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조작 오명'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전 과정서 '인권' 강조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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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탈북민)에 대한 조사 과정은 투명해졌고, 인권 보호관을 통한 감독과 상담 등 인권 보호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23일 경기 시흥시 국가정보원 산하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7년만에 이 곳을 언론에 공개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인권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보호센터는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 땅을 밟은 직후 하나원에 입소하기 전까지 3~4주(최대 90일) 간 머물며 위장간첩 여부와 탈북민을 가장했는지 여부 등을 조사받는 곳이다.
2008년 개소 이래 11명의 위장간첩, 정착지원금 등을 노리고 탈북민을 사칭한 180여명의 ‘조교(중국 거주 북한국적자)’·재북 화교·한족 등 비(非)탈북민이 적발됐다. 간첩 여부를 조사하는 곳인만큼 청와대와 같은 국가 보안등급 '가급’ 시설이다.
국정원은 조사 중심에서 보호 중심으로 운영 개념을 전환하겠다며 2014년 이 곳의 명칭을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현재의 명칭으로 바꿨다. 이름만 변경한 것은 아니다. 생활과 조사를 한 곳에서 실시하며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인권 침해 논란이 있던 ‘생활조사실’은 전부 CCTV 없는 생활실로 개조했다. 조사는 별도의 공간에서 이뤄진다.
독방 감금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별도 요청이 없는 한 방은 2~6인실로 배정한다. 생활실은 널찍한 크기로, 화장실과 TV, 옷장 등을 갖추고 있어 일반 원룸이나 기숙사 방과 큰 차이가 없었다. 고위직 탈북민이나 탈북민 사칭자 등 비보호대상으로 의심되는 경우 특별실이 배정된다. 특별실은 일반 생활실에 비해 방이 넓고 침대 등이 구비돼있는데 전 북한 고위직이나 비보호대상자들이 센터에 더 오래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조사 방법도 대폭 개편됐다. 이달부터는 인권 침해 시비 및 조사 결과에 대한 다툼 방지 차원에서 탈북민이 동의할 경우 녹음·녹화조사실에서 조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밀실조사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는 목표로 조사실들의 출입문도 밀폐형에서 개방형 유리문으로 교체했다. 조사 전후로 각 1회씩 인권보호관과의 면담도 진행된다. 대한변호사협회 등으로부터 추천받은 현직 변호사인 인권보호관은 탈북민들과의 면담을 통해 조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 침해 여부를 점검한다.
이같은 운영 방식 변경은 2013년 이른바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국정원과 검찰이 탈북민을 사칭해 입국한 재북 화교 유우성씨가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탈북민들의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고 그를 간첩 협의로 기소했는데,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하고 오히려 국정원 직원의 증거 조작을 유죄로 판결한 사건이다.
국정원은 센터의 억압적인 조사 환경이 ‘간첩 조작’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평가하고 ‘대수술’에 들어갔다. 현직 변호사를 인권보호관으로 위촉해 탈북민 대상 조사 전후 상담을 의무화하고 원할 때도 언제든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박 원장은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며 “2014년부터 올해까지 보호센터에서 조사받은 7600여명 중 인권 침해가 확인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 이 자리에는 국정원의 감찰·감사 관련 관계자들도 함께 하고 있다”며 “이탈 주민 업무 전반에서 더 이상의 인권 침해는 있을 수 없고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재발할 경우 엄하게 처리하겠다는 국정원의 관심과 각오를 표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인권 중심의 탈북민 보호 체계가 한 단계 진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정부가 국내 입국 탈북민만큼 북한 거주 주민들의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3년 연속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불참하고 있다. 이 밖에도 지난 2019년 목선을 타고 동해상으로 월남한 탈북자 두 명을 범죄자라는 이유로 안대를 씌워 판문점으로 강제 북송하는 등 국제사회로부터 북한 인권에 침묵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정부가 탈북민 인권 못지 않게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도 목소리를 내야 목숨을 걸고 내려오는 이들이 '탈북'에 안심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는 “북한은 주민들에게 예전 군사정권 시절에 안기부에서 강압적으로 탈북자들을 조사했다는 것만 상기시키며 주민들에 대해 탈북에 대한 겁을 심어주고 있다”며 “이러한 시설이 민주적이고 인권을 존중한다는 걸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확실한 남북 대화를 이유로 참여하던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돌연 불참하고 해서 인권을 북한과의 흥정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시흥=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23일 경기 시흥시 국가정보원 산하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7년만에 이 곳을 언론에 공개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인권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보호센터는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 땅을 밟은 직후 하나원에 입소하기 전까지 3~4주(최대 90일) 간 머물며 위장간첩 여부와 탈북민을 가장했는지 여부 등을 조사받는 곳이다.
