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사상 첫 진출…"여기까지가 최대 목표"
2002 월드컵 때 지도한 故유상철 "도와주지 못했다" 눈시울 붉혀
WC 최종예선 나가는 박항서 "어떻게 하면 망신 안 당할까요"
"기쁨도 잠시입니다. 고민이 다가오네요. 어떻게 하면 최종예선에서 망신 안 당할까요? 하하"

16일(한국시간) 베트남을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최종예선으로 이끈 박항서(64) 감독은 대업을 달성한 소감을 묻자 난처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16일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G조에서 2위를 확정해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2차 예선 경기가 치러진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비대면으로 한국 취재진과 영상 기자회견을 가진 박 감독은 최종예선에서의 목표와 베트남 축구의 발전상 등에 관해 솔직하게 답했다.

최종예선은 12개 팀이 2개 조로 나뉘어 경쟁하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한국과 베트남이 한 조로 엮일 수 있다.

박 감독은 "한국과는 부담스러우니 안 만나는 게 좋겠다"면서 "붙게 된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도전이다. 그 자체로 영광이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코치와 선수로 4강 신화를 합작했던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세상을 떠난 데 대해서는 "내가 잘못했거나, 도와주지 못했던 부분이 아쉽다"며 매우 안타까워했다.

눈시울을 붉히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다음은 박 감독과의 일문일답.
WC 최종예선 나가는 박항서 "어떻게 하면 망신 안 당할까요"
-- 최종예선 진출을 이뤄낸 소감은.
▲ 기쁨도 잠시다.

고민이 다가오고 있다.

최종예선에서 만날 팀들은 우리보다 한 수 위 팀들이다.

-- 최종예선 진출 확정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 UAE전 킥오프 45분 전에 호주가 요르단을 1-0으로 이겼다.

그때 이미 베트남의 최종예선 진출이 확정됐다.

그래서 UAE전은 안심하고 볼 수 있었다.

경기 초반에 대량 실점해 마음이 속상했지만, 후반에 우리 선수들이 추격해서 위안이 됐다.

지난 말레이시아전 끝난 뒤에는 선수들이 신나 있었는데 이번에는 라커룸에서 선수들 표정이 안 좋았다.

(최종예선에 진출했으나) 경기에서 져서 신나지 않았던 것 같다.

-- 최종예선 목표는.
▲ 우리 선수들한테도 이미 얘기 했다.

최종예선과 2차 예선의 수준은 굉장히 차이가 크다고 말이다.

내가 겪어 봐서 잘 안다.

고민이 많다.

어떻게 하면 망신 안 당할까? (웃음) 노력해 보겠다.

선수들에게도 아시아 정상의 팀들과 겨뤄보는 것은 값진 경험이 될 것이다.
WC 최종예선 나가는 박항서 "어떻게 하면 망신 안 당할까요"
-- 조 편성에 따라 한국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 한국하고는 안 만나는 게 좋겠죠. 부담스럽잖아요.

(웃음) 감독 레벨도 그렇고 대표팀 FIFA 랭킹에서 상대가 안 된다.

붙게 된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도전이다.

그 자체로 영광일 것이다.

-- 말레이시아전 뒤 기자회견에서 '베트남에서 해야 할 일은 거기까지인 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해 감독직에서 물러나는 게 아니냐는 오해가 있었다.

▲ 다들 의문을 많이 가졌던 것 같은데… (웃음)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이 내 최대 과제이자 목표였다.

이를 달성했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내 계약기간은 내년 1월까지다.

이를 준수해야 한다.

-- 베트남 축구가 얼마나 발전한 것 같나.

▲ 아직 열악하다.

우리 대표팀에는 아직 영양사도 없다.

대표팀을 운영하는 데 더 많은 전문가가 필요하다.

결국은 재정적 문제다.

하지만 베트남은 국민들이 축구를 매우 사랑하는 나라다.

그리고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축구 환경도 나아질 것이다.

한 나라의 축구 발전 속도는 그 나라 경제 발전 속도와 비례한다.

축구는 독학이다.

그러려면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정부와 협회에 각 대표팀과 프로팀에 구단의 상품 가치를 높여 줄 전문가들이 필요하다고 지속해서 건의하고 있다.

정부와 협회가 계속 관심을 보인다.

베트남의 또 하나 장점은, 전문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WC 최종예선 나가는 박항서 "어떻게 하면 망신 안 당할까요"
-- 2002 한일 월드컵 때 지도한 유상철 전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 그날 오후 훈련을 마치고 나니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느낌이 이상해 전화했더니 유상철 감독이 숨졌다더라.
작년에 한국 갔을 때 유 감독을 만났다.

건강히 호전되고 있다고 얘기해서 기뻤다.

유 감독은 내 고등학교 후배다.

내가 잘못했거나, 도와주지 못했던 부분이 아쉽다.

나 자신을 많이 뒤돌아보게 된다.

왜 이렇게 아웅다웅 살아야 하는 건지…. 인생을 좀 더 베풀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만하겠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