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회사들이 싱가포르로 달려가고 있다. 국민은행과 하나금융은 최근 ‘신(新)아시아 금융허브’로 떠오르는 싱가포르에서 각각 은행업과 자산운용업 예비인가를 받았다. 올 3분기 본인가를 획득하고 연내 영업에 본격 나설 예정이다. 전체 해외사업 순익의 절반을 벌어들이는 동남아시아 지역 영업 확대를 위해 싱가포르를 새로운 거점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동남아시아 영업 확대 포석”

포스트 코로나 시대…금융사, 싱가포르行 러시
17일 업계에 따르면 국민은행과 하나금융은 오는 3분기 각각 싱가포르에서 은행업과 자산운용업 본인가를 획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 관계자는 “현지 당국에 코로나19로 인한 일정 변경이 없다면 조만간 라이선스를 획득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은행이 지난달 3일 예비인가를 받은 라이선스는 소매금융을 제외한 기업금융, 투자금융, 자본시장 관련 업무는 물론 증권업까지 포함한 모든 업무를 취급할 수 있는 ‘홀세일 뱅킹 라이선스’다. 홍콩지점에 있는 심사유닛을 확대 개편한 아시아심사센터를 싱가포르에 설치해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 전역의 대출심사를 맡길 예정이다.

싱가포르 자산운용사는 하나금융의 첫 해외 자산운용사가 될 전망이다. 수익 기반을 다변화하고, 주변국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조만간 본인가를 받아 영업을 시작하면 현지 투자 상품을 발굴해 국내에 소개하고, 자체적인 투자 역량도 확보하기로 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아시아 지역 내 기존 그룹 채널과 협업을 강화하고, 주변국 진출의 교두보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 3분기 신설을 마무리하고 현지 자산운용사를 추가로 인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DGB금융도 싱가포르에 글로벌 본부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싱가포르에 동남아 전역의 기업금융 심사를 담당하는 아시아심사센터를 두고 있다.

은행들이 싱가포르에 주목하는 것은 동남아의 금융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민은행 고위 관계자는 “싱가포르는 인도와 중동,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일대 금융허브 역할을 할 것이 확실하다”며 “특히 인도와는 시차가 거의 나지 않아 동시간대에 영업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4대 시중은행 모두 인도와 인도네시아, 미얀마, 캄보디아 등에 현지법인을 세우고 은행업과 소액 대출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실적도 급성장하고 있다. 시중은행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의 절반 이상이 동남아에서 나왔을 정도다. 우리은행의 베트남 현지 법인은 전년 대비 당기순이익이 33% 늘었고, 캄보디아는 57% 증가했다. 올해도 성장 유망 지역에 있는 현지 법인의 자본금을 증자할 계획이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캄보디아·인도네시아·미얀마 지역에서 80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신한은행은 베트남·캄보디아·인도네시아 등에서 약 1400억원의 이익을 냈다.

“탈홍콩 움직임 반영도”

은행업계가 싱가포르에 거점을 두는 것은 지난해 홍콩 민주화 시위와 미국의 홍콩 경제 제재 이후 ‘탈(脫)홍콩’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 은행 관계자는 “홍콩의 수출입 물량과 비중이 줄어들고 중국 본토와 싱가포르 등으로 분산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국내 수출입 기업을 상대로 기업금융 비중이 큰 은행이 그런 수요를 따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본격화하기 전인 2019년에도 연간 30억~40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다른 은행 관계자는 “홍콩의 영업 채널이 아직 싱가포르의 세 배에 달할 정도로 중국과의 비즈니스에서 중국 본토보다 금융 거래가 자유로운 홍콩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있다”고 덧붙였다.

박진우/빈난새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