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코알라] 달을 등기하는 것과 예술작품을 NFT로 만드는 것의 공통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전문가 시각
정순형 온더 대표
정순형 온더 대표
▶6월 15일 한국경제신문의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코알라'에 실린 칼럼입니다.
구독신청 hankyung.com/newsletter
재밌는 사실은 달을 팔겠다는 생각을 데니스 호프가 처음 한 것도 아니며, 유일한 달 판매인도 아니라는 점이다. 구글에 달 판매자(moon seller)라고 검색하면 여러 사업자들이 나온다. 내용은 다들 비슷한데, 달을 경위도로 나눠서 각종 패키지를 포함해 페이팔, 신용카드 등으로 결제할 수 있게 만들어 두었다. 루나 앰버시를 설립한 데니스 호프는 그 중 가장 많은 구매자를 확보한, 가장 대중적인 민간 달 등기소장 중 한 명일 뿐이다. 달 등기소를 설립하는 건 어렵지 않다. 통신판매가 가능한 법인 설립을 하고 홈쇼핑과 비슷한 구매 페이지를 열면 된다. 증서도 발행해주면 된다. 그게 종이든 블록체인이든 수단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증서를 바탕으로 실제로 달을 점유해야 하는 순간에 증서를 보유한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느냐의 문제다.
미래를 한 번 그려보자. 우주공학이 발달하여 실제 달을 개발할 수 있는 물리적인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가정해보자. 점유를 해야 하는 순간에 달의 같은 지역을 등기한 여러 달 등기소들이 서로 각자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다툴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앞서 먼저 강력한 우주 군사력으로 달을 점유한 강대국이 기존 민간 등기소를 전부 무시하고 특정 국가 소유로 모두 등기해버릴 가능성도 있다. 또는 UN과 같은 국가간 협의체를 통해서 국제 달 등기소가 설립될 수도 있다. 여기에 외계인이 나타난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외계인이 달의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그들과 등기소 정당성 확보를 위한 우주 전쟁을 불사해야 될지도 모른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보면, 데니스 호프의 증서는 달의 소유권이라는 내재가치를 보장하기 어렵다는것을 쉽사리 알 수 있다.
루나 앰버시의 달 등기 사업이 여러 가지 석연찮고 장난스런 구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증서가 팔리고 거래되는 이유는 데니스 호프가 우주 조약의 약점을 근거로 했던 일련의 소송전과 미디어를 활용해 대중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확보했다는 데에 있다. 대중으로부터 달 문서가 달의 소유권이라는 내재가치와는 관계 없는 어떠한 맥락(context)을 지구에서 확보한 것이다. 즉, 달 등기문서는 내재가치는 없지만 여러 맥락을 통해서 교환가치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반만 맞다. 왜냐하면 발행인에 따라서 내재가치를 가질 수도, 가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서 달 등기문서처럼 내재가치가 없다고 해서 꼭 교환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인 게르니카(Guernica)를 이미지 파일로 변환하여 NFT로 발행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 NFT는 내재가치를 가질까. 상황에 따라 내재가치를 가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더리움과 같은 비허가형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NFT는 누구나 쉽게 발행할 수 있다. 고화질 피카소 그림을 찍은 사진을 다운로드 받았다면 오픈씨(opensea) 혹은 라리블(rarible)과 같은 플랫폼을 이용해 누구나 NFT를 만들 수 있다. 발행량에 제약도 없다. 같은 피카소 그림을 가지고 여러 개의 NFT가 발행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NFT 발행인이 마드리드 국립미술관이고, NFT 소유자에게 게르니카를 양도한다고 선언했다면 NFT는 실물과 연결된 내재가치가 생겼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상황을 조금 바꿔보자. 마드리드 국립미술관이 이번에는 게르니카 NFT 1000개를 찍어냈고, 이는 소유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선언했다면? 게르니카를 1000장으로 찢어 나눠줄 수 없으니 내재가치는 당연히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NFT가 교환가치가 없을까? 더 쉽게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마드리드 미술관이 발행하는 게르니카 기념카드 1000장은 안 팔릴까? 내재가치와 아무런 연동이 없는 NFT이지만 교환가치는 확보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교환가치 확보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어떠한 맥락을 확보했느냐이지, 얼마나 큰 내재가치를 지녔느냐가 아니다. 인문예술에 관한 아주 약간의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이러한 상황이 예술작품의 예술성이 시장가치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과 동일한 원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재가치는 없지만 교환가치가 있는 NFT를 인정한다면, 내재가치 측면에서 FT나 NFT의 차이는 없다. 같지만 다른 표현으로, 코인이나 NFT는 본질적으로 같다.
