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대신 모럴의 시대 도래…착한 기업만 살아남을 겁니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가치투자 1세대로 유명한 이채원 의장이 숨은 ESG가치주 찾기에 나섰다. ESG 등급이 낮은 곳 중 개선 여지와 가능성 큰 기업에 투자해 동반성장 하는 전략이다
[한경ESG] 마켓 리더-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
가치투자의 대부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행동주의 투자가로 돌아왔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 이야기다. 1세대 가치투자자로 2006년부터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서 14년간 대표직을 맡아 왔던 그는 지난해 말 돌연 직을 사임하고 떠났다.
올해 그는 자산운용사를 직접 인수해 라이프자산운용의 이사회 의장으로 새로 나타났다. ESG 행동주의 펀드의 기치와 함께다. 서울 여의도 IFC서울 빌딩에서 그를 만나 ESG 투자 전략과 비전을 들어봤다.
-ESG 열풍을 어떻게 보십니까.
"ESG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봅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지배력의 패러다임 시프트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과거를 돌이켜보면 아주 예전에는 힘(power)이 지배하는 세상, 권력이나 군사력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는데 최근 100여 년 정도에는 자본(capital)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급격하게 모럴(morality)이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한 겁니다. 세상은 앞으로 도덕이 지배하는 거죠. 착하지 않고는 누구도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국가든, 산업이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나쁜 국가도 못 살아남는 시대입니다. 최근 사태들을 보면, (갑질로 문제가 됐던) 남양유업 사태도 그랬고,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도 인성 논란이나 미투, 학폭이 제기됐죠. 최소한 착한 척 하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온다는 겁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는 기업들이 최소한 과거처럼 주주를 무시하거나, 주주 환원에 소홀하기엔 사회적 분위기가 쉽지 않죠. 어쨌든 제스처라도 해야 하는 게, 굉장히 고무적인 거라고 봅니다. 이런 환경이 가치투자를 하기에 좋은 환경입니다."
- 가치투자와 ESG는 어떻게 연결되나요.
"가치투자는 쌀 때 사서 기다리는 전략입니다. ESG 관점에서 보면, 어떤 기업이 현재는 ESG 평가나 평판이 안 좋지만 충분히 개선할 의지가 있고 여지가 있다면 이러한 기업을 고르면 됩니다. 착하고 저평가돼 있는 기업을 골라서 투자를 하면 속도를 당길 수가 있습니다. 곧 ESG 행동주의 펀드를 내놓을 텐데, 기본적으로 기업이랑 싸우는 건 안 할 겁니다. 상생과 화합의 키워드로 갈 겁니다. 다만 의지가 없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을 겁니다. 곧 도태돼버릴 거니까요. 아예 관심을 안 둘 겁니다.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는 기업에만 투자합니다. 스스로는 관심도 있고 ESG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시장의 오해나 편견 때문에 시장이 전혀 평가를 안 해주는 기업에는 저희가 자문하고 컨설팅해줄 수도 있습니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엑손모빌 이사회에 참여해 이슈가 됐습니다. 블랙록도 ESG에 주목하는 등 자산운용사가 앞장서는 추세인데요.
"최근에는 자산운용사들이 ESG 수치가 낮은 기업을 투자 리스트에서 제거하는 네거티브 스크리닝(배제) 전략으로 많이 갔죠. 등급이 좋은 기업은 제값을 받고 있는데, 조금 안 좋아질 기업은 리스트에서 빠져버리니까요. 전 세계 자금이 대부분 패시브로 움직이거든요. 자동으로 기계가 매매하니까 '화석연료 안 돼', '카지노 안 돼', '담배 안 돼' 이런 식으로 빠져버리죠. 그래서 우리가 피부로 체감하는 시기가 온 거예요. 왠지 모르게 주가가 안 오르는 기업들은 변화를 체감하는 정도까지 온 거죠. 물론 우리가 넘어야 할 과제도 엄청나게 많은 거고요."
- 국내에서 ESG와 관련해 가장 큰 과제는 무엇입니까.
