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 신고를 앞둔 암호화폐거래소의 ‘명줄’을 쥔 은행이 4대 거래소를 대상으로 실명계좌를 내줘도 좋을지 판단하기 위한 검증에 들어갔다. 나머지 거래소는 심사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어 ‘무더기 폐쇄’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케이뱅크는 업비트, 농협은행은 빗썸과 코인원, 신한은행은 코빗을 상대로 자금세탁 위험 평가에 들어갔다. 지금은 법적 요건을 위주로 서면 심사하는 단계로, 향후 실사를 포함한 본평가를 거쳐야 재계약 여부가 결정된다. 이들 거래소는 은행과 오래전부터 제휴해왔지만 이번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면 구조조정을 피하기 어렵다.

새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거래소는 오는 9월 24일까지 사업자 신고 접수를 마쳐야 한다. 신고 요건의 핵심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과 은행의 실명계좌 확보다. 둘 다 성공한 곳은 4대 거래소뿐이고, ISMS 인증만 받은 업체는 16개다. 만약 ISMS 인증조차 받지 않았다면 사업을 계속할 뜻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은행 관계자는 “시장에선 4대 거래소는 살아남지 않겠냐는 추측도 있지만 특금법 기준에 맞추자면 보완할 부분이 너무 많아 재계약 여부를 단언하기 어렵다”고 했다. 금융당국도 ‘거래소 구조조정’을 내심 원하기 때문에 깐깐하게 검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암호화폐 투자자 중에는 거래소를 두세 곳 이상 쓰는 경우도 많다. 정부는 영세 거래소를 이용 중이라면 옮길 것을 에둘러 권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일부 사업자가 신고하지 않고 폐업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용 중인 거래소의 신고 상황, 사업 지속 여부 등을 확인하고 거래하라”고 했다. 영세 거래소에 맡겨둔 돈은 미리 출금하거나, 대형 거래소로 코인을 옮기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중소 거래소는 금융위에 “실명계좌 발급을 신청하려고 해도 은행이 잘 만나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사업자 신고가 좌절될 경우 ‘플랜B’도 준비했다. 한 거래소 대표는 “원화 마켓을 닫고 비트코인 마켓만 운영하면서 재등록 기회를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비트코인 마켓은 암호화폐를 원화가 아니라 비트코인으로 사고파는 기능을 말한다. 특금법에 따르면 코인과 원화를 교환하지 않으면 실명계좌가 없어도 된다.

최근 거래소가 상장 암호화폐 수를 줄여 나가는 것은 ‘잡코인’이 많으면 은행 평가에서 감점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보유 중인 암호화폐가 갑자기 유의종목으로 지정되거나 상장폐지가 예고된다면 투자자에겐 몇 가지 선택지가 있다.

통상 거래소는 유의종목 지정 후 일정 기간을 주고 상장폐지를 최종 확정하는데, 이 기간 가격이 크게 출렁인다. 원금 날릴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이때 손절하는 게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헐값에 처분하는 게 싫다면 그 코인이 상장돼 있는 다른 거래소로 옮겨 계속 보유하는 방법이 있다. 딱 한 개 거래소에 상장된 코인이 퇴출됐다면 손실을 만회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