구독신청 hankyung.com/newsletter
달을 팝니다
1980년 자동차 외판원이었던 데니스 호프는 실직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아내와는 이혼 소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돈벌이를 궁리 중이던 호프는 차창 밖 달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달을 팔아볼까?' 자료를 찾던 호프는 1967년에 협약된 우주 조약(outer space treety)을 찾아냈고 이 조약의 약점(?)을 근거로 달 대사관이라는 뜻의 루나 앰버시(Lunar Embassy)를 설립해 1에이커당 19.99달러에 판매를 시작했다. 루나 앰버시는 1980년부터 현재까지 약 600만명에게 1600억원에 달하는 땅을 판매했다. 특히나 많은 유명인들이 달 소유권을 '등기'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미국인은 스티븐 스필버그, 톰 크루즈, 도널드 레이건이나 조지 부시, 한국에서는 강다니엘과 장나라 등이 포함되어 있다.재밌는 사실은 달을 팔겠다는 생각을 데니스 호프가 처음 한 것도 아니며, 유일한 달 판매인도 아니라는 점이다. 구글에 달 판매자(moon seller)라고 검색하면 여러 사업자들이 나온다. 내용은 다들 비슷한데, 달을 경위도로 나눠서 각종 패키지를 포함해 페이팔, 신용카드 등으로 결제할 수 있게 만들어 두었다. 루나 앰버시를 설립한 데니스 호프는 그 중 가장 많은 구매자를 확보한, 가장 대중적인 민간 달 등기소장 중 한 명일 뿐이다. 달 등기소를 설립하는 건 어렵지 않다. 통신판매가 가능한 법인 설립을 하고 홈쇼핑과 비슷한 구매 페이지를 열면 된다. 증서도 발행해주면 된다. 그게 종이든 블록체인이든 수단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증서를 바탕으로 실제로 달을 점유해야 하는 순간에 증서를 보유한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느냐의 문제다.
미래를 한 번 그려보자. 우주공학이 발달하여 실제 달을 개발할 수 있는 물리적인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가정해보자. 점유를 해야 하는 순간에 달의 같은 지역을 등기한 여러 달 등기소들이 서로 각자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다툴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앞서 먼저 강력한 우주 군사력으로 달을 점유한 강대국이 기존 민간 등기소를 전부 무시하고 특정 국가 소유로 모두 등기해버릴 가능성도 있다. 또는 UN과 같은 국가간 협의체를 통해서 국제 달 등기소가 설립될 수도 있다. 여기에 외계인이 나타난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외계인이 달의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그들과 등기소 정당성 확보를 위한 우주 전쟁을 불사해야 될지도 모른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보면, 데니스 호프의 증서는 달의 소유권이라는 내재가치를 보장하기 어렵다는것을 쉽사리 알 수 있다.
