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호 칼럼] 정상간의 협상에 실패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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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1871년 독일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베르사유 궁전 거울방에서 독일제국을 선포했다. 이후 2차 세계대전까지 독일은 제국주의의 면모를 공고히 했다. 당시 독일 제국주의의에 의한 희생자가 유럽이나 유대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 제국은 1884년부터 1915년까지 아프리카 나미비아를 식민 통치했고 그 과정에서 오바헤레로족의 80%, 나마족 인구의 40%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독일은 피해자의 땅과 가축도 몰수했으며, 살아서 붙잡힌 사람들은 수용소에서 갇혀 강제 노예노동을 해야 했다. 이 사건은 20세기 첫 제노사이드(인종 학살)로 불린다.
홀로코스트보다 30여 년 전에 일어나 첫 제노사이드가 종결 국면을 맞고 있다. 독일 정부는 학살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2021년 5월 28일 “2015년부터 나미비아 정부와 진행해온 협상안이 합의됐다”고 발표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부 장관은 성명에서 “이 제노사이드에 역사적·도덕적 책임이 있으며, 나미비아와 피해자 후손들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협상의 목적에 대해선 “피해자들을 기리며 진정한 화해를 위한 공동의 길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향후 30년간 총 11억 유로(약 1조4877억 원)의 재건·개발자금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물론 이 협상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독일 정부는 성명에서 “이 개발지원금을 이유로 법적 책임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독일 정부는 성명에 “배상” “법적 책임”이라는 말도 쓰지 않아, 지원금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의미의 배상금은 아니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고 이번 협상이 나미비아가 독일의 협상 전술에 말려 들어간 실패한 협상으로 봐야할까? 꼭 그렇게만 보긴 어렵다. 나미비아가 받게 될 재건·개발자금 11억 유로는 2019년 기준 나미비아의 국내 총생산액 123.7억 달러의 10분의 1과 맞먹는 금액이다. 지하자원과 관광 의존도가 높은 나미비아가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희생자와 후손을 위해 30년간 인프라 개발 및 보건 투자에 쓰여진다면 또 다른 의미다.
정상간 협상은 진전이 있을 뿐 실패는 없다. 망국의 역사가 길수록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통해 복원되는 법이다. 미·소냉전이 네 차례 정상회담을 하기까지 40년이 걸렸고, 쿠바와 미국의 관계복원이 수십 년이 걸렸던 것처럼 독일·나미비아 양국가간 관계도 진전을 통해 평화가 온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는 것처럼 말이다.
독일·나미비아 협상은 한국과 일본이 진행했던 과거사 협상 모습과도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1965년 한국과 일본은 국교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마무리하고 한·일협정을 체결했다. 이로써 일제에 의한 한일강제병합과 이어진 식민통치,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 패망 후 교류가 중단되었던 한·일은 외교관계를 복원하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양국은 협상을 통해 무상 3억 달러와 차관 2억 달러로 배상금 규모가 정해졌다. 식민 지배의 기간이나 피해 정도를 고려하면 우리에게는 크게 부족했다. 물론 당시 일본은 독일과는 달리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나 잘못에 대한 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음을 명백히 했다. 과거에만 머물러 있으면 발전도 기회도 없다. 하지만 한국은 미래를 선택했고 특히 당시 한·일 수교 협정으로 받은 원조금 3억 달러와 장기 저리 차관 2억 달러는 한국이 일본과의 국력 차를 좁히며 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디딤돌이 됐다. 과거와 역사에 매몰되어 협상안을 찾는 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최근 주요 G7 정상회의 참석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대면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 측이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아울러 스가 총리는 문 대통령과 약식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이처럼 과거에 매몰된 협상태도는 서로의 입장에만 얽혀 실타래를 풀어낼 수가 없다. 미흡하고 잘못이라는 지적이 있더라도 경제발전과 두 나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난날의 앙금을 풀되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데 협상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오래 망가뜨린 역사는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통해 복원되는 법이다.
홀로코스트보다 30여 년 전에 일어나 첫 제노사이드가 종결 국면을 맞고 있다. 독일 정부는 학살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2021년 5월 28일 “2015년부터 나미비아 정부와 진행해온 협상안이 합의됐다”고 발표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부 장관은 성명에서 “이 제노사이드에 역사적·도덕적 책임이 있으며, 나미비아와 피해자 후손들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협상의 목적에 대해선 “피해자들을 기리며 진정한 화해를 위한 공동의 길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향후 30년간 총 11억 유로(약 1조4877억 원)의 재건·개발자금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물론 이 협상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독일 정부는 성명에서 “이 개발지원금을 이유로 법적 책임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독일 정부는 성명에 “배상” “법적 책임”이라는 말도 쓰지 않아, 지원금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의미의 배상금은 아니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고 이번 협상이 나미비아가 독일의 협상 전술에 말려 들어간 실패한 협상으로 봐야할까? 꼭 그렇게만 보긴 어렵다. 나미비아가 받게 될 재건·개발자금 11억 유로는 2019년 기준 나미비아의 국내 총생산액 123.7억 달러의 10분의 1과 맞먹는 금액이다. 지하자원과 관광 의존도가 높은 나미비아가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희생자와 후손을 위해 30년간 인프라 개발 및 보건 투자에 쓰여진다면 또 다른 의미다.
정상간 협상은 진전이 있을 뿐 실패는 없다. 망국의 역사가 길수록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통해 복원되는 법이다. 미·소냉전이 네 차례 정상회담을 하기까지 40년이 걸렸고, 쿠바와 미국의 관계복원이 수십 년이 걸렸던 것처럼 독일·나미비아 양국가간 관계도 진전을 통해 평화가 온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는 것처럼 말이다.
독일·나미비아 협상은 한국과 일본이 진행했던 과거사 협상 모습과도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1965년 한국과 일본은 국교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마무리하고 한·일협정을 체결했다. 이로써 일제에 의한 한일강제병합과 이어진 식민통치,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 패망 후 교류가 중단되었던 한·일은 외교관계를 복원하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양국은 협상을 통해 무상 3억 달러와 차관 2억 달러로 배상금 규모가 정해졌다. 식민 지배의 기간이나 피해 정도를 고려하면 우리에게는 크게 부족했다. 물론 당시 일본은 독일과는 달리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나 잘못에 대한 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음을 명백히 했다. 과거에만 머물러 있으면 발전도 기회도 없다. 하지만 한국은 미래를 선택했고 특히 당시 한·일 수교 협정으로 받은 원조금 3억 달러와 장기 저리 차관 2억 달러는 한국이 일본과의 국력 차를 좁히며 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디딤돌이 됐다. 과거와 역사에 매몰되어 협상안을 찾는 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최근 주요 G7 정상회의 참석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대면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 측이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아울러 스가 총리는 문 대통령과 약식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이처럼 과거에 매몰된 협상태도는 서로의 입장에만 얽혀 실타래를 풀어낼 수가 없다. 미흡하고 잘못이라는 지적이 있더라도 경제발전과 두 나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난날의 앙금을 풀되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데 협상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오래 망가뜨린 역사는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통해 복원되는 법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 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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