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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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검찰 간의 다툼은 지난 3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들의 '다툼 일지'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검찰은 지난 3월 가짜 사건번호 등을 이용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금지를 불법적으로 막았다는 의혹에 연루된 이규원 검사 사건을 공수처에 넘겼(이첩)습니다.

이 검사는 현직 검사였기 때문에 공수처법 25조 '공수처 외 다른 수사기관이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그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한다'는 규정에 따라 넘긴 것이었습니다.

2. 그러자 공수처는 '현실적으로 수사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당 사건을 다시 검찰에 넘겼습니다. 그러면서 "사건을 검찰로 넘기되(=이첩) 피의자 등을 재판에 넘길지 말지를 결정하는 기소는 공수처가 판단(=유보)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이것이 공수처와 검찰이 서로 줄다리기를 했던 '유보부 이첩'의 내용입니다.

3. 검찰은 "사건과 권한(기소권)을 어떻게 분리해서 이첩하느냐"며 반발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 이 검사를 직접 재판에 넘겼습니다.

공수처는 공수처가, 검찰은 검찰이 기소하는 게 맞다며 벌어진 이 다툼. '법원에서 누구 말이 맞다고 하는지 보자'며 일단락됐고 그 1심 결과가 지난 15일 나왔습니다. 결과는 공수처 판정패였습니다.

法 "검찰 공소제기 위법하다는 근거 없어"

공수처가 검찰에 사건을 넘겼더라도 기소 여부에 대한 판단은 공수처가 한다는 '유보부 이첩'은 사실 법조계서도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유보부 이첩과 관련된 내용을 취재하기 위해 검사 출신 변호사 등을 만나면 '그게 뭐냐'고 되묻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형사소송법·검찰청법 등엔 검사가 기소할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하는 규정이 없어 유보부 이첩이 현행법과 충돌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사법부의 첫 판단이 지난 15일 나왔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선일)는 자격모용 공문서작성 등의 혐의를 받는 이규원 검사의 재판을 진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금도 (사건이) 진행 중이지만 재판부에서 지금까지 검토해본 바로는 검찰의 공소제기가 위법하다는 명확한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법원 입장에서는 본안에 관한 심리를 이대로 진행할 생각이고요.

확정적인 견해는 아닙니다. 변경이 불가능하거나 확정적이라고 말씀드리는 건 아니지만, 잠정적으로는 검찰의 공소제기가 적법한 것을 전제로 진행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이규원 검사가 재판에 넘겨지기까지의 과정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니 일단 재판 계속 진행하겠다는 뜻입니다.

공수처엔 '악재'

물론 재판부는 '변경이 불가능하거나 확정적이지는 않다'라고 부연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진행 중인 재판은 아직 1심이기 때문에 2심과 3심에서 판단이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법부의 첫 판단이 '공수처 판정패'로 나왔다는 점에서 공수처 입장에선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건에서 공수처가 검찰에 또다시 유보부 이첩을 요구하더라도 검찰은 이 판단을 근거로 이를 거부할 명분이 생겼습니다.

당장 문홍성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에 대한 수사도 공수처가 검찰에게 다시 넘겨달라고 요청해놓은 상태인데 이번 법원 판단을 근거로 검찰이 공수처의 요청을 거부할 가능성도 큽니다.

법원 안에서도 '갸우뚱'

지난 17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연 김진욱 공수처장. 뉴스1
지난 17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연 김진욱 공수처장. 뉴스1
공수처는 여전히 '유보부 이첩' 조항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법원 판단이 나오고 이틀 뒤인 지난 17일 김진욱 공수처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저희(공수처)에게 접수된 사건이 1500건을 넘는데 40%가 넘는 사건이 검사 비위 사건"이라며 "여건상 전부 수사를 못해 이첩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필요성 있는 조항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법원 안에서도 유보부 이첩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이번 건은 공수처가 잘못 (해석)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많았다"며 "당장 형사법 체계에 맞지가 않는 개념인데 어떻게 인정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이어 "물론 3심까지 가봐야 최종 결론이 나오겠지만 그러려면 몇 년 걸릴 것"이라며 "그 전에 공수처가 기소권을 지키고 싶다면 사건을 검찰에 넘기지 말고 직접 수사하면 될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