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바이든의 토론과 타협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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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 모두 얻지는 못해"
야당과 대화의 문 열고 설득
토론·타협·조정 통한 합의 강조
주용석 워싱턴 특파원
야당과 대화의 문 열고 설득
토론·타협·조정 통한 합의 강조
주용석 워싱턴 특파원
요즘 미국 정치권에선 ‘초당적 합의’란 말을 듣기가 어렵다. 패권경쟁을 벌이는 중국에 대한 압박 등 특정 외교안보 이슈를 제외하면 더더욱 그렇다. 미국민의 정치적 의견이 민주당 지지자냐, 공화당 지지자냐에 따라 거의 대부분의 사안에서 첨예하게 갈리는 데다 정치인들도 눈앞의 표를 의식해 이런 여론에 편승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민주·공화 양당의 초당파 상원의원들과 1조달러 규모 인프라 투자 계획에 합의한 건 눈길을 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인프라 투자 계획에 합의한 뒤 “우리 누구도 원하는 모든 것을 얻지는 못한다는 데 동의했다”며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실제 이번 합의 결과는 바이든 대통령이 처음 발표한 원안과는 거리가 멀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말 2조30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내놨는데 이번 합의안에 담긴 액수는 그 절반도 안 된다. 그나마 1조달러 중 ‘뉴 머니(신규 예산투입액)’는 5790억달러 정도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법인세율을 21%에서 28%로 올리려던 바이든 대통령의 계획도 최종 합의에선 빠졌다.
그럼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인프라 협상 과정에서 시종일관 ‘초당적 합의’ 원칙을 고수했다.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한 뒤 공화당은 물론 친정인 민주당 일각에서도 자신의 구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협상의 문을 활짝 열었다. “토론을 환영한다. 타협은 불가피하다. 조정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고 약속하면서다.
말로만 그런 게 아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을 차례로 백악관에 초청해 설득에 나섰다. 이어 공화당과 협상을 벌였다. 공화당 협상 책임자인 셸리 무어 캐피토 상원의원과는 이달 중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 등을 위해 유럽 순방을 떠나기 전까지 직접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통해 세 차례 이상 담판을 벌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당초 발표한 인프라 투자 규모를 대폭 줄이고 법인세 인상을 보류하겠다고 제안한 건 이 과정에서였다. 그럼에도 국가채무와 재정적자 부담을 이유로 신규 예산 투입을 3000억달러까지 줄이려는 공화당과의 이견을 좁히지는 못했다.
공화당과의 협상이 결렬되자 바이든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고 초당파 상원의원들에게 눈을 돌렸다. 이들은 공화당안에 상당히 가까운 중재안을 내놨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받아들였다. 유럽 순방 중에도 백악관에 전담 책임자를 둬 협상을 계속하도록 했다. 이번 합의 과정에서 바이든의 ‘토론과 타협의 리더십’이 주목받은 이유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런 모습이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그는 38년간 상원의원과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8년간 부통령을 지내면서 중도파로 활약했다. 이 때문에 무색무취하고 카리스마가 없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지만 진영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실용적 접근을 할 때가 많아 ‘딜 메이커(해결사)’로 불렸다.
이번도 그런 사례다. 인프라 투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추진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도 필요성에 동의했다. 하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진 못했다. 총론은 같아도 각론에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던 탓이다.
물론 이번 합의가 바이든 대통령 혼자만의 ‘작품’은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 못지않게 초당파 의원들의 역할이 컸다. 민주당 중도파인 조 맨친 상원의원과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 상원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맨친 의원은 초대형 인프라 투자 계획과 법인세 대폭 인상, 최저임금 2배 인상 등과 같은 민주당의 당론과 다른 목소리를 내며 공화당과의 초당적 합의를 강조했다.
이번에 나온 합의안이 최종적으로 법안이 될지는 미지수다. 바이든 대통령과 초당파 상원의원들의 합의가 무조건 맞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무턱대고 진영논리를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대통령이 야당과 중도파를 설득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모습은 한국 정치인들이 눈여겨봤으면 하는 대목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결국 누군가 혼자서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렵고 복잡하지만 토론과 설득을 통해 최대 다수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hohoboy@hankyung.com
이는 1990년대 이후 취임한 5명의 미 대통령 중 2위에 해당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58.1%)에게만 뒤질 뿐 도널드 트럼프(39.6%), 조지 W 부시(52.2%), 빌 클린턴(38.9%) 전 대통령보다 높다.
바이든 대통령의 숙제로는 ‘국민 통합’이 꼽혔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23~24일 18세 이상 미국인 1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민주당원은 88%가 바이든의 국정수행을 지지했지만 공화당원은 이 비율이 21%에 그쳤다.