"일단 표준이 명확하지 않고요. 그래서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나서서 K-ESG 기준을 마련하려고 하는 거죠. 모든 업계와 이해관계자가 다 참여해서 빨리 적절한 표준을 마련해야 할 거 같아요. 시간은 걸릴 겁니다. 국가가 정하는 게 맞는 건 아니거든요. 외국 사례를 보면 자연스럽게 정해지죠. 수험제도 같은 걸 봐도 수백 개 있었을 텐데 결국, SAT나 토플이 살아남았잖아요. 지수도 수많은 지수가 있었겠죠. 그중에 살아남은 지수가 우리가 아는 다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나스닥이죠, 이는 살아남은 거지 나라가 만들어준 건 아니잖아요. ESG 표준도 서스틴베스트나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같은 데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 쪽의 자문을 받아서 했을 때 수익이 나야 하거든요. 그런데 등급 좋은 기업은 자문을 받아서 했더니 주가는 안 오르고 오히려 등급이 나쁜 기업들이 좋아지면서 주가가 올랐더라, 이런 결과가 생기는 거죠. 최소한 2~3년은 지나야 ‘아, 어디 등급이 신뢰할 만하구나’ 이런 표준이 생겨나지 않을까 합니다. 메이저들이 나오고, 대형 기업들이 나오면서 훨씬 더 완성도가 높아지겠죠."
-ESG 평가 결과가 평가사별로 제각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외국에서 국내 기업, 특히 삼성전자 같은 대형 기업들을 평가하는 데 점수가 천차만별이죠. 어디는 100점을 주는데 어디는 50점을 주는 식이에요. 외국 같은 경우는 국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부분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예요. 기부 같은 걸 점수로 안 잡아주는 데도 있을 거예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글로벌 스탠더드만 따를 순 없어요. 국내 사정이라는 게 있거든요. 국내 사정에 맞으면서도 어느 정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수용하는 등급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본격적인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ESG는 기업들에 가장 먼저 비용 부담으로 다가오는데요.
"너도 나도 ESG를 외치니 역효과도 나옵니다. 너무 ESG로 가면 실익이 없다고 생각하고 ESG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ESG를 하면 비용만 늘어나고, 이익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해요. 예를 들면 화석연료는 안 되니 석탄 쓰지 말고 친환경 원료를 쓰라고 하면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나잖아요. 그 비용 증가는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고스란히 소비자한테 전가되면 물가가 엄청나게 오르는 거죠. 국가와 산업, 기업, 투자자, 사회, 모든 이해관계자, 심지어는 비이해관계자를 포함해 합의를 도출해야 돼요. 갑자기 바뀔 수 없으니 국가의 지원도 필요하고요. 탄소중립도 2050년까지 서서히 시간을 두고 해야죠. 스케줄에 맞춰서 어쨌든 소프트 랜딩을 할 수있도록 기업에 충분히 준비할 시간도 줘야 해요. 전기자동차나 발전 산업 등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합니다. ESG를 잘하는데 돈을 못 버는 곳과 ESG는 취약한데 돈을 잘 버는 곳 중 어느 쪽이 매력적인 기업일까요. 투자자 입장에서는 고민되는 문제죠."
-ESG 투자에서 주의할 점은 뭘까요.
"아직 표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특정 기준만 보고 투자하면 손실을 볼 수 있어요. ESG 투자라고 하면 주식시장만 보기 쉬운데 임팩트투자처럼 아프리카에서 우물을 파는 등 프로젝트성 상품들도 많아요. 회사채가 될 수도 있고요. 그런 투자는 불확실성이 높을 수도 있죠. 요즘 임팩트투자에서 수익이 많이 났다고 하는데, 이것도 흐름이에요. 또 ESG 그린본드 광풍이 불면서 수요가 못 따라갈 정도로 너도나도 찍어내고 있어 허실을 잘 파악해야 해요. 나중에는 우량 그린본드만 살아남겠죠. 조금 기다려 그때 가서 투자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마구잡이식 투자는 금물이에요. ESG 투자는 아직 트랙레코드가 안 나온 게 약점이거든요."
- ESG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하셨는데요.
