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특허 디지털 전환으로 '기술의 세계지도' 그린다
빅 블러(big blur)의 시대다. 산업 간 경계가 희미해지고 기존 경쟁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기아자동차 이름에서 ‘자동차’가 빠지고, 던킨도너츠에서 ‘도너츠’가 빠졌다. 커피 전문점인 스타벅스는 정보기술(IT) 기업으로 불린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사업 영역을 금융으로 확대하면서 금융권에서는 IT 기업을 경쟁자로 여기며 디지털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필자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부터 산업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위해 노력해왔는데, 디지털 전환은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다. 이는 4차 산업혁명 논의 과정에서 많이 언급됐던 아디다스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아디다스는 3D(3차원) 프린터와 로봇을 이용해 개인 맞춤형 운동화를 24시간 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스마트공장을 세워 4차 산업혁명의 대표주자가 됐다. 하지만 독일의 스마트공장을 폐쇄하고 공장을 다시 동남아시아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노동 집약적으로 신발을 생산하던 과거 방식으로 돌아가겠다는 건데, 디지털 전환의 어려움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디지털 전환을 시도하는 기업의 70%가 실패했다고 한다.

특허청은 특허 분야 디지털 전환의 선구자로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 일찍부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했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특허심사관들은 수많은 자료를 일일이 손으로 넘겨가며 유사 기술을 찾았는데, 그 자료로 건물의 균열과 붕괴가 우려된다는 기사가 당시 신문에 났을 정도로 무게가 엄청났다고 한다. 과도한 자료의 무게에 압도당하던 이 시기 특허청은 디지털 전환을 위한 꿈을 실현하고 있었다. 모든 업무를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특허넷 시스템’의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세계 최초로 인터넷으로 특허를 신청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최근엔 넘쳐나는 물량을 빠르게 처리하고 심사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AI) 기술도 도입하고 있다. 비슷한 기술을 신속히 찾기 위한 유사특허 검색 시스템, 이미지로 된 상표와 디자인을 비교해 비슷한 것을 찾아주는 상표·디자인 이미지 검색 시스템 등 분야도 다양하다. 한국 특허청은 미국 유럽 일본 중국 특허청과 함께 ‘세계 5대 선진 특허청 모임(IP5)’의 일원인데, 우리가 주도해 AI 태스크포스를 설치하고, 태스크포스의 의장국으로서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국가 간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이 시기 특허청은 또 다른 도전의 길에 나서려 한다. 특허 데이터는 세계 기술 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기술 개발과 산업 전략 수립을 위해 분석해야 하는 중요한 자료로 인식된다. 그동안 추진했던 특허심사 측면의 디지털 전환과 더불어 글로벌 산업과 기술 동향 분석을 지원하기 위한 산업 측면의 디지털 전환을 새로 시작한다. 세계 특허의 최신 신청 동향과 소유권 이전 정보 등 산업 활동을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를 구축하고, 특허와 관련된 논문을 연결하는 등 타 분야와의 연계 작업도 강화한다. 쉽지 않은 과제들이지만, 이를 통해 기술의 세계지도를 그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의 거친 물살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골무를 끼고 자료 더미를 누벼야 했던 특허심사 환경은 이제 AI 시스템을 이용한 디지털 체계로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쌓아온 디지털 전환 전문성을 바탕으로 산업 밸류체인의 디지털 전환도 충실히 수행할 것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