2008년 개소 이래 11명의 위장간첩, 정착지원금 등을 노리고 탈북민을 사칭한 180여명의 ‘조교(중국 거주 북한국적자)’·재북 화교·한족 등 비(非)탈북민이 적발됐다. 간첩 여부를 조사하는 곳인만큼 청와대와 같은 국가 보안등급 '가급’ 시설이다.
국정원은 조사 중심에서 보호 중심으로 운영 개념을 전환하겠다며 2014년 이 곳의 명칭을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현재의 명칭으로 바꿨다. 이름만 변경한 것은 아니다. 생활과 조사를 한 곳에서 실시하며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인권 침해 논란이 있던 ‘생활조사실’은 전부 CCTV 없는 생활실로 개조했다. 조사는 별도의 공간에서 이뤄진다.
독방 감금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별도 요청이 없는 한 방은 2~6인실로 배정한다. 생활실은 널찍한 크기로, 화장실과 TV, 옷장 등을 갖추고 있어 일반 원룸이나 기숙사 방과 큰 차이가 없었다. 고위직 탈북민이나 탈북민 사칭자 등 비보호대상으로 의심되는 경우 특별실이 배정된다. 특별실은 일반 생활실에 비해 방이 넓고 침대 등이 구비돼있는데 전 북한 고위직이나 비보호대상자들이 센터에 더 오래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조사 방법도 대폭 개편됐다. 이달부터는 인권 침해 시비 및 조사 결과에 대한 다툼 방지 차원에서 탈북민이 동의할 경우 녹음·녹화조사실에서 조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밀실조사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는 목표로 조사실들의 출입문도 밀폐형에서 개방형 유리문으로 교체했다. 조사 전후로 각 1회씩 인권보호관과의 면담도 진행된다. 대한변호사협회 등으로부터 추천받은 현직 변호사인 인권보호관은 탈북민들과의 면담을 통해 조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 침해 여부를 점검한다.
이같은 운영 방식 변경은 2013년 이른바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국정원과 검찰이 탈북민을 사칭해 입국한 재북 화교 유우성씨가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탈북민들의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고 그를 간첩 협의로 기소했는데,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하고 오히려 국정원 직원의 증거 조작을 유죄로 판결한 사건이다.
국정원은 센터의 억압적인 조사 환경이 ‘간첩 조작’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평가하고 ‘대수술’에 들어갔다. 현직 변호사를 인권보호관으로 위촉해 탈북민 대상 조사 전후 상담을 의무화하고 원할 때도 언제든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박 원장은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며 “2014년부터 올해까지 보호센터에서 조사받은 7600여명 중 인권 침해가 확인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 이 자리에는 국정원의 감찰·감사 관련 관계자들도 함께 하고 있다”며 “이탈 주민 업무 전반에서 더 이상의 인권 침해는 있을 수 없고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재발할 경우 엄하게 처리하겠다는 국정원의 관심과 각오를 표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인권 중심의 탈북민 보호 체계가 한 단계 진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정부가 국내 입국 탈북민만큼 북한 거주 주민들의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3년 연속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불참하고 있다. 이 밖에도 지난 2019년 목선을 타고 동해상으로 월남한 탈북자 두 명을 범죄자라는 이유로 안대를 씌워 판문점으로 강제 북송하는 등 국제사회로부터 북한 인권에 침묵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정부가 탈북민 인권 못지 않게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도 목소리를 내야 목숨을 걸고 내려오는 이들이 '탈북'에 안심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는 “북한은 주민들에게 예전 군사정권 시절에 안기부에서 강압적으로 탈북자들을 조사했다는 것만 상기시키며 주민들에 대해 탈북에 대한 겁을 심어주고 있다”며 “이러한 시설이 민주적이고 인권을 존중한다는 걸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확실한 남북 대화를 이유로 참여하던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돌연 불참하고 해서 인권을 북한과의 흥정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시흥=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