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사진=뉴스1
자영업자 가운데 3곳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가 126만명으로 1년 새 20만명(19.2%) 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진 빚은 총 500조원을 넘어섰다. 이 규모가 5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다중채무자는 대부분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비은행 대출을 함께 갖고 있고 ‘대출 돌려막기’를 하고 있을 가능성도 커 소득 감소, 금리 인상 등 충격에 가장 취약한 고리로 꼽힌다. 빚으로 코로나19 위기를 버텨온 영세 자영업자들이 정부의 금융 지원책이 끝나면 무더기 부실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4일 개인신용평가회사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개인사업자대출이 있는 자영업자 가운데 다중채무자는 126만명이었다. 1년 전(105만7000명)보다 20만3000명 늘어난 규모다. 증가율은 19.2%로 1년 전(7%)보다 3배 가까이 올랐다. 같은 시기 통계청이 집계한 자영업자 수가 549만8000명임을 고려하면 전체 자영업자 5명 중 1명(23%)이 다중채무자인 셈이다.

이들의 총대출 금액은 500조8000억원이었다. 1년 전(425조8000억원)과 비교하면 75조원(17.6%) 늘었고 증가율도 1년 전(9.7%)보다 2배 가까이 확대됐다. 전체 자영업자 총대출(851조3000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육박했다.

총대출은 자영업자가 사업자 명의로 받은 개인사업자대출은 물론 개인 자격으로 받은 주택담보대출·신용대출 등 가계대출까지 합친 금액이다. 현금흐름이 불규칙한 자영업자는 사업자대출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가계대출까지 끌어 사업에 쓰는 경우가 많다. 자영업자의 상환능력을 평가하려면 두 가지 대출을 모두 파악해야 하는 이유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개인사업자대출이 있는 자영업자 254만여명 중 78%인 199만명이 가계대출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낸 이인실 서강대 교수는 “이자 부담이 높은 비은행을 포함해 여러 곳에서 돈을 빌린 차주가 늘었다는 것은 자영업자의 자금 사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라며 “금리 인상기에 가장 먼저 타격을 입고 연쇄 부실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전체 자영업자 5명 중 1명
대출 있는 자영업자 절반은 다중채무자
비은행 빚 더빨리 늘어 "도미노 부실 우려"

인천 남동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39)씨는 요즘 대출을 찾아다니는 게 일이다. 코로나19로 개점 휴업이나 다름 없는 상태가 1년 넘게 이어지면서 박씨는 지난해 말부터 소상공인재단 긴급대출, 소상공인 2차 대출, 무이자 경영안정자금으로 6000만원을 빌렸다. 빚을 늘리지 않으려 배달 라이더로 ‘투잡’을 뛰고 5개월 동안 밀린 월세를 보증금에서 제하면서까지 버텼지만 어쩔 수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영업 제한과 매출 절벽이 계속되자 박씨는 그 뒤로도 저축은행에서 700만원, 카드사에서도 500만원을 더 빌렸다. 박씨는 “갈수록 신용도가 떨어져 최근에는 캐피탈, 대부업체에서도 대출 승인을 받지 못했다”며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 시내 한 식당의 모습. 뉴스1
서울 시내 한 식당의 모습. 뉴스1
14일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박씨처럼 3곳 이상의 금융사에서 대출을 받은 자영업 다중채무자는 지난해 말 기준 126만명에 이른다. 다중채무자는 대부분 금리가 높은 2금융권과 대부업 대출을 함께 갖고 있어 이자 부담이 더 크다. 다중채무자는 주로 은행 대출을 갚지 못하거나 대출이 더 필요한 상태에서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해 2금융 대출을 받으면서 부채의 악순환에 빠지는 사례가 많다.

전문가들은 특히 자영업자면서 다중채무를 지고 있다면 잠재 부실 위험이 더 크다고 본다. 자영업자는 보통 직장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출 규모가 크고 빚을 ‘돌려막기’ 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실제 유주희 나이스평가정보 매니저가 최근 펴낸 ‘차입 규모 변동을 고려한 가계대출 건전성 분석’ 보고서를 보면 같은 다중채무자여도 자영업자의 잠재부실률이 임금근로자의 잠재부실률보다 항상 높게 나타났다.

보고서가 신용대출을 보유한 다중채무자의 잠재부실률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대출 규모가 1년 전과 같은 자영업 다중채무자의 잠재부실률은 15.94%로 임금근로자(5.77%)보다 3배 더 높았다. 대출 규모를 늘렸거나 줄인 경우도 자영업자가 임금근로자보다 부실 위험이 1.2~1.8배 더 높았다. 반대로 자영업자여도 다중채무자가 아니라면 임금근로자면서 다중채무자인 사람보다 잠재부실률이 낮았다.

문제는 대출이 있는 자영업자의 절반이 다중채무를 지고 있다는 점이다.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개인사업자대출이 있는 자영업 차주는 총 254만4000명으로 이 가운데 다중채무자 비중은 49.5%다. 1년 전(50.5%)보다는 1%포인트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다. 금액 기준으로는 비중이 더 높다. 자영업 다중채무자의 총대출은 500조8000억원으로 전체 자영업 총대출(851조3000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8.8%에 달한다. 1년 전(57.9%)보다 더 올랐다.

10명 중 8명은 카드론·저축은행·대부업서도 대출

자영업자는 카드·저축은행·캐피탈·대부업체 등 비은행 대출에 대한 의존도 높다. 나이스평가정보가 개인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을 동시에 보유한 자영업 차주 198만7000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10명 중 8명(78.7%)은 비은행 대출을 함께 갖고 있었다. 개인사업자대출은 은행에서, 가계대출은 비은행권에서 빌린 경우가 22.4%로 가장 많았고 두 가지 대출 모두 비은행에서만 빌린 자영업자도 11%였다.

자영업자가 사업자 명의로 빌리는 개인사업자대출은 비은행에서 더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비은행권 개인사업자대출은 157조3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9.8%(26조원) 늘어나 은행권 개인사업자대출(14.1%·49조3000억원)보다 증가율이 높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매출 타격이 컸던 대면 서비스업 자영업자들이 대출로 버텨야 하는 상황에 몰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명대출보다 맞춤형 종합관리 필요"

다중채무자가 위험한 것은 ‘부도 전염 효과’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다중채무자의 대출이 한 권역에서 부실해지면 시차를 두고 다른 권역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영업 다중채무자의 경쟁력과 업종별 과당 경쟁 여부, 코로나 이후 회복 여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맞춤형 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차별적으로 대출을 늘려주는 것만으로는 자영업자를 더 깊은 빚의 늪으로 빠뜨리는 악순환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전현배 서강대 교수는 “다중채무자를 그저 부채 문제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며 “코로나를 계기로 산업 재편이 더 빨라지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회생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자영업자에게는 채무 조정과 폐업 지원을 병행하고 재교육과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조언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