내재가치와 교환가치는 비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직 미국 대통령이 포함된 600만명의 사람은 1600억원어치 달 등기문서를 구매했다. 더해서 그들은 그 문서가 내재가치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달 등기 상품이 구매자에게 내재가치 외에 어떠한 가치를 주고 있다는 데에 있고, 이것이 교환가치를 만들어 냈다는 것에 있다. 달을 사서 친구나 연인에게 주는 로맨틱함이라던지, 현실에서는 혹은 생전에는 갖기 어렵지만 적은 비용으로 저 멀리 보이는 행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감성 등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루나 앰버시의 달 등기 사업이 여러 가지 석연찮고 장난스런 구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증서가 팔리고 거래되는 이유는 데니스 호프가 우주 조약의 약점을 근거로 했던 일련의 소송전과 미디어를 활용해 대중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확보했다는 데에 있다. 대중으로부터 달 문서가 달의 소유권이라는 내재가치와는 관계 없는 어떠한 맥락(context)을 지구에서 확보한 것이다. 즉, 달 등기문서는 내재가치는 없지만 여러 맥락을 통해서 교환가치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NFT의 내재가치와 교환가치
요즘 블록체인 업계에서 NFT(Non-Fungible Token)가 화두다. NFT로 발행된 예술작품이 수백억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그리고 매체는 이 NFT의 개념을 대중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등기부등본'이라는 개념을 활용한다. 즉, NFT라는 블록체인 기반의 등기부등본에 기존에 만들어진 작품(예술품 등)이나 권리(특허권 등)를 등록하여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복제가 쉬운 기존의 디지털 콘텐츠에 위변조에 대한 면역력을 입히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면역력이 생겼기 때문에 기존의 블록체인 기반 코인(FT·Fungible Token)과는 달리 NFT는 내재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그런데 이 이야기는 반만 맞다. 왜냐하면 발행인에 따라서 내재가치를 가질 수도, 가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서 달 등기문서처럼 내재가치가 없다고 해서 꼭 교환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인 게르니카(Guernica)를 이미지 파일로 변환하여 NFT로 발행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 NFT는 내재가치를 가질까. 상황에 따라 내재가치를 가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더리움과 같은 비허가형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NFT는 누구나 쉽게 발행할 수 있다. 고화질 피카소 그림을 찍은 사진을 다운로드 받았다면 오픈씨(opensea) 혹은 라리블(rarible)과 같은 플랫폼을 이용해 누구나 NFT를 만들 수 있다. 발행량에 제약도 없다. 같은 피카소 그림을 가지고 여러 개의 NFT가 발행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NFT 발행인이 마드리드 국립미술관이고, NFT 소유자에게 게르니카를 양도한다고 선언했다면 NFT는 실물과 연결된 내재가치가 생겼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상황을 조금 바꿔보자. 마드리드 국립미술관이 이번에는 게르니카 NFT 1000개를 찍어냈고, 이는 소유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선언했다면? 게르니카를 1000장으로 찢어 나눠줄 수 없으니 내재가치는 당연히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NFT가 교환가치가 없을까? 더 쉽게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마드리드 미술관이 발행하는 게르니카 기념카드 1000장은 안 팔릴까? 내재가치와 아무런 연동이 없는 NFT이지만 교환가치는 확보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교환가치 확보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어떠한 맥락을 확보했느냐이지, 얼마나 큰 내재가치를 지녔느냐가 아니다. 인문예술에 관한 아주 약간의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이러한 상황이 예술작품의 예술성이 시장가치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과 동일한 원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재가치는 없지만 교환가치가 있는 NFT를 인정한다면, 내재가치 측면에서 FT나 NFT의 차이는 없다. 같지만 다른 표현으로, 코인이나 NFT는 본질적으로 같다.
코인은 안되고 NFT는 된다?
최근 한국은행은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의 모의실험 착수를 공개하며 "미술 작품, 저작권 등의 NFT를 어떻게 CBDC와 교환할 수 있을지 연구 중"이고, "비트코인 등 코인 개념의 가상자산은 CBDC의 교환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필자에게 이 말은 "게르니카와 항상 1대1로 교환되는 기념카드만 살 수 있도록 하고, 1000장 한정 발행하는 게르니카 기념카드는 거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말과 같게 들린다. 그들에게 가치와 가격의 차이를 설명하는 맨큐의 경제학 원론 1장 1절 내용을 다시 읊어줘야 될 것 같다.정순형 대표는…
이더리움 기반 블록체인 기술 연구 개발 스타트업인 온더(Onther)의 대표이자 서울이더리움밋업 행사의 공동조직자이기도 하다. 현재 탈중앙성 확보를 전제로 한 이더리움 기반의 확장성 프로토콜인 레이어 2 플랫폼 토카막 네트워크를 개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