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하고, 사라지고, 유입되고 하면서 발전한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 수효도 셀 수 없이 많아져서 70년, 80년 오래 살아도 그 뜻을 다 알지 못한다. 다 알기는커녕, 특히 유입되는 언어들이 분별없이 우리 생활 속에 파고들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니 불안하다. 그래서 언어의 장벽은 더욱 높아지고, 두터워지면서 소외감이나 우울증 증세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나라 말씀은 혼혈의 늪에 빠져 있다고 진단하며 걱정하는 소리도 커지고 있다. 외국어나 외래어 사용에 신중함을 바치는 사명감을 한 번쯤 돌이켜보는 오늘이기를 기대해 본다.

외국어는 문자 그대로 다른 나라 말이다. 땡큐, 굿바이, 해피뉴이어, 오케이, 댄스 등과 같은 말이다. 또는 일간신문 지면 안내 머리글자로 보는 Culture, Life, Health, People&Story, Stock&Finance 같은 말들이다. 특히 신중해야 할 부분이다.

외래어는 외국에서 들어와 자국어에 동화돼 자국어처럼 사용되는 언어다. 고유어와 함께 자국어 어휘체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차용어(借用語)라고도 한다. 차용의 동기는 필요적 동기가 된다.

라디오, 버스, 택시, 텔레비전, 트럭, 리본, 바나나 등 영어 쪽에 성시를 이룬다. 그러나 재스민(페르시아어), 침팬지(아프리카어), 토마토(멕시코어), 가스 글라스 커피 콤파스(네덜란드어), 아미타 석가보살 달마(인도어와 불교어), 피아노 알토 솔로 소프라노 테너(이탈리아어), 테마 세미나 노이로제 피켈 코펠(독일어) 등 다른 외래어 자료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알면서 쓰고, 모르면서 따라 하는 일본말의 잔재가 얼마나 많은가. 가께우동(가락국수), 마호병(보온병), 모찌(찹쌀떡), 시보리(물수건), 아나고(붕장어), 야끼만두(군만두), 오뎅(생선묵), 요지(이쑤시개) 등 여전히 강점기의 부끄러운 과거를 반추하고 있다.

극히 일부의 사례를 제시했지만, 외국어와 외래어의 영역은 광범위하다. 외래어 문제는 필요적 동기에 의한 것이어서 곱게 수용할 수밖에 없다. 외국어의 남발이 문제가 되고, 그래서 혼혈의 위험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보통신기술 용어, 학문 분야의 전문용어, 각종 스포츠 용어, 수입식품, 의류, 수입물품 이름들은 대부분 외래어일 가능성이 크다. 신문, 방송, 잡지 등의 매체에서 쓰는 국어 밖의 말들은 외국어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방방곡곡 거리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각종 간판이나 표지판, 상표 등은 고유명이나 외국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자신 있게 이 분야의 전문가임을 자처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참 힘들다. 외국어와 외래어의 실상을 더 가깝게 파악하면서, 한편 국립국어원의 신세를 지면서, 우리의 언어가 뜻을 낳는 언어, 울림을 주는 언어, 바람같이 광야를 달리는 싱싱한 언어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