"우리는 해외의 공격적인 펀드들과 달리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행동주의 펀드를 지향합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ESG가 좋은 기업은 수익이 애매한데, ESG 등급이 낮은 기업은 수익률이 안 좋습니다. 투자 리스트에서 빠지거든요. 주식을 안 사서 수급이 깨지니 주가가 낮은 상태로 방치돼 있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가 숨겨진 ESG 가치주를 찾는 접근법이죠. 기업 탐방을 다녀보면 ESG를 개선할 의지나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 의외로 많아요. 그런 기업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컨설팅이나 자문을 해줘 ESG 가치를 높이고 동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 갈 겁니다. 회사명인 라이프(LIFE)는 ‘Longterm-Investment For Everyone’의 약자예요. 모두를 위한 장기 투자죠."
- 구체적인 투자 전략은 무엇인가요.
"톱다운과 보텀업 방식을 모두 활용합니다. 등급 위주로 해서 평판이 낮은 기업을 리서치해 탐방도 가고, 회사 의사도 타진해 의지가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거죠. 반대로 보텀업 접근도 할 겁니다. 매일 터지는 이슈가 있고 30년 주식을 해 온 경험도 있죠. 새로 규제가 생기거나 ESG 브랜드 이슈가 생기면 연관된 기업을 보는 거예요."
- ESG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가지셨나요.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하는 산업을 좋아해요. 프리미엄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약주를 엄청 좋아했거든요. 병을 고쳐주니까요. 환경 문제, 에너지 문제, 식량 문제와 같이 인간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들과 관련된 종목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가치투자는 저평가된 주식에 투자해서 제값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지루한 전략이에요. 거기에서 필요한 게 ‘G’, 즉 거버넌스죠. 지배주주의 주주 환원 의지가 중요해요.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급격한 확산 때문에 ‘사회(S)’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요. 도덕적인 문제들이 있거든요."
-글로벌과 비교해 한국의 ESG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선진국에 비해서는 많이 늦었어요. 유럽의 공모펀드 투자 기준(UCITS)을 따르는 시카브(SICAV) 펀드가 있어요. 3년 전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서 시카브 펀드를 하나 운영했어요. 투자은행(IB)에서 연락이 와서 살상무기를 생산하는 방산업체를 전량 매도하라고 지시가 왔어요. 이건 ‘S’에 가깝겠죠. ESG가 모든 걸 커버하진 못할 거예요. 크게 봐서는 모럴이 핵심이에요. 도덕적 측면이나 ESG 면에서 아직은 선진국과 격차가 크지만 우리도 이제 시작을 했고, 시작했기 때문에 빠르게 쫓아갈 겁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
가치투자의 대부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행동주의 투자가로 돌아왔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 이야기다. 1세대 가치투자자로 2006년부터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서 14년간 대표직을 맡아 왔던 그는 지난해 말 돌연 직을 사임하고 떠났다.
올해 그는 자산운용사를 직접 인수해 라이프자산운용의 이사회 의장으로 새로 나타났다. ESG 행동주의 펀드의 기치와 함께다. 서울 여의도 IFC서울 빌딩에서 그를 만나 ESG 투자 전략과 비전을 들어봤다.
-ESG 열풍을 어떻게 보십니까.
"ESG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봅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지배력의 패러다임 시프트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과거를 돌이켜보면 아주 예전에는 힘(power)이 지배하는 세상, 권력이나 군사력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는데 최근 100여 년 정도에는 자본(capital)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급격하게 모럴(morality)이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한 겁니다. 세상은 앞으로 도덕이 지배하는 거죠. 착하지 않고는 누구도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국가든, 산업이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나쁜 국가도 못 살아남는 시대입니다. 최근 사태들을 보면, (갑질로 문제가 됐던) 남양유업 사태도 그랬고,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도 인성 논란이나 미투, 학폭이 제기됐죠. 최소한 착한 척 하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온다는 겁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는 기업들이 최소한 과거처럼 주주를 무시하거나, 주주 환원에 소홀하기엔 사회적 분위기가 쉽지 않죠. 어쨌든 제스처라도 해야 하는 게, 굉장히 고무적인 거라고 봅니다. 이런 환경이 가치투자를 하기에 좋은 환경입니다."
- 가치투자와 ESG는 어떻게 연결되나요.
