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주 노스알링턴에 살면서 뉴욕으로 출퇴근하는 안토니오 알루토(36)는 지난달 대출을 끼고 집을 구입하려다 포기했다. 매물이 나올 때마다 10여 명이 경쟁하면서 가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그는 “집값이 미쳤다”고 했다.

미국에서 주택 중위 가격이 1년 전보다 24%나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통화당국의 ‘돈 풀기’ 부작용이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집 사고 싶어도 매물이 없다”

22일(현지시간) 미 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5월 거래된 기존 주택의 중간값은 35만300달러(약 4억원)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6% 오른 수치다. 가격 상승률은 1999년 이후 22년 만에 가장 높았다. 주택 거래량은 지난 2월부터 4개월 연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거래 건수는 전달 대비 0.9% 줄어든 580만 건(연 환산 기준)에 그쳤다.

집값이 전례 없이 고공행진하는 건 적극적인 통화 팽창 정책으로 모기지론 금리가 역대 최저(연 3% 안팎) 수준으로 떨어진 게 가장 큰 배경으로 지적됐다. 또 미 중앙은행(Fed)은 작년 6월부터 매달 400억달러의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해 주택시장을 활성화해왔다.

공급 절벽도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NAR에 따르면 지난달 매물로 나온 기존 주택은 123만 채로 작년 동기보다 20.6%나 줄었다. 매물은 시장에 나온 지 평균 17일 만에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역대 가장 짧은 기간이다. 로런스 윤 NAR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적정 가격의 재고가 부족하다 보니 신규 수요가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며 “100만달러 이상 고가 주택이 지난 1년 동안 세 배 이상 거래된 것도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NAR 용역을 받은 로젠컨설팅은 “최근 20년간의 신규 주택 공급량이 과거 평균치에 비해서도 550만 채 부족하다”고 추산했다. 1인 가구용 주택이 200만 채, 2~4인용이 110만 채, 5인용 이상이 240만 채 부족하기 때문에 합리적 가격의 물량이 많이 나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 주택시장도 달아올라

유럽 주택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달 네덜란드의 기존 주택 가격은 작년 동기에 비해 12.9% 뛰었다. 2001년 이후 가장 빠른 상승률이다. 네덜란드의 지난달 주택 거래량은 12.1% 감소했다.

경제 규모가 큰 국가의 집값 상승률이 더 높았다. 작년 4분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주택 가격이 전년 대비 5.8% 상승했는데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가 전체 상승의 75%를 차지했다는 게 유럽중앙은행(ECB)의 설명이다.

각국이 긴축정책으로 선회하기까지 시간이 적지 않게 소요될 것이란 점에서 집값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이 이날 주택임대회사인 홈파트너스오브아메리카를 6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한 것도 이런 전망 때문이다. 2012년 설립된 홈파트너스는 미 전역에 1만7000여 가구의 임대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블랙스톤의 이 회사 인수는 주택시장이 상당 기간 호조를 보일 것이란 내부 판단을 반영한 결정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경제 예측 분석기관인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애덤 슬레이터 이코노미스트는 “느슨한 통화정책 때문에 자산 가격이 더 뛸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컨설팅업체인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의 이안 셰퍼드슨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에서 거래 건수가 줄었다는 것은 집값이 정점을 찍었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