금융시장의 시각은 달랐다. 상당수 증권사는 “올해 금리 인상 가능성은 없다”며 한은의 신호를 외면했다. 일부 증권사는 2024년 1분기 인상론을 폈다. 한은 금통위원과 임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증권사들이 신호를 알고서도 애써 모른 척하고 있다”는 반응도 있었다. 연내 기준금리 인상이 증권사 실적·이해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점이 이 같은 전망에 반영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한은은 지난 11일 창립기념사에서 재차 연내 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이 총재는 올 하반기 역점 추진사항을 언급하며 “완화적 통화정책을 향후 적절한 시점부터 질서 있게 정상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잇따른 금리 인상 신호에 증권사들도 속속 전망을 바꿔갔다. 하지만 일부 증권사와 경제 전문가들은 “연내 금리 인상은 시기상조”라는 시각을 유지했다.

한은과 시장이 다른 시각으로 통화정책을 바라보면, 그만큼 시장 혼선은 커질 수밖에 없다. 가계·기업도 금리 변동 등 시장 변화에 적절하게 대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통화정책 온도차가 커진 배경으로 한은의 소통 부족을 꼽는 시각도 있다. 한은 금통위원 간담회는 코로나19를 이유로 2019년 11월 이후 1년7개월째 열리지 않고 있다.

총재·부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5명은 2017년부터 다양한 주제로 매년 3, 5, 7, 9, 11월 다섯 차례 간담회를 열었다. 시장은 이 간담회를 바탕으로 금통위원이 매파(통화 긴축 선호)인지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인지를 가늠하고, 통화정책 흐름도 파악했다. 간담회가 왜 열리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은은 여전히 코로나19 핑계를 댄다. 하지만 온라인 간담회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의 회의가 가능한 만큼 한은 금통위가 의도적으로 소통창구를 좁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부 금통위원의 강력한 반대로 간담회 재개가 무산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화정책의 신뢰도·파급력을 금통위원 스스로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