"가치투자는 쌀 때 사서 기다리는 전략입니다. ESG 관점에서 보면, 어떤 기업이 현재는 ESG 평가나 평판이 안 좋지만 충분히 개선할 의지가 있고 여지가 있다면 이러한 기업을 고르면 됩니다. 착하고 저평가돼 있는 기업을 골라서 투자를 하면 속도를 당길 수가 있습니다. 곧 ESG 행동주의 펀드를 내놓을 텐데, 기본적으로 기업이랑 싸우는 건 안 할 겁니다. 상생과 화합의 키워드로 갈 겁니다. 다만 의지가 없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을 겁니다. 곧 도태돼버릴 거니까요. 아예 관심을 안 둘 겁니다.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는 기업에만 투자합니다. 스스로는 관심도 있고 ESG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시장의 오해나 편견 때문에 시장이 전혀 평가를 안 해주는 기업에는 저희가 자문하고 컨설팅해줄 수도 있습니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엑손모빌 이사회에 참여해 이슈가 됐습니다. 블랙록도 ESG에 주목하는 등 자산운용사가 앞장서는 추세인데요.
"최근에는 자산운용사들이 ESG 수치가 낮은 기업을 투자 리스트에서 제거하는 네거티브 스크리닝(배제) 전략으로 많이 갔죠. 등급이 좋은 기업은 제값을 받고 있는데, 조금 안 좋아질 기업은 리스트에서 빠져버리니까요. 전 세계 자금이 대부분 패시브로 움직이거든요. 자동으로 기계가 매매하니까 '화석연료 안 돼', '카지노 안 돼', '담배 안 돼' 이런 식으로 빠져버리죠. 그래서 우리가 피부로 체감하는 시기가 온 거예요. 왠지 모르게 주가가 안 오르는 기업들은 변화를 체감하는 정도까지 온 거죠. 물론 우리가 넘어야 할 과제도 엄청나게 많은 거고요."
- 국내에서 ESG와 관련해 가장 큰 과제는 무엇입니까.
"일단 표준이 명확하지 않고요. 그래서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나서서 K-ESG 기준을 마련하려고 하는 거죠. 모든 업계와 이해관계자가 다 참여해서 빨리 적절한 표준을 마련해야 할 거 같아요. 시간은 걸릴 겁니다. 국가가 정하는 게 맞는 건 아니거든요. 외국 사례를 보면 자연스럽게 정해지죠. 수험제도 같은 걸 봐도 수백 개 있었을 텐데 결국, SAT나 토플이 살아남았잖아요. 지수도 수많은 지수가 있었겠죠. 그중에 살아남은 지수가 우리가 아는 다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나스닥이죠, 이는 살아남은 거지 나라가 만들어준 건 아니잖아요. ESG 표준도 서스틴베스트나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같은 데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 쪽의 자문을 받아서 했을 때 수익이 나야 하거든요. 그런데 등급 좋은 기업은 자문을 받아서 했더니 주가는 안 오르고 오히려 등급이 나쁜 기업들이 좋아지면서 주가가 올랐더라, 이런 결과가 생기는 거죠. 최소한 2~3년은 지나야 ‘아, 어디 등급이 신뢰할 만하구나’ 이런 표준이 생겨나지 않을까 합니다. 메이저들이 나오고, 대형 기업들이 나오면서 훨씬 더 완성도가 높아지겠죠."
-ESG 평가 결과가 평가사별로 제각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외국에서 국내 기업, 특히 삼성전자 같은 대형 기업들을 평가하는 데 점수가 천차만별이죠. 어디는 100점을 주는데 어디는 50점을 주는 식이에요. 외국 같은 경우는 국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부분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예요. 기부 같은 걸 점수로 안 잡아주는 데도 있을 거예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글로벌 스탠더드만 따를 순 없어요. 국내 사정이라는 게 있거든요. 국내 사정에 맞으면서도 어느 정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수용하는 등급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본격적인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ESG는 기업들에 가장 먼저 비용 부담으로 다가오는데요.
