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헬스케어회사 존슨앤드존슨(J&J)이 마약성 진통제 남용으로 인해 미국 뉴욕 주정부에 2억3000만달러(약 2596억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관련 줄소송에 지급해야 할 합의금만 50억달러(약 5조6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앞서 J&J는 탈크(활석) 성분이 든 베이비파우더 소송에서 난소암 환자에게 21억2000만달러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J&J의 자회사 얀센이 야심차게 내놓은 코로나19 백신 판매 부진까지 겹치면서 J&J가 초유의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다.

J&J, 뉴욕에 2600억원 지급 합의

레티티아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은 J&J가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 남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뉴욕 주정부에 2억30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고 26일(현지시간) 발표했다. J&J는 앞으로 9년간 뉴욕주에 합의금을 낼 계획이다. 주정부가 오피오이드 기금법을 통과시키고 뉴욕 내 모든 소송 당사자가 이번 합의안에 서명하면 합의금의 절반 이상인 1억3000만달러가 내년 2월까지 뉴욕에 전달된다. 제임스 장관은 “더 이상 J&J의 오피오이드 제품은 미국에서 제조·판매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편을 뜻하는 오피엄에서 파생한 오피오이드는 마약성 진통제를 말한다. 암을 비롯한 중증 질환자의 통증을 줄여주는 강력한 진통제다. 1990년대 말 환자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의사 조언에 따라 펜타닐, 옥시코돈, 옥시콘틴, 하이드로코돈 등 마약성 진통제가 불티나게 팔렸다. 이들 치료제는 오피오이드 중독을 낳았다. 일부 환자는 불법 오피오이드에도 손을 댔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오피오이드 과다 복용 관련 사망자는 2019년 5만 명에 달했다. 총기 사고 사망자(4만 명)보다 많다. 1999년 이후 미국에서만 50만 명이 오피오이드로 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정부서 불붙은 오피오이드 소송

오피오이드 소송전이 시작된 것은 2007년이다. 하지만 제약사 로비에 막혀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소송에 불을 붙인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다. 2019년 트럼프 정부는 오피오이드 사망자가 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미국인 수와 비슷하다고 밝히며 오피오이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트럼프 지지자가 많은 웨스트버지니아주를 비롯 켄터키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등에서 오남용 문제가 심각했던 것도 당시 정부 개입 속도를 높인 이유가 됐다.

J&J는 오클라호마주 클리블랜드 법원에서 2019년 8월 처음 5억7200만달러 배상 판결을 받았다. 다른 오피오이드 제제인 옥시콘틴을 제조한 퍼듀파마는 2019년 100억달러 합의금 지급을 약속한 뒤 파산 신청을 했다. 옥시콘틴 컨설팅을 맡았던 맥킨지도 미국 50개 주정부에 6억1900만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J&J는 뉴욕 외에 캘리포니아, 웨스트버지니아 등에서도 재판을 앞두고 있다. 재판에 참여한 주와 카운티 등만 3000곳에 이른다. 오피오이드 사태 해결을 위해 J&J가 지출할 것으로 추정한 금액은 50억달러(약 5조6400억원)다.

J&J의 악재는 오피오이드뿐 아니다. 미국 대법원은 J&J가 난소암 환자 22명에게 21억2000만달러를 배상해야 한다고 이달 초 결정했다. 하급심 판결을 무효로 해 달라고 신청한 J&J의 상고를 기각하면서다. 문제가 된 성분은 활석이다. J&J의 베이비파우더 등에 사용됐다. 이 성분이 석면에 오염될 가능성이 높아 암을 유발할 수 있는데도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피해자들은 주장했다. 미국 내 암 환자 중 9000여 명의 여성이 J&J에 수천 건의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얀센에서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판매가 예상만큼 늘지 않아 곤혹스러운 상황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미국에서 투여한 백신 3억2000만 회분 중 얀센 백신은 1200만 회분에 불과하다. 희귀혈전증 부작용 논란으로 지난 4월 백신 접종이 중단됐다가 재개된 탓이다. 6월에는 볼티모어 공장에서 혼입 사고가 발생해 6000만 명분을 폐기해야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