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네 명의 성악가가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함께 주세페 베르디의 ‘레퀴엠’을 열창한다. 왼쪽부터 심인성(베이스), 소라(메조소프라노), 김은희(소프라노), 김정훈(테너).  김병언 기자
오는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네 명의 성악가가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함께 주세페 베르디의 ‘레퀴엠’을 열창한다. 왼쪽부터 심인성(베이스), 소라(메조소프라노), 김은희(소프라노), 김정훈(테너). 김병언 기자
망자를 기리고 산 자들을 위로하는 음악인 레퀴엠(장송곡)에는 작곡가의 개성이 담겨 있다. 모차르트는 성악가 네 명의 화음을 활용해 성스러움을 표현했다. 합창곡에 종교색이 짙다. 주세페 베르디는 달랐다. 성악가가 오케스트라와 대화하듯 노래한다. 성악곡이라기엔 오페라 아리아에 가깝다. 베르디는 성대한 오케스트라 선율로 죽음의 의미를 표현했고, 성악가의 독창으로 인간의 본모습을 드러내려 했다.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레퀴엠 연주를 통해 순국선열을 기린다. 오는 25일 서울 신천동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호국보훈음악회’를 통해서다. 내로라하는 성악가들이 연주를 위해 뭉쳤다. 주역인 베이스 심인성, 테너 김정훈, 소프라노 김은희, 메조소프라노 소라를 16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났다.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등 모두 유럽에서 음악활동을 펼쳐온 성악가들이다. 코로나19 탓에 공연이 전부 취소되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지난해 3월부터 지금까지 전 공연이 취소됐어요. 한국에 돌아와 1년 만에 처음으로 무대에 서네요”(김은희) “소중한 공연입니다. 성악가들이 해외에 있다 보니 국내에선 다같이 노래 부를 기회가 없었어요.”(김정훈)

레퀴엠은 작곡가의 의도처럼 연주 방식도 성대하다. 대편성 오케스트라에 합창단원 100여 명을 동원한다. 국내에선 좀처럼 연주되지 않았다. 무대 규모가 크고 노래 난도도 높기 때문이다. 성악가들도 고역이다.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빚어낸 소리 장벽을 뚫어야 해서다. “부르면 부를수록 어려운 작품입니다. 매번 레퀴엠을 부를 때마다 목이 붓고 아픈 징크스가 생겼어요. 제가 힘들더라도 위로하는 무대니, 책임을 느끼며 준비하고 있습니다.”(심인성)

레퀴엠만 20여 번을 부른 베테랑 성악가에게도 부담은 컸다. 김정훈은 주세페 베르디 국제 성악콩쿠르에서 동양인으로선 처음으로 우승했다. 그는 “성악가들이 주역을 탐내는 레퍼토리”라며 “극적인 전개를 소화하면서도 아리아를 부르듯 기교를 뽐내야 해 자신의 역량을 모두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성악가들은 연주의 난도가 높은 만큼 작품 수준이 탁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인간의 목소리로 들려줄 수 있는 최고의 레퍼토리라는 설명이다. 소라는 “오라토리오의 극치를 들려주는 작품”이라며 “마치 울부짖는 것처럼 들린다. 내용을 모르더라도 충분히 감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은희는 레퀴엠과 관련된 일화도 들려줬다. 스승인 보날도 자이오티(1932~2018)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그를 가르칠 때 “평생 한 번은 불러야 하는 작품”이라며 “공연이 없더라도 준비해놔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김은희는 “스승님이 강조한 만큼 늘 꿈꿔온 무대”라며 “데뷔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레퀴엠을 숱하게 연습해온 성악가들이 꼽은 최고의 구절은 뭘까. 대부분 마지막 곡에서 흐르는 “리베라 메(구원하소서)”를 백미로 꼽았다. 소프라노가 절절한 독창으로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다. 두 번째 곡인 ‘진노의 날’에 담긴 “살바 메, 폰스 피에타티스(자비를 베풀어 나를 구하소서)”도 명가사로 뽑았다. 김정훈은 “무대에서 실신할 때까지 울부짖는 노래들”이라며 “영혼이 폭발하는 장면을 기대해도 좋다”고 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