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법계에선 형사재판과 상관없이 범죄와의 연관성이 있는 재산을 상대로 민사소송이 가능하다. 미국이 시행하는 민사몰수를 통해선 해당 재산이 범행 준비 단계에서 쓰였거나 실제 범죄 행위로 벌어들인 수익이라는 점 등이 입증되면 사람이 아닌, 재산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약 범죄자들이 수익금으로 피자 가게를 매입한 사실이 밝혀지면 가게 소유주를 상대로 피자 가게는 물론 그와 관련된 모든 권리를 몰수하는 소송을 걸 수 있다. 가게 주인이 해외로 도주했거나 사망했더라도 마찬가지다.
호주는 가장 엄격하고 강력한 방법으로 범죄수익을 환수하는 국가로 평가된다. 호주에는 범행 준비 단계에서 사용된 재산이나 범죄 행위로 얻은 이익은 물론이고, 범죄를 저질러 얻게 된 유명세로 인해 생긴 수익도 환수하는 ‘상업적 수익명령’이 존재한다. 실제로 2005년 마약 밀수 범죄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한 범죄자가 《나의 이야기(My Story)》라는 제목의 자전적 소설을 출판하자 그 수익에 대한 보전명령을 내리고 환수 절차까지 밟은 사례가 있다.
스페인은 초국가적 범죄 행위를 단죄하기 위해 범죄수익 몰수 범위를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최근 형법을 개정했다. 2015년부터 시행 중인 스페인 형법 제127조에 따르면 법원의 유죄판결 선고가 없더라도 △명백한 불법 재산이 존재하는 경우 △범죄자가 사망했거나 만성질환 등의 병을 앓고 있어 재판 진행이 어려운 경우 △공소시효를 이유로 형벌을 따로 부과할 수 없는 경우 별도로 재산몰수를 선고할 수 있다. 한 검찰 간부는 “선진국은 범죄로 큰 부(富)를 쌓은 경제범죄일수록 그 수익을 발본색원해 철저히 사회에 환원한다”며 “한국도 국제적 추세에 발맞춰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