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지역 한 중소 제조업체 공장에서 직원이 부품 가공 작업을 하고 있다. 내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되면서 대다수 중소기업은 인력을 추가 고용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한경DB
경남지역 한 중소 제조업체 공장에서 직원이 부품 가공 작업을 하고 있다. 내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되면서 대다수 중소기업은 인력을 추가 고용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한경DB
전북 군산의 한 뿌리기업은 창사 4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다음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연장근로 수당이 없어질 것을 우려한 외국인 근로자 12명 가운데 8명이 빠져나가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어서다. 회사 측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들의 월급은 35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줄어든다. 이 업체 사장은 “몇 번의 고비도 넘겼지만 이제는 정말 사업을 접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내달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주 52시간제 도입 강행 의지를 밝히자 중소기업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 등 12개 중소기업단체는 16일 성명을 통해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뿌리기업, 해외 선주 주문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조선업계, 야외작업으로 기후 영향을 받는 건설업 등은 주 52시간제를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정부가 대기업엔 9개월, 300인 미만 기업엔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했는데, 50인 미만 중소기업에만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계도기간을 부여하지 않았다”며 “중소기업이 줄도산하고 기업인들이 범법자로 내몰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조업 위기로 확산되나

마지막 호소도 묵살…"中企 줄도산, 기업인은 범법자 내몰릴 것"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주 52시간제 적용 대상 기업은 51만5000여 곳으로 이 가운데 26%(13만6242곳)인 제조업체의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전망된다. 대부분 금형 주물 도금 단조 등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뿌리기업과 대형 조선사에 납품하는 중소 조선기자재업체, 섬유제조업체 등으로 공장을 가동해야 하는 업체들이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뿌리·조선산업 50인 미만 기업의 44%는 주 52시간제 도입 준비가 안 됐으며 27.5%는 7월 이후에도 준수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날 50인 미만 사업장의 90% 이상이 주 52시간제를 준수할 수 있는 상태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조사는 서비스업종을 많이 포함한 데다 주 52시간제 직격탄을 맞은 제조업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중소제조업은 대부분 국내 근로자들이 취업을 기피해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가 높은데, 코로나 사태로 외국인 입국마저 막혀 생산을 줄이거나 폐업까지 고민해야 하는 실정이다. 코로나로 인한 외국인 근로자 입국은 올해 4만700명이 계획돼 있었지만 입국 인원은 지난 5월 말 현재 1021명으로 2.5%에 불과했다.

중소 제조업체의 위기는 대기업과 한국 제조업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소 제조업체 가운데 41%가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고, 이들의 83%가 대기업 매출에 의존하고 있다. 이의현 한국금속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뿌리기업은 한번 무너지면 대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소 제조업의 위기는 과거 한진해운 사태보다 더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별연장, 탄력근로제도 실효성 없어

정부는 일단 5인 이상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노사 합의 시 내년 말까지 8시간 추가 근로를 허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중소기업계는 큰 실효성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한 뿌리기업 사장은 “8시간을 추가로 인정받는다고 하더라도 현 주 68시간 근무제보다 주 8시간이나 줄어드는 것”이라며 “어차피 24시간 공장을 가동하려면 인력을 더 뽑아 3교대로 바꿔야 하는 만큼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큰 실익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양옥석 중기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탄력근로제는 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한 기업만 활용할 수 있고 임금 변동이 없다는 점에서 근로자들도 도입을 꺼리는 제도”라며 “선택근로제 역시 정보기술(IT)기업과 서비스기업만 혜택을 볼 뿐 공장을 가진 일반 제조업체에 혜택이 없는 제도”라고 말했다.

중소기업계에선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를 피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편법을 동원하는 등 부작용만 증가할 것으로 우려한다. 경남지역 자동차부품업체인 A사는 5~6명의 근로자를 모두 1인 사업자로 전환시키기로 했다. 고용관계를 사업자 간 거래관계로 바꿔 주 52시간제 적용을 피하려는 것이다. A사 사장은 “주 52시간제 단속을 피하기 위해 이 지역 중소 제조업체들에 ‘소사장제’ 도입 등을 통한 ‘기업 쪼개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전했다.

안대규/민경진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