미 사회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17개 선진국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해 23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미국인 88%가 ‘코로나19 이전보다 사회가 더 분열됐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국가 중 이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런 점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민주·공화 양당의 초당파 상원의원들과 1조달러 규모 인프라 투자 계획에 합의한 건 눈길을 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인프라 투자 계획에 합의한 뒤 “우리 누구도 원하는 모든 것을 얻지는 못한다는 데 동의했다”며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실제 이번 합의 결과는 바이든 대통령이 처음 발표한 원안과는 거리가 멀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말 2조30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내놨는데 이번 합의안에 담긴 액수는 그 절반도 안 된다. 그나마 1조달러 중 ‘뉴 머니(신규 예산투입액)’는 5790억달러 정도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법인세율을 21%에서 28%로 올리려던 바이든 대통령의 계획도 최종 합의에선 빠졌다.
그럼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인프라 협상 과정에서 시종일관 ‘초당적 합의’ 원칙을 고수했다.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한 뒤 공화당은 물론 친정인 민주당 일각에서도 자신의 구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협상의 문을 활짝 열었다. “토론을 환영한다. 타협은 불가피하다. 조정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고 약속하면서다.
말로만 그런 게 아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을 차례로 백악관에 초청해 설득에 나섰다. 이어 공화당과 협상을 벌였다. 공화당 협상 책임자인 셸리 무어 캐피토 상원의원과는 이달 중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 등을 위해 유럽 순방을 떠나기 전까지 직접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통해 세 차례 이상 담판을 벌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당초 발표한 인프라 투자 규모를 대폭 줄이고 법인세 인상을 보류하겠다고 제안한 건 이 과정에서였다. 그럼에도 국가채무와 재정적자 부담을 이유로 신규 예산 투입을 3000억달러까지 줄이려는 공화당과의 이견을 좁히지는 못했다.
공화당과의 협상이 결렬되자 바이든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고 초당파 상원의원들에게 눈을 돌렸다. 이들은 공화당안에 상당히 가까운 중재안을 내놨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받아들였다. 유럽 순방 중에도 백악관에 전담 책임자를 둬 협상을 계속하도록 했다. 이번 합의 과정에서 바이든의 ‘토론과 타협의 리더십’이 주목받은 이유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런 모습이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그는 38년간 상원의원과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8년간 부통령을 지내면서 중도파로 활약했다. 이 때문에 무색무취하고 카리스마가 없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지만 진영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실용적 접근을 할 때가 많아 ‘딜 메이커(해결사)’로 불렸다.
이번도 그런 사례다. 인프라 투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추진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도 필요성에 동의했다. 하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진 못했다. 총론은 같아도 각론에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던 탓이다.
물론 이번 합의가 바이든 대통령 혼자만의 ‘작품’은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 못지않게 초당파 의원들의 역할이 컸다. 민주당 중도파인 조 맨친 상원의원과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 상원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맨친 의원은 초대형 인프라 투자 계획과 법인세 대폭 인상, 최저임금 2배 인상 등과 같은 민주당의 당론과 다른 목소리를 내며 공화당과의 초당적 합의를 강조했다.
이번에 나온 합의안이 최종적으로 법안이 될지는 미지수다. 바이든 대통령과 초당파 상원의원들의 합의가 무조건 맞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무턱대고 진영논리를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대통령이 야당과 중도파를 설득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모습은 한국 정치인들이 눈여겨봤으면 하는 대목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결국 누군가 혼자서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렵고 복잡하지만 토론과 설득을 통해 최대 다수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hohoboy@hankyung.com
바이든의 숙제는 '국민 통합'
취임 5개월을 넘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대한 미국민의 여론은 우호적이다. 여론조사 분석기관인 파이브서티에잇에 따르면 취임 첫해의 6월 24일 기준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52.6%를 기록했다.이는 1990년대 이후 취임한 5명의 미 대통령 중 2위에 해당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58.1%)에게만 뒤질 뿐 도널드 트럼프(39.6%), 조지 W 부시(52.2%), 빌 클린턴(38.9%) 전 대통령보다 높다.
바이든 대통령의 숙제로는 ‘국민 통합’이 꼽혔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23~24일 18세 이상 미국인 1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민주당원은 88%가 바이든의 국정수행을 지지했지만 공화당원은 이 비율이 21%에 그쳤다.
미 사회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17개 선진국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해 23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미국인 88%가 ‘코로나19 이전보다 사회가 더 분열됐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국가 중 이 비율이 가장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