"너도 나도 ESG를 외치니 역효과도 나옵니다. 너무 ESG로 가면 실익이 없다고 생각하고 ESG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ESG를 하면 비용만 늘어나고, 이익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해요. 예를 들면 화석연료는 안 되니 석탄 쓰지 말고 친환경 원료를 쓰라고 하면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나잖아요. 그 비용 증가는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고스란히 소비자한테 전가되면 물가가 엄청나게 오르는 거죠. 국가와 산업, 기업, 투자자, 사회, 모든 이해관계자, 심지어는 비이해관계자를 포함해 합의를 도출해야 돼요. 갑자기 바뀔 수 없으니 국가의 지원도 필요하고요. 탄소중립도 2050년까지 서서히 시간을 두고 해야죠. 스케줄에 맞춰서 어쨌든 소프트 랜딩을 할 수있도록 기업에 충분히 준비할 시간도 줘야 해요. 전기자동차나 발전 산업 등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합니다. ESG를 잘하는데 돈을 못 버는 곳과 ESG는 취약한데 돈을 잘 버는 곳 중 어느 쪽이 매력적인 기업일까요. 투자자 입장에서는 고민되는 문제죠."
-ESG 투자에서 주의할 점은 뭘까요.
"아직 표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특정 기준만 보고 투자하면 손실을 볼 수 있어요. ESG 투자라고 하면 주식시장만 보기 쉬운데 임팩트투자처럼 아프리카에서 우물을 파는 등 프로젝트성 상품들도 많아요. 회사채가 될 수도 있고요. 그런 투자는 불확실성이 높을 수도 있죠. 요즘 임팩트투자에서 수익이 많이 났다고 하는데, 이것도 흐름이에요. 또 ESG 그린본드 광풍이 불면서 수요가 못 따라갈 정도로 너도나도 찍어내고 있어 허실을 잘 파악해야 해요. 나중에는 우량 그린본드만 살아남겠죠. 조금 기다려 그때 가서 투자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마구잡이식 투자는 금물이에요. ESG 투자는 아직 트랙레코드가 안 나온 게 약점이거든요."
- ESG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하셨는데요.
"우리는 해외의 공격적인 펀드들과 달리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행동주의 펀드를 지향합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ESG가 좋은 기업은 수익이 애매한데, ESG 등급이 낮은 기업은 수익률이 안 좋습니다. 투자 리스트에서 빠지거든요. 주식을 안 사서 수급이 깨지니 주가가 낮은 상태로 방치돼 있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가 숨겨진 ESG 가치주를 찾는 접근법이죠. 기업 탐방을 다녀보면 ESG를 개선할 의지나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 의외로 많아요. 그런 기업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컨설팅이나 자문을 해줘 ESG 가치를 높이고 동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 갈 겁니다. 회사명인 라이프(LIFE)는 ‘Longterm-Investment For Everyone’의 약자예요. 모두를 위한 장기 투자죠."
- 구체적인 투자 전략은 무엇인가요.
"톱다운과 보텀업 방식을 모두 활용합니다. 등급 위주로 해서 평판이 낮은 기업을 리서치해 탐방도 가고, 회사 의사도 타진해 의지가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거죠. 반대로 보텀업 접근도 할 겁니다. 매일 터지는 이슈가 있고 30년 주식을 해 온 경험도 있죠. 새로 규제가 생기거나 ESG 브랜드 이슈가 생기면 연관된 기업을 보는 거예요."
- ESG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가지셨나요.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하는 산업을 좋아해요. 프리미엄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약주를 엄청 좋아했거든요. 병을 고쳐주니까요. 환경 문제, 에너지 문제, 식량 문제와 같이 인간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들과 관련된 종목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가치투자는 저평가된 주식에 투자해서 제값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지루한 전략이에요. 거기에서 필요한 게 ‘G’, 즉 거버넌스죠. 지배주주의 주주 환원 의지가 중요해요.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급격한 확산 때문에 ‘사회(S)’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요. 도덕적인 문제들이 있거든요."
-글로벌과 비교해 한국의 ESG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선진국에 비해서는 많이 늦었어요. 유럽의 공모펀드 투자 기준(UCITS)을 따르는 시카브(SICAV) 펀드가 있어요. 3년 전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서 시카브 펀드를 하나 운영했어요. 투자은행(IB)에서 연락이 와서 살상무기를 생산하는 방산업체를 전량 매도하라고 지시가 왔어요. 이건 ‘S’에 가깝겠죠. ESG가 모든 걸 커버하진 못할 거예요. 크게 봐서는 모럴이 핵심이에요. 도덕적 측면이나 ESG 면에서 아직은 선진국과 격차가 크지만 우리도 이제 시작을 했고, 시작했기 때문에 빠르게 쫓아갈 겁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