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신경훈 기자
‘여유롭게, 편안하게, 자유롭지만 멋스럽게.’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0년대 초반 출생)들이 즐겨 입는 ‘셋업 슈트’의 특징이다. 슈트 패션에도 ‘규칙 파괴’가 일어난 것이다. 일반적으로 클래식 슈트는 몸에 딱 맞게 맞춰 입는다. 주름 없는 바지 중앙엔 빳빳하게 선을 세운다. 셔츠와 타이도 필수다. 셋업 슈트는 이런 규칙들을 무력화했다. 마치 동생이 형 옷을 빌려 입은 듯 넉넉하다. 오버사이즈로 입으니 편하고 상하의가 세트로 구성돼 있어 옷장 앞에서 고민할 필요도 없다. 재킷 안에는 답답한 셔츠 대신 라운드 티가 자리 잡았다. 이렇게 차려입고서 직장, 학교, 커피숍, 집 근처 편의점까지 어디든 간다. 셋업 슈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정장’이다.

편안함의 매력

20~40대 젊은 층이 선호하는 셋업 슈트는 전통적인 정장 스타일링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규칙들에 얽매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입을 때 편안해야 한다’는 게 셋업 슈트 제1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럭셔리 남성복 브랜드들도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 정장을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100만~200만원대 정장을 판매하는 한섬의 남성복 브랜드 타임옴므 관계자는 “소비자가 타이트한 옷보다 여유로운 실루엣을 선호한다”며 “편안한 착용감을 선호하는 이들은 벨트 없이도 입을 수 있도록 밴딩 처리한 정장 바지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여성은 통이 큰 ‘와이드팬츠 슈트’, 짧은 반바지와 재킷을 조합한 ‘쇼트 슈트’를 즐겨 입는다.

소재도 편안하고 실용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한섬의 또 다른 남성복 브랜드인 시스템옴므 관계자는 “착용 시 주름이 생기지 않고 신축성도 좋은 소재나 통풍이 잘돼 시원한 리넨 소재를 원단으로 한 정장을 주로 찾는다”고 말했다. 신발도 상대적으로 불편한 구두 대신 스니커즈, 샌들 등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제품이 대부분이다. 임지연 삼성물산 패션연구소장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해 재택이 활성화되면서 편안한 복장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졌다”며 “세탁이나 다림질이 쉬운 소재, 단순한 디자인으로 회사부터 편의점까지 어디나 갈 수 있는 실용성을 갖춘 셋업 슈트가 인기를 얻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단순함의 미학

편안하다고 ‘아재스러운’ 건 아니다. 스타일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셋업 슈트의 경우 먼저 상하의 소재와 색상을 통일해 단순함을 극대화했다. 이른바 ‘미니멀리즘’을 적용한 패션이다. 색상은 베이지와 아이보리, 그레이 등이 주를 이룬다. 신발과 티셔츠 등 다른 아이템과 쉽게 어울리는 무난한 색상이다. 복잡하고 화려한 무늬는 과감하게 배제했다. 무색무취 깔끔한 생수 같은 패션이라 아이템들 간 불협화음이 날 가능성도 낮다.

여기에 개인별로 취향에 맞춰 개성을 강조한다. 넉넉한 크기의 정장을 입을 경우 상의가 엉덩이를 가린다. 기장이 길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자칫 다리가 짧아 보일 수 있다. 이 때문에 다리가 길어 보이는 효과를 얻기 위해 짧은 재킷을 입은 이들도 있다. ‘크롭 재킷’이다. 임 소장은 “크롭 스타일은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며 “크롭 기장 외에도 좀 더 간결하게 소매를 자르거나 라펠을 제거한 ‘노 칼라 재킷’ 등을 입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국산 남성복 브랜드인 솔리드옴므 관계자는 “가을 겨울에도 니트, 후드티 등과 같은 아이템과 조합하는 스타일이 유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석/배정철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