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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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여당 정치인들의 왕조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 놀랄 때가 많다. 제 1야당이 헌정사 최초로 '30대 당수'를 뽑으며 변신에 몸부림 치는 것과 정반대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소위 'K 진보'에 각인된 시대착오적 인식을 엊그제 재차 확인시켜줬다. 한 라디오 방송에 서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일종의 발탁 은혜를 입었다. 야당의 대선 후보가 된다는 것은 도의상 맞지 않는 일"이라며 공격한 것이다. "이회창 전 총리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배신하고 대선에 출마했지만 실패했다"고도 했다. 윤석열의 대선출마와 야당행이 이뤄진다면 '주군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난한 모양새다.

송 대표의 이런 발언은 대통령 직무에 대한 심각한 오해이자, 공직에 대한 천박한 인식이다. 대통령은 논공행상하듯 공을 따져 신하에게 공직이라는 은전을 베푸는 게 아닌다. 오직 적합한 인물을 널리 구해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공무원을 임면"(헌법 78조)하는 것이다. 공무원 역시 임명권자를 무한 추종해서는 안 된다.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에 "공무원은 국민전체의 봉사자"로 규정돼 있다.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도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에 의리를 지켜야한다는 의무를 지운 조항은 당연히 없다.

왕조시대를 연상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충성 강요는 수시로 반복되는 여권의 고질병이다.여당 내 차기 대선 선두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공직에 대한 인식은 송 대표보다 더하다. 재정건전성을 걱정하며 자신의 대규모 재난지원금 지급 주장을 견제하는 경제관료들에게 "기재부는 머슴임을 기억하라,대통령 지시에 무한순응하라"는 기막힌 화법을 선보였다. 또 국책연기기관인 한구조세재정연구원이 자신이 미는 지역화폐의 유용성에 대해 비판적 연구결과를 내놓자 "얼빠졌다"는 거친 비난을 퍼부었다. 왕이나 고위 재상이 신하들에게 '짐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며 진노하는 사극의 장면과 다를바 없다.

거대여당에 확산된 이런 전근대적 사고의 근원은 물론 문 대통령 자신이다. 법적 근거를 찾기 힘든 '코로나 전국민 위로금 지급' 발상에서부터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푼다는 왕조시대의 정서가 물씬하다. 코로나 방역을 앞세워 일체의 반정부집회를 '반사회적 범죄'로 낙인찍은 대목도 마찬가지다. 헌법상 권리인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초월하는 지도자의 자의적 통치가 가능하다는 위험한 인식이 감지된다. “사회의 안녕을 위태롭게 한다면 어떤 관용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대통령 노기 띤 화법 역시 어명을 하달하는 듯하지 않은가.

왕 옆에는 그 심기를 살피는 신하들이 몰려 호가호위하기 마련이다. 지금 청와대가 구중궁궐 같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대통령이 등장하는 모든 행사를 주무른다는 청와대 한 참모는 '왕PD'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왕자 반열에 올랐다. 베토벤 ‘월광 소나타’를 직접 연주하는 유트브 영상에서 “잔잔한 호수에 비치는 달빛의 은은함이 느껴집니다”라는 오글거리는 멘트를 친 정치인은 대변인에 발탁됐다. 주군에게는 머리를 조아리면서 국민은 사사건건 가르치려드는 거대 여당의 뒤틀린 언행을 날마다 지켜보는 일도 고역이다.

백광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